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커뮤니케이션] 21세기 소년소녀의 복수 (2)

아이들에게무슨일이2

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곧장 온 듯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들도 많았고 나른하다거나 피곤하다고 호소하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꾸하지 않는가 하면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노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쿠요 어린이집 원장 아리키 노부코는 와세다 대학 교수인 마에하시 아키라와 의논해 1995년부터 운동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신체검사도 실시했다. 신체검사에서 오전 아홉 시에도 체온이 36도에 못 미치는 저체온 아이들이 많다는 의외의 사실을 밝혀냈다. 마에하시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밤에 잠을 잘 동안에는 체온이 떨어지고 아침에 눈을 뜬 뒤부터는 차츰 체온이 올라가 오후 서너 시를 정점으로 다시 내려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저체온인 아이는 생체 리듬이 서너 시간쯤 뒤로 늦춰져 있습니다. 수면 시의 저체온 상태에서 일어나 미처 체온이 올라가기 전에 어린이집에 갑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신이 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밤이 되어도 체온이 높아서 좀처럼 잠들지 못합니다.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겁니다.” (다키이 히로오미,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김성기 옮김, 황금가지, 2005, pp.19-21에서 요약)

“체온 이상인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생체 리듬의 혼란으로 아이들의 생명력까지 저하된다는 것입니다. 자율 신경의 기능 부전이 만성화되고 중증으로 이어지면 수면은 얕고 길어지며 피로가 회복되지 않아 능력이 점차 떨어집니다. 그런 상태로 성장하면 공부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일상생활도 곤란해져 집에 틀어박히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안이하게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의외로 깊이 병들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부정적인 생활이나 신체 이상을 통해 어른들에게 적신호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같은 책, p.36).”

2.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책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는 NHK 사회부 기자 출신인 저자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보내는 무수한 적신호를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꼼꼼히 추적해 기록하고 전문가와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적신호들을 퍼즐 맞추듯 조각을 맞춰보니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수면 – 어른들의 생활패턴에 아이들도 길들어 일찍 잠들지 못하고 늘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생체리듬이 깨지고 성장발달에 치명적이다.

식습관 – 신선한 재료로 집에서 직접 조리해 먹는 집이 드물다. 과자나 인스턴트 음식 따위로 식사를 대체하니 크고 작은 질병이 생긴다. 가족이 함께 살아도 부모 형제 저마다 다들 바쁘고, 아이는 혼자 식사하는 때가 많다. 가족이 함께 즐겁게 밥 먹는 시간이 없어져 아이들은 점점 고독하고 남과 소통하는 법을 모른다.

운동과 놀이 – 아이들이 바깥에서 함께 뛰어노는 놀이가 사라지고,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혼자 놀다 보니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고 제멋대로이다. 과거의 데이터와 비교해보니 아이들의 뇌 발달이 급격하게 지체되고 있다. 체력도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허리를 지탱하는 배근·복근의 힘이 약해져서 과거 체력테스트 항목이던 허릿심 측정을 아이들이 다칠까 봐 테스트할 수 없는 지경이다.

애착(모자 관계) – 보호자와의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비로소 타인에 대한 관심도 생긴다. 예전에는 부모의 성격에 문제가 있더라도 몇 겹으로 둘러쳐진 주변 인간관계(대가족, 이웃 공동체)가 안전망 역할을 해주어 아이들은 그럭저럭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은 부모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곧바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이 책은 일본에서 2004년에 출간되었다. 나온 지 10년이 다 됐다. 오래된 책을 다시 들추어 본 이유는 이 모든 얘기가 한국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선 며칠이 멀다고 아이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해결 방안은 늘 이상하다. 아이들의 문제를 우리는 쉽게 심리적인 것이나 기질적인 이유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정도가 심하다고 느끼면 소아정신과 의사를 찾는 식이다. 소아정신과가 번창하는 한국은 정말 불행하다. 그러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 습관을 들이고 여럿이 함께 ‘몸을 써서’ 운동하고 노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한다는 것을 이 책은 여러 가지 사례로 보여준다. 몸을 움직이면 마음(뇌)도 성장한다는 것을 실험과 사례로 보여준다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이다.

4.
우리는 늘 말로, 글로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각별히 신경 쓴다. 오늘 아침 직장 동료가 지나가듯 뱉은 말의 의미를 온종일 곱씹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은 어른과는 다른 언어를 쓴다. 흐릿한 눈빛으로 아프다고 말(신호)하고, 이상한 걸음걸이로 또한 아프다고 말(신호)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내가 좀 이상한 것 같다며 스스로 조리 있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의 신호를 먼저 수신할 때라야 비로소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순간 신호를 무시한다면 10년 20년 뒤 우리는 아이들의 복수라고 할 만큼 재앙 수준의 미래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굳이 ’21세기 소년소녀의 복수’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붙인 건 그 까닭이다.

by 서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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