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색깔로 신분을 구분하는 학교에 가보셨나요?

1. 인천의 한 초등학교는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며 2010년 ‘모든 성인은 교내에서 명찰을 패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명찰은 정교사는 노란색, 계약직 교사는 초록색, 방문자는 분홍색이었다. 계약직 여교사 문모 씨(당시 58세)는 “아이들이 ‘선생님은 왜 식당 아줌마랑 똑같이 초록색 명찰을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설명하기 난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차별을 시정해 달라”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동아일보, 2013/5/27, 권익위 민원창구에 비친 ‘비정규직 乙의 눈물’ , 장원재 기자, 링크)

2. ‘너무들 하는군.’하는 생각에 이어 사람들이 회의를 열어 신분에 따라 색깔을 정하는 꽤 진지하면서도 웃긴 풍경이 떠오른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오렌지, 분홍 등 후보색이 테이블에 오르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을지, 최고 권력자의 일방적인 취향이 지시된 것일지 궁금하다. 어느 쪽이라 하더라도 이 색깔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고른 것일까?

3. 한때 색깔이 곧 그 사람의 지위와 권력을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전의 사람들은 외투나 드레스, 양복의 색을 고를 때 취향에 따라 선택하지 않았다. 의복의 색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단번에 보여주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프랑스 혁명 때까지만 해도 어디에나 복식 규정이 있어서 누가 무엇을 입을 수 있는지 정해 놓았다. (중략) 순수하고 빛나는 색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값도 비쌌다. 천연 색소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빨강은 염색공장에서 가장 비싼 색이었다. 색소의 생산도 비쌌고 염색 과정도 까다로웠다. 빨강 염색을 위해서는 수입색소와 수입 첨가제가 필요했다. 녹색은 부유한 시민의 색이었다. 파랑은 빛나는 하늘색만 고귀한 색이었고 어두운 파랑은 단순한 일상복, 노동복에 사용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염색하지 않은 옷, 그러니까 갈색과 회색만을 입을 수 있었다. (에바 헬러, “색의 유혹”, 이영희 옮김, 예담, 2002, pp. 104-105)

노랑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색이다. 중국인들이 인간에게 문명을 선사한 신으로 숭배하는 전설적인 제왕도 ‘황제黃帝’이다. 1906년생인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는 그의 비망록에 이렇게 적었다. (중략)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노랑이었다. ‘빛나는 노랑’이라고 불리는 이 색을 사용하는 것은 황제만이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노랑은 내가 유일한 존재이며 ‘하늘의 본성’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의식을 어려서부터 갖도록 했다. (같은 책, p. 165)

4. ‘인천의 한 초등학교’가 색채상징의 역사를 이해하고 색을 골랐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정교사는 노랑, 계약직은 초록, 방문자는 분홍이라고 색채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사자들이 부인하더라도 ‘노랑’이 더 좋은 색이라고 여기고 고른 것이 틀림없다. 아이들은 이 색채상징을 내면화할 것이다. ‘노랑’이 초록보다 상위의 색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신분의 차이를 뜻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5. 그렇다면 분홍은? 분홍은 전형적인 여성의 색이며, 오늘날 세계 어디서나 ‘여자아이의 색’ 으로 여긴다. 학교의 대부분 방문자들이 엄마기 때문에? 정말로 그랬다면 거참 단순한 이유다.

색의유혹

by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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