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포인트] 치마는 말한다

치마는말한다

1. 이것은 일관되고 우아한 패션이다 – 이미지가 들려주는 스토리

입안에 머금은 커피를 미처 삼키지 못한 채, 한 남자가 카메라를 보고 웃고 서 있다. 귀여운 인상이다. 짧은 머리에 앞머리를 살짝 돋우어 나름 멋을 부렸다.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어올린 흰색 와이셔츠에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가 시원하다. 와이셔츠 왼쪽 주머니에 회사 로고가 박혀 있다. 이 사람은 스웨덴 철도회사 아리바에 근무하는 기관사다. 왼쪽 어깨에 직위를 나타내는 짙은 청색 견장이 보인다. 넥타이 핀으로 매무새를 다진 것 하며 제법 베테랑인 것 같다.

왼손엔 커피잔을 들고, 오른쪽 어깨엔 가방을 둘러맸다. 이제 막 일을 마치고 열차에서 내려 커피를 마시며 쉬는 참이거나, 일하러 가기 전에 급하게 커피 한 잔을 들이켜는 중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화면 왼쪽엔 역사에서 플랫폼으로 가는 통로가, 오른쪽엔 가게들(?)이 보인다. 이 사진은 한 스웨덴 기관사의 평범한 하루 가운데 한 장면이다. “헤이, 마르틴! 여길 봐” 하며 동료가 휴대폰으로 찍은 일상의 기록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마르틴’은 치마를 입고 있다. 그냥 ‘일상의 기록’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수상하다. 아래를 찬찬히 훑어보자. 검정 치마에 격식을 갖춘 허리띠, 검정 양말, 검정 구두. 치마라는 사실을 빼면 양말에 나이키 로고가 두드러진 것이 탈일 뿐, 마르틴의 하반신은 통일된 유니폼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2. 이것은 시위 패션이다 – 기사가 전하는 팩트

마르틴 애커스텐과 동료 기관사 12명은 여름이면 35도까지 올라가는 열차 조종실 환경 때문에 반바지 착용 근무를 회사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철도회사 ‘아리바’의 회사 규정은 근무복장으로 긴바지와 치마를 입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긴바지 대신 치마를 선택했다. ‘치마 입기 시위’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알려졌고, 회사는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반바지 착용을 허용했다.

 3. 이것이 팩트다 – 패션은 말을 한다

패션사진작가 스콧 슈만이 만드는 ‘사토리얼리스트’라는 유명한 블로그가 있다. 같은 이름의 책도 나왔다. 스콧 슈만은 사토리얼리스트를 ‘자신의 개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신사’라고 정의한다. 세계 곳곳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 패션을 사진에 담았다. 나이, 성별, 직업, 인종, 모든 면에서 천차만별인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옷차림으로 자신을 말한다. 이들의 사진은 자신의 삶, 직업, 정체성을 자신만의 옷차림으로 드러내는 패션이라서 매력적이다.

이 스웨덴 기관사를 또 다른 ‘사토리얼리스트’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시위의 수단으로 선택한 패션이지만, 우스꽝스럽거나 과장되지 않았다. 치마에 선전 문구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유니폼으로서의 일관성을 지켜 자신의 몸에 맞게 소화했다. 그렇게 해서 상반신은 기관사로의 일상이, 하반신은 역사적 사건이 기록된 보기 드문 사진이 탄생한 것이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반드시 말이나 글일 필요는 없다. 무언가 말하고 싶을 땐 먼저 옷차림에 신경 쓰자.

by purple

사진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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