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전략] 소련의 입장에서 본 1962년 쿠바 핵미사일 위기

후루시쵸프 서기장과 케네디 대통령

후루시쵸프 서기장과 케네디 대통령

*주: 에이케이스는 위기전략, 대응의 대표사례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반대 편이었던 후루시쵸프 시대 소련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알수 있는 좋은 자료가 나와 소개합니다.

0. 역사란 상반된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진실’에 근접해간다. 우리가 주로 한쪽 입장만 접하고 있다면 특히 더 필요한 과정이다. 1962년 미국, 소련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대표적이다. 영화 ‘D-13’과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로버트 F. 케네디가 쓴 책 ’13일’은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위기감으로 숨죽였던 당시를 생생히 전달한다. 다만 둘 모두 미국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The Cuban Missile Crisis’ 아티클도 이를 다루고 있다. 다만 소련 군사안보 전문가이자 모스크바 대학 교수인 빅토르 예신(Victor Yesin)이 작성한 점이 독특하고 흥미롭다. 미국의 대척점 입장에서 본 쿠바 미사일 위기는 어땠을까? 이를 요약, 소개한다.

1. 후루시쵸프가 쿠바에 핵미사일을 보낸 이유

1) 동맹국 보호: 후루시쵸프 서기장은 미국이 쿠바 카스트로 혁명정부를 전복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단언컨대 쿠바에 대한 어떤 공격도 허용치 않을 생각이었다. 동맹국 보호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는 동시에, 소비에트 연합의 군사력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신감을 굳건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반 무기로는 미국으로부터 쿠바를 방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었기에, 핵미사일만이 미국의 침략을 제지할 수 있는 ‘믿음직한’ 수단이었다.

2) 동등한 두려움 부여: 후루시쵸프는 핵 배치가 미국과의 핵전력 불균형을 극적으로 바꾸진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대신 이는 다른 종류의 동등함을 목표로 했다. 바로 ‘두려움의 동등함’이다. 미국 근처의 핵미사일 배치는 워싱턴이 국경 너머 미사일 배치로 모스크바가 느꼈던 두려움을 똑같이 느끼게 됨을 의미했다. “엉클 샘의 바지 안에 고슴도치를 넣어보자.” 그의 말이었다.

3) 정치적 거래: 큰 리스크에도, 후루시쵸프는 핵미사일 배치를 통해 미국, 나토에 베를린 관련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시에 미국, 영국, 프랑스를 서베를린에서 몰아내려는 의도도 있었다. 미국은 쿠바 미사일 제거를 대가로 거래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아울러 이런 정치적 소득으로, 공산주의 세계에서 소련의 위치를 공고히 하길 원했다. 공산세계 떠오르는 라이벌 중국에 대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말이다.

2. 미국이 쿠바 핵미사일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

1) 너무도 달랐던 지형: 쿠바는 뭔가를 은폐, 엄폐하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소련 지도부는 미사일 배치 준비 과정에서 이런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쿠바로 가져온 위장막은 쿠바 지역과 전혀 섞이지 않았다. 이 위장막들은 침엽수림에서 미사일과 발사대를 위장할 수 있게 디자인 되었다. 설치 직원들은 10-20미터 간격으로 떨어져있는 쿠바의 야자수 속에 이들을 설치해야 했다. 미사일 시설을 은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역설적이게도 ‘보안’이 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장군과 장교 일부만이 쿠바 미사일 배치 작전에 대해 알았다. 그들 중엔 미사일 전문가가 없었고 미사일 시설의 은폐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것에도 소극적이었다.

