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스쿨 17] 슬라보예 지젝 강연: 개인들을 해방시킬 뉴마스터의 등장이 필요하다.

슬라보예 지젝

슬라보예 지젝

0. 경희대, 경희사이버대 공동주최로 진보주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의 특강이 열렸다. 특강은 ‘Philosophy, Psychoanalysis, Capitalism’란 주제로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진행되었다. 그는 라캉, 마르크스 그리고 헤겔을 접목한 철학으로 서유럽 학자들이 ‘동유럽의 기적’으로 부르는 세계적인 석학으로서, 현실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포스트-자본주의에 대한 폭넓은 혜안을 보여준다고 평가 받는다. 석학이 보는 현대 사회의 문제와 그 대안은 어떤 것일까? 플래툰 쿤스트할레 서울에서 열린 두 번째 날 강연을 찾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구석에 쪼그려 앉아 들어야 했지만, 열정적이었던 그의 강연은 불편함을 잊게 할 정도로 흥미로웠다. 물론 미국의 사회학자 노암 촘스키가 “지젝의 이론으로부터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명제를 끌어낼 수 없다.” 며 날선 비판을 했듯이 그의 주장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부채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 한 켠의 죄의식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었다면 과장일까? 강연 내용을 공유한다.

1. 근본적인 문제: 개인들의 죄의식(부채의식)

1.1.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진다: 독립된 기업으로서의 자아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건, 너희 책임이야.” 삶이 고단하고 팍팍한 우리네 사람들에겐 비수가 되는 말이다. 지젝에 의하면 과거의 거버닝(Governing)에선 왕권 또는 정부가 대부분의 리스크 관리를 해왔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사회는 지속적으로 개인들에게 권한 위임을 해왔다. 모든 개인들은 ‘기업화’되었다. 개인은 자신의 가치(Value)를 높이는 투자자이자 경영자로서, 투입대비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또, 그 결과에 100% 책임을 지게 되었다.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가 일어난 셈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사람들은 항상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일부는 성공하지만 대부분은 실패를 맛본다. 또 자신을 경영하는데 초기 자본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사회적 자본을 차입하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런 현재의 부채는 미래까지 영향을 준다. 부채는 언젠가 상환해야 하므로, 이로 인해 미래의 행동을 통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부채의 도덕적 파급’이라고 한다.

개인들은 부채로 인해 채권자에게 종속된다. 지속적으로 평가 받고, 자신이 부채를 충분히 갚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상환이 어려워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때 채무자에게 남는 것은 끝없는 ‘죄책감’뿐이다.

1.2. 노예화되는 부채 인간들

혹자는 “부채를 갚으면 되잖아? 채권자가 채무자를 평가하는 것도 결국 빌려준 것을 상환 받기 위해서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속 채무 관계는 영원히 상환할 수 없는 뭔가에 묶이는 것이다. 이는 ‘초자아(슈퍼 에고)’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초자아는 ‘가학적인 가해자’로 설명할 수 있는데 부채를 짊어진 인간들이 허덕이는 것을 보며 쾌락을 느낀다. 이들은 채무자들이 빌렸던 것을 갚으려 해도 싫어한다. 영원히 못 갚기를 바라며 이를 유도한다. 이들이 부채를 갚지 못함으로써, 자신에게는 ‘영원한 노예’가 생긴다. 정리하면 이들이 자본을 꿔주는 이유는 이자를 붙여 수익을 내려는 게 아니라, 노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부채를 갖고 있는 한, 채무자들은 죄의식으로 인해 상대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2000년 아르헨티나가 IMF의 관리를 받을 때, 그들은 베네수엘라로부터의 대출을 통해 구제금융의 조기상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IMF측은 이에 대해 매우 불쾌해했다. 자신들이 아르헨티나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아울러 ‘죄의식’의 부여는 큰 차원의 질문 자체를 막아버린다. 환경 문제를 예로 들면, 거대 기업이 오염의 주범으로 꼽힐 수 있다. 하지만 초자아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너의 행동을 어땠느냐? 분리수거를 항상 잘 했느냐? 길거리에 휴지를 버린 적 없느냐?”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는 개인의 죄의식을 자극하고 큰 차원의 질문을 봉쇄해 ‘초자아 – 부채 인간’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진다.

2. 해방을 위한 솔루션: 초자아에 맞설 뉴마스터

2-1. 기본권으로서의 위급권

인간은 긴급 상황을 위한 ‘위급권’이 있다. 헤겔은 이를 잘 설명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아이가 굶주려 빵을 훔쳤다. (장발장은 유죄였지만) 이건 범죄가 아니다. 법은 어겼어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빵을 훔치지 않았다면 아이는 죽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위급권이다. 헤겔은 개개인들은 하나의 보편 타당한 권리로서 위급권 주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부채가 많아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은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복지는 인도주의적 자비의 차원이 아닌 기본적인 법적 권리인 것이며, 모든 것에 우선한다.

가난한 자들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한 사회가 수립되면, 시스템 상 계급들이 형성되고 혜택을 보는 계급이 있으면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위급권 확보를 위한 이들의 시위와 투쟁은 정당화된다. 이들에게 저항할 권리조차 뺏어버리면, 모든 걸 앗아가는 것이다.

2-2. 뉴마스터 없이는 불가능한 인간들의 해방. 그 아이러니

최근 금융 위기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은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효과적이었던가? 프랑스, 스페인 등의 시위, 그리고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보자.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프랑코 베라르디는 이런 시위를 ‘무력하기 짝이 없는 시위’라고 평가했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없었을 뿐 아니라, 개인들이 각자의 자유의지를 모아 혁명을 이뤄내는 건 그들에겐 무척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지금도 이집트 타흐릴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도 혁명이 아니다. 군중들은 무아지경에 이르렀지만 얼마 후 다시 집에 돌아갔다. 이는 파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권력을 얻는 게 끝이 아님을 잘 보여줬다. 개인은 본능적으로 수동적인 삶을 원한다. 그들은 기초 서비스는 정부 등에 제공받고, 본인은 본인이 잘하는 것만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개인이 모든 걸 맡아서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하므로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남아공의 혁명은 성공했다. ‘만델라’라는 리더 덕분이다. 수동적인 개인들의 영구적인 동원은 불가능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린 ‘뉴마스터’라는 대안이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리더를 통해 개인들은 하나로 뭉칠 수 있으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들에게 ‘이것이 필요하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답에 스스로 도달할 수 있게 상황을 조성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개인들은 진정한 해방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은 처음에 외부적인 힘이 필요하지만, 추후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알랭 바디우도 공산주의 과정에서 리더의 주기능이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필요한 것은 ‘좌파적 성향을 지닌 마가렛 대처’라고 정리하고자 한다.

3. 뉴마스터의 덕목

3.1. 명확한 편가르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연합은 편가르기가 우선이다. 이런 과정이 원활히 이뤄지려면 그 경계가 명확해야 한다. 프랑스의 예를 들어보자. 1940년 히틀러에 무릎 꿇은 프랑스는 패배감에 휩싸였다. 당시 원수였던 필립 페탕은 패배를 인정했지만 드골 장군은 “난 프랑스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사회는 분열되었지만 소수파였던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단결을 이룰 수 있었다.

3.2. “할 수 있다. 실천하라”라는 메시지를 지속 전달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의 구호를 기억하는가? “Yes, We can” 이것이 뉴마스터의 구호이다. 마스터의 역할은 개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당신은 저항할 권리가 있으니 실행 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져야 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진정한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마침내 기존 사회 질서로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이 가능해진다.

이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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