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미술관은 우리의 깊은 내면을 위한 ‘약국’이다 – 알랭 드 보통이 생각하는 미술관의 의미와 커뮤니케이션 방식

미술관은 달라져야 한다: 알랭 드 보통

미술관은 달라져야 한다: 알랭 드 보통

0.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가? 좋아한다면 미술관에 왜 가는가? 정신적 평안을 위해서, 예술적 소양을 쌓기 위해서, 문화인이 된 그럴 듯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우린 다양한 목적으로 미술관을 찾곤 한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확고한 것 같다. 그는 미술품이 우리 내면을 힐링하는 ‘치료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시대순, 학파로 나뉜 ‘전형적인’ 전시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미술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1. 주위 누군가가 미래에 대한 큰 불안을 느낀다면 어떻게 돕겠는가? 또는 슬픔과 외로움의 늪에 허우적댄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장기간의 관계에서 오는 권태를 벗어나거나, 패배자가 된 듯한 절망을 줄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의 추천은 ‘꼼꼼하고도 지속적으로’ 어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조언하자면, 불안을 느낄 땐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의 North Pacific Ocean을 추천한다. 슬픔과 외로움에 빠져있을 땐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Fernando Pessoa를, 권태를 벗어나는 데는 잔 스틴(Jan Steen)의 화장실의 여인(Woman at her toilet),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은 데엔 명나라 때 만들어진 성스러운 보살상(Statue of the Buddhist saintly figure)을 감상하길 권한다.

2. 미술을 도구적 이유라는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생각은 누군가의 경종을 울리곤 한다. “미술은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그들의 답이다. “미술은 도구의 하나로 여겨지면 안 된다. 이것은 알약이 아니다. 특정 기능을 수행하길 요구해선 안 된다. 특히 누군가를 북돋기 위한, 마음의 평안을 위한 ‘이기적 접근으로서의 수단화’는 안 된다. 미술관은 약국이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에 매우 매우 반대한다. 문화가 우리에게 의미 있다면 이는 우리 감정과 이어져야만 하고 영혼(Soul)이라고 부를 수 있는 뭔가를 불러내야 한다. 미술관은 우리 안 깊은 내면을 위한 약국이 되어야 한다.

3. 종교는 정신적 힐링의 영역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수백 년간, 서양의 기독교 미술은 명확한 기능이 있었다. 이는 우리가 선을 향하고 악행을 그만두게 하는 역할이었다. 많은 불교 조각들도 확고부동한 미션이 있었다. 부처의 고요한 표정과 미소를 생각함으로써 내적인 안정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 시대 미술로부터 더 많은 것을 원해야 한다.

미술품에게 우리를 위한 어떤 역할을 하길 요구하며, 그들을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미술품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 정신을 도울 수 있다. 기분의 균형을 잡아주고, 희망을 주고, 평안함을 주고, 호의를 불러일으키고, 우리 의욕을 점화하고, 감사함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그것들은 더 효과적으로 전시되어야 한다. 현대 미술관들은 그들 미술품들의 치료 잠재성을 인식해야 하고, 이를 잘 전시함으로써 존경을 표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가? 미술관들은 ‘19세기’, ‘북 이태리 학파’ 등 담당 큐레이터들이 배웠던 학술적 전통을 반영한 ‘전형적 방식’으로 전시되곤 한다. 이는 우리 내면에 큰 울림을 주지 못할 것이다. 더 좋은 목차시스템은 장르와 시대를 뛰어넘고 우리 내적 욕구에 따라 미술품들을 한데 묶을 것이다.

4. 내 이상적인 미술관은 이렇다. 로비에 들어와 발견한 안내 지도에서 일, 사랑, 가족, 도덕성, 커뮤니티, 상황, 불안 등 우리가 자주 도움이 필요한 토픽들로 분류된 전시실을 볼 수 있다. 사랑 전시실에선 피사노(Pisano)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볼 텐데 우리가 너무도 빨리 잊곤 하는 감사함, 경탄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 미술은 사라져 버리기 일쑤인 소중한 감정들의 회상을 위한 은행이다.) 뒤이어 우리는 불규칙적이며 삐쭉삐쭉한 돌들이 완벽한 원형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리처드 롱(Richard Long)의 조각으로 향할 것이다. 이 완벽한 원형은 개개인의 차이가 ‘관계’ 안에서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에 대한 좋은 비유다.

5. 이런 미술관에서 미술은 오랫동안 신학의 도구였던 것처럼 ‘심리’를 위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미술관 산책은 우리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하지만 잊기 쉬운 몇몇 감정들을 마주하게 한다. 결국 미술관은 급속히 세속화한 사회 속 성당과 교회의 대체재로서, 훌륭하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열정’을 이뤄왔음을 주장할 수 있다.

이현동

출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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