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전략] 황석영의 무리한 반발, 결국 위기의 포로가 되다

057여울물소리저는 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합니다. 저의 큰 약점을 작게 생각하고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살펴봅니다. 어쩌다가 자기 비하의 마음이 생기면 드러내고 살펴봅니다. 어쩌다가 자기 비하의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자기애의 마음으로 곧 전환시킵니다. 자기를 스스로 보살피는 마음, 자기를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 자기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남을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저는 제 자신에게 늘 그렇게 말해왔습니다.
– 시인, 정호승1. 위기의 순간, 한 번 더 깊이 생각하라
지난 23일 <여울물 소리> 로 인해 책 사재기의 최대 피해자가 된 작가 황석영은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 김형태 변호사(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 윤천우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출판계에 만연한 사재기 행태 근절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강하게 분노했고 분명한 대책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언론과 여론은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재기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그의 좌절감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작가로서 원로로서 조금 더 사려 깊고 설득력 있게 움직일 수는 없었을까?2. 위기의 순간, 스스로를 향해 칼을 던져라
‘자음과 모음’이 잘못한 일이다. 백번 그렇다. 그렇다고 해도 대처가 방향 없이 모질다. 방송이 나온 후 8일 그는 ‘절판’을 선언하고 ‘고소’를 운운했다. 23일에는 나아가 ‘팔을 잘라내는 느낌’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검찰에서 나설 것을 직접 주문했다. 철저한 객관화이며 사건에 대한 타인화다. 남 탓으로만 느껴지는 이유다.
출판계의 사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 관행 자체를 몰랐다고 부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칼은 안으로 던졌어야 한다. 공동의 책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모색을 도모했어야 한다.

3. 위기의 순간, 작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말한다.
딸 아이의 관계를 팔아 어쩔 수 없었다는 출판사 선정의 오류를 넘어서려는 것은 군색해 보인다. 있어야 할 출판 관계 단체들이 기자회견에 같이 이름을 걸지 못했다. 그렇다고 굳이 없어도 될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공동 주최의 이름으로 넣을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책을 내면)‘수 십만 부는 대개 팔린다’는 과장의 이유를 들어 사재기 관련 자신의 개입을 변명할 상황도 아니었다.
위대한 작가는 삶과 작품, 그리고 철학으로 말한다. 작게 작게 변명하다 보니, 크게 크게 호통치다 보니 스스로가 작아진다. 늦게 출발해 그저 오랫동안 작가로 살다간 박완서를 떠올리는 것은 무분별한 비교인 것일까.

4. 위기의 순간,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라
작가는 “(사재기 의혹이라는) 오물이 나한테 튀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청소 깨끗이 하고, 텃밭 일궈서 새로운 씨앗을 뿌리겠다”고 했다. 23일 기자회견의 말을 보는 순간 엉뚱하게 <강남몽>의 표절 논란이 오버랩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출처를 밝히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지만 인터넷상의 자료는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이를 필요한 대목만 메모해 두었다가 사용한 터라 일일이 출처를 확인하여 밝히기란 일일 연재하는 작가로서 사실상 유의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당시 끝까지 변명했었다.
소설을 보든 잡문을 보든 우리는 한 시대를 앞서 간 작가의 고통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하니 그들의 작은 허물을 감쌀 용의가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작가답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만한 기대를 걸만큼 그들의 글이 우리들 인생의 위로가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그렇게 작아지려고만 하는가?

얼마 전에 작가 황석영은 칠순을 맞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알게 된다. 불혹이 불혹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지천명이 지천명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이순이 이순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그리고 칠십은 종심이라 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참 어렵다.

종심
[ 從心 ]
마음대로 한다는 뜻으로, 70세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고 한 데서 유래한다. 이에서 연유해 뒤에 나이 일흔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30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 40세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 60세에는 귀가 순하여 남의 말을 듣기만 하여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70세에 이른 뒤의 성취를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이다.

50세의 지천명(知天命)과 60세의 이순(耳順)을 거쳐 공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성인(聖人)의 경지를 이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종심’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혹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율이나 법도·제도·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하든 일정한 법도가 있었다는 뜻이니, 바로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이름이다.

이 종심과 마찬가지로 70세를 이르는 말에 ‘칠순(七旬)’과 ‘고희(古稀)·희수(稀壽)’가 있다. 고희와 희수는 모두 중국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 중 “사람이 70까지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었다(人生七十古來稀).”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출처] 종심 | 두산백과

by 유민영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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