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스쿨 14] 번역에 대한 다양한 단상

번역

“<번역사 오딧세이>(쓰지 유미 지음)라는 책을 봤어요. 그 책에 보니까, 의역을 할 것인가 축역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B.C.4세기부터의 일이에요. 키케로가 이미 당대의 사람들이 축역을 하는 경향에 대해서 “나는 의역을 하겠다”고 말한 문장이 남아 있어요.

그 책에 나오는 문장 중 하나가 재미있어요. 이탈리아의 나폴리 근처 작은 섬에 각국의 번역자들이 교류하기 위한 센터가 있었대요. 그 센터장이 한 말이었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의역을 할 것인가 축역을 할 것인가에 관한 번역세미나는 절대 열지 않는다”는 금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이 문제는 굉장히 이상한 문제라서 사람들이 그냥 차일을 두고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싸운다. 싸우고 다시는 서로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하고요.”

– 이동진, <이동진의 빨간책방, 위대한개츠비 1부> 중

올 여름 화제를 모았던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인기를 타고 책 <위대한 개츠비>의 수요도 높아졌다. 이 바람을 타고 <위대한 개츠비>를 발간한 출판사들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위대한 개츠비>의 저작권 소멸해 어떤 출판사라도 책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경쟁의 양상은 훨씬 노골적이었다.

각 출판사에서 책을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는 ‘번역’이었다. 더구나 인기작가 김영하가 ‘문학동네’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해 화제를 모았다. 김영하는 번역을 하면서 ‘기존 번역의 딱딱함’을 지적했는데, 이에 따라 기존 번역가가 반박을 하는 등, <위대한 개츠비>로 번역 자체가 화두가 됐다.

번역에 대한 최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뤄보려 했다.

1. 평론가가 말하는 번역

과열된 번역대결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지만 번역 자체를 수면위로 끌어올려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했다. 그 중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작가 김중혁의 토론이 참고할 만하다. 아래는 발췌한 내용이다.

김중혁: “김영하 작가 번역본 같은 경우에는 어떤 느낌이냐면, 김영하 작가는 자기 작품이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되어본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번역에 대해 좀 열려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장을 바꾸거나 그런 식의 것은 아니고, 좀 더 읽기 쉽게 어떻게 하면 더 읽기 쉽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것 같고, 그리고 이 것을 많은 사람들이 1920년대 아메리칸 드림으로 많이 읽히잖아요, 그런데 김영하 작가는 그것보다는 자체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각주를 뺀 것이 아닌가 해요. 각주를 빼고 좀 더 극적으로 몰고 가는 거죠. 그런 식의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잘 읽히고, 좀 쉽게 읽히지 않았나 해요.”

이동진: “저는 이렇게 생각해봤어요. 번역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직역이라고 흔히 말하는 ‘축역’과, ‘의역’이 있죠. 굳이 얘기하면 번역되는 언어가 있고 번역하는 언어가 있을 것 아니겠어요? 예를 들어 영어 텍스트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영어에 더 중심을 두는 번역이 축역이고, 옮겨지는 2차 언어, 즉 한국어에 더 충실한 번역이 의역이죠. 그렇게 했을 때 굳이 얘기한다면 민음사 번역은 축역에 가깝고 문학동네(김영하 역)는 의역에 가까운데, 사실 전통적인 범주에서 본다면 민음사 번역도 의역적인 요소도 꽤 많이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문장을 나누는 방식이라든지 이런 등등의 것에서 말이죠.”

“번역이라는 것은 결국 얼마나 잘 읽히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 작품을 1차 독자로서 번역자가 어떻게 느끼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번역의 차이가 온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데이지에 대한 해석이 번역가마다 다른 거예요. 그에 따라 데이지가 존댓말을 쓸 것인가 반말을 쓸 것인가, 혹은 특정 말을 할 때 그 인물의 말을 미화할 것인가 적나라하게 까발릴 것인가 하는 것이 달라지는 거죠.”

예를 들어서 “resolving judgement is a matter of infinite hope”라는 문장이 “판단을 유보하면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 “판단을 유보하면 희망도 영원하다.”, 혹은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은 무한한 희망을 품는 것이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죠.

