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커뮤니케이션] 케네디 대통령 재임기의 침묵을 떠올리자 –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케네디의 생각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케네디 대통령의 믿음

0. 11월 22일이면 존 F. 케네디 서거 50주기다. 미국에서는 케네디 암살의 미스터리를 다룬 뉴스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보도되고 케네디와 그의 통치를 조명한 서적들이 출간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던 제프 셰솔(Jeff Shesol)이 케네디와 관련한 글을 뉴요커에 기고했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에 대한 갈증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다.

1. 1962년 8월 케네디 재임기, 뉴욕타임즈는 75명 역사학자들이 평가한 역대 대통령들의 평가 결과를 보도했다. 케네디는 기사를 읽고 “놀라움을 표했다.” 우드로 윌슨과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높은 순위 때문이었다. 그는 윌슨이 적어도 멕시코에 대한 내정 개입, 제1차 세계대전 개입 결정등 적어도 두가지 재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평가 기준이 ‘정치적 교화’보다 ‘확실한 성취’에 있었다는 점이다. 목표에 대한 성취 없이 교화에 힘쓰는 윌슨, 루즈벨트는 제임스 포크, 해리 트루먼같은 실질적 성취를 이룬 이들보다 낮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2. “말은 많았으나 성취한 것은 적다.” 흥미로운 역설은 이런 그의 비판이 그의 재임기에 대한 비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사실이다. 케네디의 업적은 내부적(미국 평화봉사단, 우주개발 프로그램)으로도 외부적(핵전쟁 위기 탈출)으로도 명확했고, 종교적인 관용부터 공공영역 전반의 공적인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은 과소평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의 사후 50주기, 그는 그의 성취보다 그의 말로 기억되고 있다. 케네디 스피치라이터였던 테드 쇠렌센(Ted Sorensen)은 전후 냉전기, 어떤 인물의 단어와 경구들도 케네디의 것만큼 강한 국가적 기억을 남길 순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지적은 상징적이다. 케네디에 비할만한 유일한 커뮤니케이터로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의 스피치라이터들은 그들이 작성한 문구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요구할 지 모른다. 하지만 레이건의 사상은 오래 지속되었지만, 그의 문구들은 ‘단명’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3. 우연히 이뤄지는 건 없다. 케네디는 정치 입문 초기 명연설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초기 스피치라이터 중 한 명은 “케네디가 어떤 원고라도 그 생명과 리듬을 말려 죽여버린다.”고 불평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10년 이상 부지런히 노력했다.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분석했고, 보이스 코치의 컨설팅을 받았다. 그는 연설에 대한 가르침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쇠렌센이 그에게 준 많은 명연설문들을 모두 읽고, 활용을 위해 인상적인 구절을 적곤 했다. 정치적 연설의 힘은 그에게 자명한 것이었다.

4. 하지만 그에게 연설은 내재되었다가 주문에 의해 발현되는 힘이 아니었다. 케네디는 연설이 ‘올바른 단어들을 이용해 물을 와인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과 같다는 생각을 믿지 않았다. 대신 연설이 ‘실천의 선도자’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을 행할 때까지 무엇이라도 말하는 데 싫증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수다’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는 대중을 지루하게 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의심을 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어 그 자체론 충분치 않습니다.” 케네디는 암살로 인해, 연설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댈러스에서의 연설에서 이를 말할 예정이었다.

5. 오늘 날 케네디는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최근의 대통령들은 루즈벨트처럼 너무 많이 말한다. 그들은 연설하고, 트윗하고, 국제 회담, 의회의 협상, 문화 행사, 국가 기념일 등에 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논평한다. 2011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은 1985년 슈퍼볼 챔피언 시카고 베어스와 2011년 NCAA 여자농구 챔피언 텍사스 A&M Aggies를 찬양했고, 스티브 잡스와 무하마드 카다피의 죽음에 대한 논평을 했고, 레이프 에릭슨 데이(Leif Erikson Day)와 미국 캐릭터 기념주간(National Character Counts Week)을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그리고 투나잇쇼(The Tonight Show)에 출현했다. 이 모든 것이 ‘얘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많은 예들 일부다. 이는 현 대통령을 힐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연설문을 작성했던 빌 클린턴과 케네디의 연간 연설문 양을 비교해 보자. 1962년 케네디는 목차와 어펜딕스를 제외하고 903페이지를 채웠다. 1994년 이는 두배가 되었다. 무려 2159페이지에 달했다. 물론 클린턴은 오바마처럼 24시간, 7일 체제에서 재임했다. 케네디는 8시간, 5일 근무의 이점을 누렸다. 대통령들에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사치다. 만약 그랬다간 반대파가 그의 공백을 차지할 것이다.

6. 우리는 연설과 실천의 연결을 약화시켜 왔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신저(Arthur Schlesinger)는 내게 “정치 연설은 ‘저급 수사학’의 형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연설의 질이 케네디 시대보다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들의 말이 많아지며 역설적으로, 그들의 말의 무게가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11월 22일은 케네디의 서거일이다. “케네디가는 울지 않는다.”라고 그의 일가가 말했었던 것 같이 우리도 울지 말자. 대신 그 시대의 다른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자. 케네디의 억양과 명문대신 의미있는 순간, 잠시 침묵을 지킴으로써 실질적 성취 위에 놓여있는 진정한 ‘통치의 생각’에 다가서자.

이현동

출처: 뉴요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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