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끝문장] 칼의 노래, 김훈 (2001년작)

김훈: 칼의노래

김훈: 칼의노래

1. 비장한 가을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칼의 노래>를 다시 들어도 좋을 것이다.

2. ‘이순신의 문장은 수사를 배제한다. 그는 매일매일 바다의 날씨를 꼼꼼히 살폈고 적과 아군의 형편을 기록했다. 그의 글은 무인다운 글쓰기의 전범이라고 할 만하다.’

3. 김훈의 문장은 극도로 단순하고 과하게 미려하다. 생전에 김근태는 그의 글을 “귀족적이다, 그러나 밉지가 않다”고 했다. 이 책에서 그의 글은 베일 듯한 ‘칼날’을 닮았다. 고혹적이다.

4.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5.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 첫문장
칼의 울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薄暮) 속으로 불려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 끝문장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유민영

출처: 생각의나무,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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