2. 작가와 번역: 무라카미 하루키, 번역을 염두에 둔 글쓰기

“어떻게 세계적 독자를 갖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하루키는 “문체에 리듬이 있다면 번역 작업으로 그 고유의 문체가 망가지지 않아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소설가 못지않게 이름난 번역가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을 번역했고, 특히 레이먼드 카버의 전 작품을 옮겼다.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니다. 그는 일본 신초샤(新潮社) 인터뷰에서 “장편소설을 쓸 때는 다른 모든 일상을 중단하지만, 하루 1~2시간 번역하는 일만큼은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 번역을 해야 하는 무명작가도 아니고,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고달픈 번역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존경, 그리고 둘째 이유는 ‘공부’였다. 단어 사용, 문장의 리듬을 타는 법 등 자신의 작품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17/2013041703048.html)

3. 작가와 번역: 어떤 번역가의 탄생, 소설가 배수아

3-1 발단: 시작은 우연하게

“독일 베를린에 ‘두스만’이라는 유명한 서점이 있어요. 그 서점에서 책을 찾아 헤맸어요. 처음에는 서점 점원에게 “나는 독일어를 공부하고 싶다. 그런데 교재로 공부하기는 싫다. 문학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했어요. 서점 직원이 권해준 책 중 한 권이 야코팔인이 쓴 <나의 첫 번째 티셔츠>라는 책이었는데, 독일어를 사전으로 한 단어 한 단어 찾아가면서 독일어를 공부한 것이었거든요. 책이 읽고 싶어서……. 그런데 그렇게 계속 번역을 하다보니 당연히 그것을 한국말로 옮기는 데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최초의 번역은 ‘공부하기 위한 방법’이었어요. 그것이 우연히도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번역을 계속 하게 된 것 같아요.”

3-2 전개: 작품에 대한 애정

“눈먼 부엉이를 읽고 번역자로서 욕심이 생겼어요. 1930년대에 나온 위대한 작품이 단지 이 작가가 제3세계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요. 그래서 몇몇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물어봤는데, 다들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어요. ‘작품은 매우 좋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부담스럽다.’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다가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다는 의미였어요. 그래서 이 책을 알리고픈 마음에 제 작품 낭송극의 테마를 ‘눈 먼 부엉이’로 일부러 선택을 했어요.”

3-3 위기: 번역이 되지 않는 이유

“이 출판사는 상업성보다도 ‘중역을 해야 한다는 중역의 불가피성’ 때문에 굉장히 망설였어요. 자신들의 원칙은 절대로 중역은 없다. 그런데 저는 페르시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독어본을 번역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출판사가 결정을 내릴 동안 한동안 제가 기다려야 했어요. ‘이 작품을 번역하되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겠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3-4 결말: 의역과 축역에 대한 단상

“가능하면 그 문장구조를 유지하는 번역이 있고, 그 문장을 다 해체해서 새로 지어 올리는 번역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후자를 선호해요. 원본에 들어 있는 것들을 최대한 훼손 없이 옮겨야 한다는 근본주의적인 생각에는 약간 저해가 될 수 있지만 한국어로 표현했을 때, 또 번역가 자신이 숨결을 충분히 불어 넣었을 때 저는 그것이 문학적인 가치를 훨씬 더 유지하거나 혹은 상승시킨다고 보는 편이에요.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제가 번역에 관심이 있지만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출판사의 에디터분과 우연히 얘기를 할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분한테 번역 문학에 대해서 슬쩍 물어봤어요. “번역은 어떤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그 분이 단호하게 저에게 “좋은 번역가란 자신의 문체가 드러나지 않는 번역가다.”라고 했어요. 그 분은 출판사에서 에디터로 근무하면서 많은 외국 문학작품 편집을 해보신 분이었죠. 당시 저는 “그렇군요.” 그러고서 넘어갔는데,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전문가들 사이에 통용되는, 최소한 10년 전에 통용되던 생각은 바로 그분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 같아요.“

3-5 뒤집기: 소설가로서의 번역

“(내가 쓴 소설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경우에도) 전적으로 번역가의 모국어 스킬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원작자가 개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상대편의 목적언어의 색채와 향기를 충분히 컨트롤하거나 음미할 수준이 아니라면 그것은 저의 손을 떠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출처: <라디오 책다방> 팟캐스트, 11회, ‘소설가 배수아의 번역하는 즐거움’ 중)

4. 없는 것의 번역

외국의 말을 자국의 말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것만이 번역의 모든 것은 아니다. 외국에는 있지만 자국에는 없는 개념을 옮겨야 하는 경우, 그 번역은 창조를 뛰어넘는 것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번역가이자 학자들이 메이지 시대 했던 번역과 11-12세기 유럽 번역가들의 아랍어 번역을 들 수 있다. 쏟아져 들어오는 ‘신문물’, ‘신개념’을 번역한 두 경우를 싣는다.

