[삶과 커뮤니케이션] 한 원로 출판인의 꿈

추락은 끝이 없었다. 가뜩이나 내리막인 출판업계가 ‘베스트셀러 조작을 위한 책 사재기’ 사건까지 터지면서 벼랑 끝으로 몰렸다. 소설가 황석영은 해당 출판사를 고소하면서 절판을 선언했고, 한국출판인회의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재기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처벌 규정을 강화하도록 법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이번에 들통난 곳 뿐 아니라 중대형 출판들 상당수가 사재기를 하고 있는 업계의 비뚤어진 관행이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출판업계의 위기 속에서 5월 10일 중앙일보 week&삶 지면에 ‘나남출판사 조상호 대표의 내촌집’을 소개한 김서령 칼럼리스트의 글이 유독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내게 나남출판사는 매스컴과 저널리즘 관련 전공 서적들로 친근하다.

본인은 손사레를 치지만 조상호(63) 대표는 책 만드는 사람의 숙명처럼 나무를 키워왔다고 한다. 그를 말할 때는 나무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 정도라고. 나남이 파주 출판단지로 옮기면서 서울 양재동 사무실 앞에서 자라던 소나무들도 지금은 조 대표의 집 뜰로 옮겨져 21년 째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에 자리 잡은 조 대표의 집은 선비가 사는 초가집을 모티브로 삼았다. 나지막하게 엎드린 꼴, 방 앞에 길게 이어지는 툇마루의 편리와 정다움, 문을 열면 바깥과 바로 통하는 홑집의 자유가 조 대표가 집에 구현하고 싶은 가치였다고 한다. 또한 창을 충분히 내어 집 안에서 밖을 실컷 내다볼 수 있고,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을 갖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은 집은 과연 조 대표가 직접 심고 키운 나무들의 사계가 앞뒤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대목은 어느덧 출판업계의 원로가 된 조상호 대표의 꿈이었다. “국가 유공자를 묻는 국립묘지 말고 우리 정신문화에 큰 족적을 남긴 문화인, 실천적 지식인 등이 함께 묻히는 묘원을 만들고 싶어요. 그곳에 묻히는 것 자체가 명예가 되고, 거기에 묻힐 영예를 유지하기 위해 노년이 되어서도 자신의 삶을 개결하게 추스릴 수 있는 묘원을!”

현재 출판업계를 둘러싼 총체적인 위기는 사실 출판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지면을 통한 출판은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지하게 출판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죽음을 준비할 때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게 삶의 역설이다.

by 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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