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끝문장] 28, 정유정 (2013년작)

무라카미 하루키, 댄 브라운, 그리고 정유정. 올해 여름 한국 서점/출판계를 뒤흔드는 세 명의 인물이다. 41살 나이에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네번째 소설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댄 브라운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는 소설가가 되었다. 1만부도 팔리기 어려운 출판계 불황 속에서 전작 <7년의 밤>은 30만부가 넘게 팔렸고, 신작 <28>은 출간 한달만에 10만부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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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웃사이더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간호사로,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으로 14년을 일했다. 그러다 35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공모전에 11번을 떨어졌다.

– “내가 콤플렉스를 갖는 스타일이 아닌데 계속 떨어지니까 이게 아니다 싶었다. 그러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아니야, (작가가 되기 위한) 봉인이 아직 안 풀렸을 거야’ 하면서 다잡고, 저녁이 되면 다시 우울해지고…. 힘들었다. 하지만 사표까지 던지고 나 자신을 벼랑 끝에 세웠는데 포기할 수 없었다. 당선 연락을 받은 2007년 4월은 이번에도 떨어지면 정말 못 버티겠다 싶은 때였다.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던 중이었는데 아들이 전화를 받고 전해줬다. 평소에 ‘당선 통보가 오면 우아하게 침대에 앉아 ‘그런가요? 고마워요’ 하고 끊어야지,’ 했는데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가장 힘들고도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다. 기어이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우라고 말하고 싶다”

– “아예 7년쯤 전부터는 TV를 없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머리에 남아서다. 전에 봤던 영화나 소설의 에피소드 잔영들도 나도 모르는 새에 남아 있다. 초고는 영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익숙한 이야기다. 그걸 다 걷어내야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 “인간의 선택과 운명, 그것이 내가 작품에서 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하게 되는 선택…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선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나는 그 사람의 선택이 그 사람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다. 소설이 일단 재미가 있어야 뭐라도 느끼지, 재미가 없으면 뭘 느끼겠나. 끝까지 페이지를 넘겨야 작가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을 확인할 수 있는 거지. (독자의 시선을 낚는) ‘낚시질’을 하든지, 어떻게든 읽게 만들도록 멱살을 잡든지(웃음), 메시지를 읽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해야 한다. 독자들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 그게 나의 임무다.”

– “독자들이 내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하진 않지만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그 속에서 감정의 극한까지 치달았다가 확 놓여날 때의 서늘한 파토스(예술적 격정, 비애감)를 독자들이 느끼게 하고 싶다. 대중적, 상업적이라는 말이 두렵지 않다. 소설만이 사람들이 밤을 새우면서 눈이 벌겋게 되도록 읽을 수 있는 장르다.”

– 첫문장: <프롤로그> 베링 해가 훅, 사라졌다. 백색 어둠이 그 자리를 채웠다. 바람이 눈발을 휘몰며 불어치고 암벽 같은 빙무가 세상을 가뒀다. 성미 사나운 북극마녀, 화이트아웃이었다. 재형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 끝문장: (* 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작가의 말로 대신합니다)
호시노 미치오가 쓴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에는 알래스카 인디언들의 고래사냥 이야기가 나온다. 고래를 잡으면 고기를 취한 후 “내년에도 또 오너라” 고 외치면서 턱뼈를 바다에 돌려준다는 것이다. 세상이 온갖 생명체, 물과 바람까지도 영혼을 가지고 존재하며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는 세계관과 자신들을 먹여 살려주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된 풍습이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자연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들이다. 서로 빚을 지고 갚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스스로 다짐하건대 내게 남은 나날, 그 점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2013년 6월 광주에서, 정유정

출처: 은행나무, 2013년 1판 5쇄
참고: 동아일보, 2013/07/15, [초대석]신작 ‘28’로 서점가 돌풍… 소설가 정유정 씨, 김지영 기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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