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신문만화의 고군분투

장도리

1. 6월 19일 자 경향신문 네 칸 만화 ‘장도리’가 재밌다. 네 칸 모두 사람과 풍경은 같고 대사가 바뀌고 인물의 표정과 동작만 바뀐다. 네칸 만화 ‘장도리’는 대체로 비유나 표현이 직설적일 때가 많은데 이날 표현은 은근한 묘미가 있다. 두 번째 칸까지 국민의 항의에 대통령은 할 말이 없어 진땀만 뺀다. 세 번째 칸에서 대통령은 사람들에게 ‘난데없이’ 문제를 낸다. 오른손을 들어 사뭇 진지하게 명한다. 상황은 반전된다. 갑자기 국민은 혼란에 빠진다. 그게 뭐더라? 진땀을 흘리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고, 스마트폰(?)을 꺼내 그게 뭔지 찾는다. 대통령은 흐뭇하다. 우후(음표). 팔짱 끼고 느긋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2. 마지막 칸에서 만화는 대통령이 현재의 정국에서 예민한 문제에 답하지 않고 ‘창조경제론’으로 국면을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도대체 ‘창조경제’가 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그런데도 만화 속 대통령은 흐뭇하다. 여러 가지 여운을 남기는 만화다.

3. 한 칸이나 네 칸 안에 그날그날의 정치·사회를 비평하는 신문만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던 두 가지 형식의 만화가 주요 일간지에서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다. 신문만화에 대한 독자들의 수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고바우 영감(김성환)’, ‘두꺼비(안의섭)’, ‘나대로 선생(이홍우)’, ‘왈순아지매(정운경)’로 이어지는 네 칸 만화의 전통을 현재는 ‘장도리(박순찬)’가 홀로 이어가고 있다. 신문만평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던 ‘한겨레 그림판’의 박재동 화백 이후로 장봉군(한겨레), 김용민(경향) 두 화백이 힘겹게 그 명맥을 잇고 있다.

4. 흔히 ‘촌철살인’이라고 비유하는 신문만화의 역할을 어쩌면 트위터 같은 매체가 대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짧은 글과 덧붙인 이미지 하나 정도로 그날그날의 정치·사회를 효과적으로 비평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고, 그 메아리를 사람들은 열심히 주고받는다. 신문만화는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에서 매우 상징적인 존재다. 시간이 모자라 신문을 휘리릭 넘겨 볼 때도 사람들은 언제나 만화는 꼭 보고 넘어간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선별해서 뉴스를 접하게 되니 여간 재밌는 만화가 아니고서는 독자들과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신문만화는 다른 형식과 다른 표현을 고민해야 하는 힘든 시점에 와있다.

서채홍

그림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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