4-1 일본의 경우 – 완전한 창조 혹은 점진적 변화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앞서 서구의 근대를 번역했다. 누차 반복하지만 세상은 개념을 통해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일본은 근대 서구 개념들을 번역함으로써 수백 년간 동양을 지배해온 의식을 해체하고 새롭게 편집해 냈다. 오늘날 한자문화권에서 사용되는 핵심 개념들은 일본 메이지시대 번역으로부터 그리 크게 자유로울 수 없다.

서구의 근대 개념인 ‘culture’, ‘society’, ‘individual’에 조응하는 개념이 동양에는 없었다. 이들 개념의 번역인 ‘문화’, ‘사회’, ‘개인’과 같은 것들은 일본 메이지시대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단어다. ’문화-文化’의 경우, 처음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文明開化論)’의 단순 축약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개념이 현재의 ‘문화’의 의미를 띄게 된 것은 냉전 이후의 일이다.

<번역어의 성립>을 보면 애초에 동양에는 ‘사회’나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일본의 메이지 시대 지식인들은 ‘society’를 처음에는 ‘사-社’, ‘회-會’ 등으로 번역했다. 중국에서 사용한 결사조직의 이름인 ‘白蓮會’, ‘白蓮社’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사’와 ‘회’가 서로 달라붙어 ‘사회’가 되었다. ‘individual’의 번역은 더 큰 문제가 된다. 주체성립의 서구 근대사가 이 한 단어에 다 수렴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처: 중앙선데이,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6457)

4-2 유럽: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수학적인 지혜가 담긴 아랍 책들이 11-12세기에 스페인으로 전해졌다. 이 책에 담긴 지식과 지혜를 유럽 언어로 번역하려는 엄청난 욕구가 있었는데 이런 번역을 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유럽 사람들이 비슷하게 발음을 할 수 없는 아랍어 소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랍어로 쉐인이라는 글자는 우리 귀에는 ‘쉬’처럼 들린다. 이 글자는 ‘쉐이론’이라는 단어의 첫 글자인데 쉐이론은 ‘어떤 것(Something)’이라는 의미에요. 영어로 ‘something’처럼 정의되지 않은, 알지 못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랍어에서는 ‘쉐이론’ 앞에 정관사 ‘al’을 붙이면 ’알쉐이론‘이라는 단어가 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그 모르는 어떤 것‘ 이다. 이 단어는 10세기의 고대 수학에 자주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번역하던 중세 스페인 학자들은 스페인어에는 ‘쉐’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쉐인이라는 글자와 쉐이론이라는 단어를 스페인어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대 그리스어의 알파벳에서 ‘커’와 비슷하게 들리는 카이(X)라는 글자를 빌려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에 이런 스페인의 번역문이 유럽 공통어인 라틴어로 번역됐는데 번역을 하던 학자들이 그리스어의 카이라는 알파벳을 라틴어의 x로 바꿨다. 라틴 번역문서는 x를 사용하게 됐고 그 후 거의 600년 동안 수학 교과서에는 x가 등장하게 됐다.
(출처: 테드, http://www.ted.com/talks/terry_moore_why_is_x_the_unknown.html)

5. 시의 번역

의역도, 축역도 어려운 것이 ‘시’라는 장르의 번역이다. 시는 사용된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느낌이 있는데, 다른 언어로 이 느낌까지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고은 시인의 짧은 시 <순간의 꽃>의 영어 번역을 우리말로 다시 번역해보면 원문과 거의 다른 시가 됐음을 눈치 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문
<순간의 꽃>

비 맞는 풀 춤추고
비 맞는 돌 잠잔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영어번역
<Flowers of a Moment>

In the rain the grass is dancing
In the rain the stones are sleeping

That flower
seen as I went down
-as I was coming up
I couldn’t see it

*우리말 재번역
<순간의 꽃>
빗속에서 풀은 춤춘다
빗속에서 돌은 잠들어 있다

그 꽃,
내가 내려가며 보았던,
그리고 올라갈 때는,
볼 수 없었던.

(참고: 오윤정, <고은 시의 번역 현황과 번역시 연구>, 국제비교한국학회, 2012.)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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