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케이스 칼럼] 나는 신문 폐인이다. – 한국일보 사태를 보며

김선주 칼럼 ‘한국일보는 ‘없다”를 읽었다.
공감되는 글이다.

‘언론인 김선주’
한겨레 칼럼 끝에 그렇게 실렸다.
그의 글을 오래 봤지만 오늘처럼 가슴이 서늘하지는 않았다.

나도 묵혀온 얘기를 쓰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석간의 시대였다.
오후가 되면 아버지와 함께 동아일보를 기다렸다.
뾰족이 쇠창살이 오른 대문 위로 ‘신문이요’ 소리와 함께 신문이 마당으로 날아오른다.
아버지께서 읽는 동안을 참지 못해 기웃거리다가 잽싸게 받아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동아일보를 통해 글과 문장과 한자를 배웠다.
세상을 배웠다.

그러니 신문은 소년이 세상을 보는 창이었고, 세계를 향한 문이었다.
잠수함이었고 망원경이었다.

동아는 모를 것이다.
어느 날 동아일보가 변심했을 때 받은 큰 상처를.

언론인 김선주는 한국일보를 통해 그랬던가 보다.

신문에서 나왔으면서 신문의 문법과 예의를 존중하지 않는 종편을 보면 화가 치민다.

신문과 TV 폐인이라는 이유로 신문방송학과에 갔다.
친근한 과가 그 과밖에 없었다.

1987년에 학교에 들어간 나는 기자가 되지는 못했다.
2000년에 여러 명이 모여 웹진 비슷한 것을 시작한 이후, 작은 미디어를 운영하고 글을 쓰며 신문질 비슷한 것을 해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여전히 지금도 가능한 많은 신문을 읽는다.
신문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학생들에게 올 봄에도 ‘대중매체의 이해’를 가르쳤다.
이 회사도 그렇고 내가 창업한 한 회사들은 지금도 매일 아침 신문 클리핑과 그에 대한 대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신문은 여전히 유용하다.
그러나 신문은 이제 늙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직 대체할 것을 찾지 못했다.

트위터를 보고 페이스북을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미진하다.
아침 화장실에 신문을 들고 가서 봐야 제대로 하루가 시작된다.

신문은 여전히 동시대를 기록하고 설명하는, 살아 움직이는 가장 위대한 도서관이며 생각의 창고다.

그렇지만 또 신문의 원형을 살려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기자라는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비교하는 나라의 기자들과 일하는 환경과 조건이 먼저 다르지 않은가.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나는 언론선진화 방안이 나왔던 날도 기자들과 통음을 했다.
보고를 제대로 했던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그렇다고 신문이 이대로 갈수는 없다.
근래 혁신을 준비하는 어느 신문사의 기자와 얘기를 했다.
나는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그 혁신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고 했다.

지금은, 신문도 기자도, 혁신의 어젠다를 혁명적으로 실천할 때다.

뉴욕타임즈, 가디언, 허핑턴포스트, BBC, 폴리티코가 하고 있는 일을 우리도 해야 한다.
뉴욕타임즈의 ‘스노우폴’이며 가디언의 ‘파이어스톰’이며 하는 생소한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해야 한다.
가디언처럼 오픈 플랫폼, 오픈 저널리즘을 구현해야 한다.
일방의 전달만 하지 말고 허핑턴포스트 처럼 인터넷 유저들을 ‘슈퍼 유저, 모더레이터, 네트워커’로 모아 함께 신문을 만들고 소통하고 확산해 가야 한다.
무엇보다 ‘콘텐츠와 스토리가 왕’이라는 명제를 새롭게 진화시켜주어야 한다.

전 세계의 모든 신문이 모두 광고기사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른 모색을 한다.
우리 신문들도 새로운 모색을 하지만 여전히 전달하는 매체다. 낚시질하는 매체다. 선동당하고 선동하는 매체다.

신문은 기술의 진보를 수용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그 안에서 communicatiion, collaboration, community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신문은 전방위로 혁신하고, 새로운 행동주의를 내세워야 한다.

기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걸맞는 무기를 새로 갈아야 한다.

세상을 본다, 순회(마와리)를 돈다-사람을 만난다-가득 찬 이메일을 뒤진다-보도자료를 살핀다-브리핑을 듣는다, 아이템 세 개를 올린다, 기사를 쓴다-사직을 찍는다, 데스크와 싸운다, 홍보맨의 항의를 듣는다, 취재원과 술을 마신다, 기억한다, 그리고 진실을 기획한다.

그들이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기자로서 일을 하게 하자.

한 사회의 기록이며 유산,
내 삶의 친구인 신문.

그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치열하게 싸우게 좀 놔두면 안 되겠나.
그것만으로도 벅찬 시대에 참 너무들 한다.

지금은 많이 비슷해지고 퇴색되었지만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신문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나의 친구이며 후배이고 선배인 기자들을 사랑한다.

지난 해 물고 물리며 그렇게 싸우고 또 동고동락했던 기자들,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아는 기자들, 모르는 기자들 모두에게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유민영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참고: 한겨레, 2013/06/19, 김선주 칼럼 한겨레는 ‘없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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