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 혀보다 깊은 상상, 시인의 글로 한식을 맛보다

행복한우리한식구절판

1.

* 순두부는 부드럽고 연하고 순해서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고 뭉개지 쉬운 뇌 같은 것
마음 같은 것
연인의 입술이나 덜 익은 사랑 같은 것
그래서 처음에는 약한 불로 요리를 시작해야 하지

-공광규, <순두부찌개>

* 겨울 한철 반쯤 말린 꽁치를 아시는지.
덕장 해풍 아래, 그 등 푸른 파도소리 위에
밤낮 없이 빽빽하게 널어놓고
얼렸다 풀렸다 얼렸다 풀렸다 한 것이니 그래,
익힌 것도 날 것도 아니지. 다만
고단백의 참 찰진 맛에
아무래도 먼 봄 비린내가 살짝 비치나니.

저 해와 달의 요리, 이것이 과메기다. 친구여,
또 한 잔!
이 우정 또한 천혜의 사철 술안주라지.

-문인수, <과메기>

* 한숨과 눈물로 간 맞춘
수제비 어찌나 칼칼, 얼얼한지
한 숟갈 퍼올릴 때마다
이마에 콧잔등에 송송 돋던 땀
한 양푼 비우고 난 뒤
옷섶 열어 설렁설렁 바람 들이면
몸도 마음도 산그늘처럼
서늘히 개운해지던 것을

살비듬 같은 진눈깨비 흩뿌려
까닭 없이 울컥, 옛날이 간절해지면
처마 낮은 집 찾아들어가 마주하는,
뽀얀 김 속 낮달처럼 우련한 얼굴
구시렁구시렁 들려오는
그날의 지청구에 장단 맞춰
야들야들 쫄깃하고 부드러운 살
훌쩍훌쩍 삼키며 목메는 얼큰한 사랑.

-이재무, <수제비>

한국시인협회가 시집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을 냈다. 원로 시인 76명이 시를 한 편씩 썼다. 오곡밥, 칼국수, 빈대떡, 순두부찌개, 동치미 등 시상은 한식이다.

시집의 서평에서는 이렇게 쓴다.
‘시인들의 시어는 깊은 맛이며 맛의 풍광이다. 그 맛의 즐거움을 시의 입맛으로 발화하여 입 속의 혀를 넘어선 상상의 입맛으로 시인들의 고유 경험을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한국시인협회는 지난 5월 발간했던 근대인물 시집 <사람>을 전량 회수한 바 있다. 수록된 시 몇 편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발간한 이번 시집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으로 한국시인협회는 최선의 커뮤니케이션을 선보인 것 같다.

2.

명태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新羅 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

― 백석, 「북관北關」

음식으로 시상을 표현하는 시인은 이전에도 있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유명한 백석(1912-1963) 시인은 소박한 음식에서 여진의 살내음새를, 신라백성의 향수를 느꼈다.

출처:
– 연합뉴스, 2013/06/08, <신간>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백나리 기자, 링크
– 조선일보, 2013/06/11, 추억에 버무린 시 맛 좀 보시라, 어수웅 기자, 링크
– 한국경제, 2013/06/10, 한식에 얽힌 그리움과 추억…맛깔나는 시로 음미해볼까, 박한신 기자, 링크
– 연합뉴스, 2013/05/23, 한국시인협회 “근대인물 시집 전량 회수”, 백나리 기자, 링크
– 예스24 홈페이지 책소개, 링크
진 출처: 서울신문, 문학세계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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