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우 저널리즘1 교황 프란치스코 2] 두 발로 땅을 밟아 서고 인터뷰하다. 그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의 방식대로 전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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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 처음으로 대대적인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카톨릭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기원은 무엇인지,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말했습니다.

2. 취임 직후부터 커뮤니케이션의 대가라고 평가되어온 교황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터뷰의 형식에서부터 드러났습니다.

2-1 인터뷰는 교황의 출신회인 예수회 사제 안토니오 스파다로와 이뤄졌습니다. 안토니오는 이탈리아의 예수교 매체인 <La Civilta Cattolica>의 수석에디터입니다. 전세계의 예수교 매체는 안토니오에게 질문을 보냈고 안토니오가 그 질문들을 취합하여 최종 질문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기사가 완성되고 승인된 후에야 영어로 번역되어 역시 예수회 매체인 <아메리카 매거진>에 실렸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전 매체는 이 기사를 받아쓰는 방법 외에는 인터뷰에 접근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발췌해서 쓸 수 있을 뿐 전문을 옮기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교황은 단번에 카톨릭 전문매체를 교황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해야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중시하고 스스로가 보수적이라고 밝힌 그의 메시지가 묻어납니다.

2-2 인터뷰는 이탈리아어로 진행됐습니다. 교황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를 구사합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스페인어를 씁니다. 영어는 전세계의 공용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가장 많은 신도들 및 비신도들이 교황의 정확한 언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는 역사적으로 ‘신의 언어’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상징은 라틴어로만 쓸 수 있었던 성서를 타언어로 번역한 데에 있었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언어’는 이탈리아어입니다. 단테의 신곡이 르네상스의 최고 문학이 된 이유는 이탈리아어로 신의 세계를 묘사한 데에 있었습니다. 두 땅을 밟고 신을 이해하려 하는 교황의 메시지와 닮았습니다.

2-3 인터뷰는 교황의 방에서 진행됐습니다. ‘겸손한’ 성품을 반영한다고 알려진 그 작은 방에서 교황은 자신의 신념을 말했습니다. 안토니오는 그 방이 작은 책상에 점령(Occupy)된 듯했다고 썼습니다. 책상 외에 그 방에는 성인 프란치스코의 상(像)과 아르헨티나의 아르헨티나의 성인인 Lujan의 상, 그리고 성인 요셉이 잠자는 상이 있었습니다.

3. 뉴욕타임스에서는 본 인터뷰를 발췌 소개했습니다. 에이케이스는 그 부분을 번역했습니다. 이 땅을 두 발로 밟고 선 교황을 파악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저는 죄인입니다. 이게 가장 날카롭게 정의한 것이죠. 수사적이라거나 문학적 표현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 왜 예수회의 교인이 되었습니까?

저를 예수회 사회로 이끈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전도정신, 커뮤니티, 그리고 훈육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좀 이상한 것인데, 저는 정말로 훈육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회의 훈육은 시대를 매니지하는 방법이며 저는 여기에 매혹되었던 것입니다.

– 아르헨티나에서 젊은 나이에 주교가 되었는데,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저는 권위주의적이었으며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을 내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수주의자로 낙인찍히게 했습니다. 제가 코도바에 있을 때 내부에 극심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분명 저는 복녀 이멜다처럼 행동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파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결정을 내리는 권위적인 방법이었는데 이 결정이 문제들을 만들곤 했습니다.

–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들, 그리고 동성애자들에게 교회는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을 때 저는 동성애자들에게서 편지를 받곤 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자신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는데, 이 때문에 그들은 사회적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저는 말했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선한 마음으로 신을 좇고자 한다면 저는 그들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이죠. 교회는 이렇게 하길 원하지 않았죠. 이 말을 하면서 저는 교리문답이 뭔지도 말했습니다. 종교는 신도들에게 주장을 표현할 권리를 가지지만 신은 모두를 해방시켰습니다. 개인의 영적 삶을 방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동성애를 허용하는 거냐며 화가 나서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대답 대신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이 동성애자를 만났다면 사랑으로 그 사람을 감쌌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을 비난하고 거부했을까요?” 우리는 항상 그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 당신이 꿈꾸는 교회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항상 낙태이슈라든지 동성결혼 혹은 피임법의 필요성 문제만을 껴안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하죠. 제가 이에 대해 말한 적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반대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슈들에 대해 말할 때에는 문맥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회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저는 교회의 자손이지만 그게 이 이슈에 대해 항상 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이나 교리가 항상 동등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 수뇌부가 서로 모순되는 수많은 원칙들에 대응하는 것에만 집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도덕적 상아탑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향기와 생명력을 잃을지 모릅니다. 교리는 더 단순하고 더 깊으며, 그 자체로 빛나야 합니다. 이것이 충족되어야만 결과적으로 교회의 도덕이 흘러가게 됩니다.

설교 자체와 설교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바티칸의 많은 분파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그들은 사람들에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잘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은 검열기관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곤 합니다. 바티칸에서 그런 위험이 나타난다는 것은 믿기 힘듭니다. 이런 경우들은 바티칸에 조력하는 지역회의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일은 특히 지역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좋습니다. 로마는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경영하려 하면 안 됩니다.

–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저는 어떤 솔루션이 일종의 ‘여성주의(female machismo)’가 되지 않을까 조심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과 다른 신체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역할은 남성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영감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꼭 언급되어야 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여성과 여성의 역할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성은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여성이 기사보다 중요합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위엄과 기능에 대해 혼돈하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더 조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의 신학적 심오함을 발전시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교회와 더 잘 공존할 수 있습니다. 금 시대 과제는 이렇습니다. 교회의 권위가 있는 모든 곳에 여성의 고유한 영역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 신과 만나는 것이 여행과 같다면, 우리가 실수할 수도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답할 수 있다면 그건 신이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종교를 등에 업고 거짓된 예언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모세 같은 좋은 리더는 항상 여지를 남겨두어야 합니다. 신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둬야 하는 것이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 우리 삶은 오페라 리브레토처럼 미리 쓰인 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삶은 그저 전개되고, 찾아가고, 보고, 해나가는 것입니다. … 신과 만나기 위해 우리는 항상 모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께도 우리를 탐색하고 경험할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 크리스찬들이 보수주의자들이거나 법률주의자라거나, 모든 것이 분명하고 깔끔하며 안전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전통을 살펴본다면 신에 대한 새로운 영역을 찾으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훈육적으로 해결하려는 지금의 크리스찬들, 교리적인 안전만 과장하는 크리스찾들,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과거의 것들만 고집스레 붙잡고 있는 크리스찬들은 안으로 잠식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믿음이 이데올로기로 변할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이데올로기와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죠. 저는 확신합니다. 신은 모든 사람의 삶 속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재난을 겪었다고 할 지라도 그 삶 속에 신이 있습니다. 당신도 모두의 삶 속에서 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니 찾아야만 합니다. 개인의 삶이 가시밭길 속에 뒹군다고 해도 언제나 그 곳에는 신이 뿌리내릴 공간이 있습니다. 신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김정현

* [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다른 글을 보시려면
[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7월29일 교황 프란치스코, 기내에서 기자들과 격이 없이 질의·응답을 하다., 링크

출처:
– 아메리카매거진, 링크
– 뉴욕타임스, 링크

사진 출처: 바티칸 포토갤러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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