2) 서두름. 서두름: 서두름으로 프로세스를 위반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를 짚어보면, 쿠바에 미사일이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데다 설치를 위한 충분한 장비도 없었다. 폭우가 쏟아졌고 일꾼들은 하루 16-18시간의 강행군을 펼쳤다. 인력들이 시설 설치 시 적절한 은폐 수칙을 준수하는데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 참고: 미국은 U-2를 활용해 쿠바 내 설치된 미사일을 탐지했다. 다만 전부가 아닌 6개 중 5개뿐이었다. 미국이 이들에 선제 타격을 했다면, 나머지 한 기는 분명 미국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3. 핵미사일 철수의 이유

후루시쵸프는 쿠바 핵 배치 자체를 끝으로 보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의 쿠바 침공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는 그는 미국과의 ‘전쟁’은 결코 원치 않았다.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침공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증했을 때, 그 대가로 미사일 철수가 결정되었다. 몇달 후 미국은 터키 내 미사일도 비공개 하에 철수하기로 약속했다. 그의 입장에선 덤이었다.

4. 교훈

1) 핵전쟁에선 누구도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없다

쿠바 미사일 위기 전, 소비에트와 미국은 승리를 위해 핵무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곧 핵전쟁에선 승자가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만약 국민 1억명 이상이 죽는다면 승리는 허울뿐이었다. 추후 환경에 미칠 재앙까지 생각하면 얼마가 더 죽을 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런 깨달음은 1963년 크렘린과 백악관의 직통 라인 개설에 영향을 주었고 이는 어떤 위기라도 군사적 충돌 전 빠른 해결을 가능케 했다.

2) 서로 수용 가능한 결론을 위해 타협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양측은 타협과 상호 양보에 대한 의지를 밝혔을 때,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이는 상대에 대한 극한의 공격 대신 ‘상호 수용 가능한 대안’ 발견의 기회를 제공했다.

3) 상대와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지 확인, 또 확인하라

양측 결정 과정에서의 실수들이 문제 해결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다. 케네디는 1962년 10월 26일 저녁, 모스크바 주재 미대사관을 통해 후루시쵸프의 친서를 전달 받았다. 만약 미국의 ‘쿠바 침공이 없다’는 보장이 있다면 핵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부드러운 내용이었다. 케네디와 보좌진은 답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답장엔 그들이 그의 제안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10월 27일 아침 다른 내용의 편지 한 통이 왔다. 이 편지에선 다른 조건이 덧붙여졌다. 터키 내 미국의 핵미사일을 철수하라는 것이다. 논조도 더 강경하게 바뀌어 있었다. 미국은 크렘린 궁에서 강경파의 반란이 일어났거나, 후루시쵸프가 원래 입장을 바꿀 정도로 강경파의 압박이 거센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케네디가 받은 두 번째 편지는 먼저 쓰여진 편지였다. 이는 소련 외무성 직원의 나태함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직원이 첫 번째 편지 발송을 지연시켰던 것이다. 케네디는 부드러운 두 번째 편지를 먼저 읽고, 본디 강경한 논조의 편지를 이어 접했다. 이런 혼란은 로버트 F. 케네디가 아니었다면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질 뻔 했다. 그는 10월 27일 아나톨리 도브리닌(Anatoly Dobrynin) 주미 소련대사와 비밀리에 접촉해 오해를 풀 수 있었다.

4) 정보기관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마라

위기 관련 양측 군부의 행동들은 결정이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들에 의해서만 내려지면 안 됨을 보여줬다. 양국 모두 정보기관의 분석은 강경 일변도였다. 이는 군부에 그대로 전달되어 상호 적대감을 높이고,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는 데 한 몫을 했다. 토마스 파워(Thomas Power) 미 공군 사령관은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래선 안 되었을 10월 24일. 긴급 비상태세를 발령했다. 쿠바 주재 소련 공군 지휘관 스테판 그레코(Stepan Grechko)는 10월 27일 미 U-2에 발포 명령을 내렸다. 두 기의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비행기는 격추되었다. 이 사건은 미사일 위기를 거의 임계점까지 몰고 간 아찔한 행동이었다.

이현동

출처: The Cuban Missile Crisis (Victor Ye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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