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커뮤니케이션] 이영표 : 은퇴의 시간, 가장 적절한 인간의 말을 남기다

웃음과 함께 한 마무리, 이영표

웃음과 함께 한 마무리, 이영표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나를 잊는 것은 당연하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그런 상황에 미리 적응을 했다. 시간이 지난 뒤에 많이들 기억해줄까 하는 궁금증이 있다. 축구를 즐겼던 선수로, 혼자 느끼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축구를 공유한 선수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영표가 축구를 즐겼는데 모두와 함께 즐겼다고 생각해준다면,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기억이 될 거라 생각한다.”

14일 이영표 선수가 선수생활을 마치는 고별 기자회견을 했다. 그의 말과 글엔 쓸모없는 것이 없고 담백하고 적절했다. 이영표 선수가 남긴 ‘감사의 글’과 ‘기자회견 일문일답을 분석해 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우리가 분석보다 아름다운 것, 그의 진심을 보았다는 것이다.

1. 반전 : 가슴에 담아온 사과를 밝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기자회견은 사과로 시작되었다. 선수생활을 하며 내내 담아온 묵직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오래 간직해 온, 언젠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마지막 순간에 가장 먼저 끌어내는 것은 용기이고 진심이다. 우리도 이런 이야기를 하나씩은 갖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2002년 터키와의 월드컵 4강전에서 첫실점을 만든 홍명보가 “사인이 맞지 않았다.”며 나중에 실수를 주어 담는 상황과 극적으로 비교된다.

“2000년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인 수비불안의 중심에 제가 있었다. 부끄럽고, 죄송하다. 이어 “(수비에서) 내 실수를 다른 동료가 뒤집어쓰기도 했고, 비겁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저 때문에 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 웃음 : 그는 울지 않고 행복하게 떠났다.

목이 메었다는 기사도 있지만, 그의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6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은퇴를 준비해 온 그만이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떠나는 이의 눈물도 아름다울 때가 많지만 너무 우는 장면만 보아온 우리는 그에게서 충분한 행복과 담백한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담대한 품위라고 써야겠다.

“은퇴를 준비하는 내내 너무 많이 울었다. 혼자서 울었다. 아쉬워서 흘린 건 아니었다. 너무 감사해서 울었다. 너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그만큼은 도움을 누군가에게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에 가족 몰래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전에 울어서 이 자리에서 울지 않는다. 나는 훌륭한 선수는 아니었다. 80점 정도? 하지만 축구와 함께 즐거웠던 것에 대해서는 100점을 주고 싶다.”

3. 사람 : 축구 보다 좋은 사람, 그리고 국가대표

국가대표라는 매개를 통해 나와 우리를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국가대표라는 거창한 이름만을 설명하지 않았고, ‘좋은 선수’ 보다 ‘좋은 사람’을 내세웠다. 그는 사람의 축구를 증명해 보였다. 그는 축구 머신이 하는 축구를 하지 않았고, 사람이 하는 은퇴를 했다.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축구.. 그래서 “축구는 내가 즐거운게 우선” 이라는 1인칭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저는,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태극기 앞에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을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서야.. 진정한 축구의 즐거움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좋은 축구선수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된다면 좋은 선수가 되는 건 훨씬 더 쉽다고 생각한다.”

4. 금도 : 그 어느 것도 넘어서지 않다.

전에 한 쓴 소리에 대해 축구에 대한 애정으로 양해를 구했다. 대표팀 경기 평가와 조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선수들에 대한 애정과 홍명보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자신이 말할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전략적으로 홍명보 감독을 칭찬했다.

“나보다 한국 축구에 관해서는 가장 잘 아는 분은 홍명보 감독님이다. 방향, 방법도 알고 계획도 갖고 있다. 내가 굳이 대표팀에 대해 코멘트를 하는 게 적절하진 않다. 마음 속으로 아쉬움도 들고 바꿨으면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그걸 느낀다면 감독님은 그 이상으로 느낄 거라고 본다. 여기서 그걸 언급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

5. 다시 반전 : 할 말은 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는 말해야 할 때 용기를 내어 말했다. 2011년 2월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축구협회에 대해 쓴소리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조광래 감독을 예의와 명분도 없이 해치워버린 축구협회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 것이다. 침묵하고 협회의 편에 선 박지성과 확연히 다른 장면이었다.

“너무 자주 대표팀 감독이 바뀌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팀이 강해지려면 여러가지 방법과 때가 있다. 위기의 순간을 딛고 벗어났을 때 성장한다. 그런데 너무 기다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해서 아쉽다. 남아공 이후 1년 반이 지났는데 감독이 바뀌었다. 한국은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4년 중 1년 6개월을 잃어버렸다.”
“유소년 축구 등 기본적인 시스템이 발전하지 못한다면 기술 위원회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대표팀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기술위원회를 비판할 수는 없다.”

6. 사족 : 딱 하나, 협찬사와 가족의 순서는 틀렸다.

겸양의 표현이겠지만 ‘감사의 글’ 끝에 협찬사에 대한 감사가 나온다. 나쁘지 않았지만 가족 앞에 나온 것은 과한 미덕이다.

* 감사의 글

Y.P.LEE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 깊은 좌절과 약간의 성공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시간들을 지나 이제 여러분들께 마지막 인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함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언젠가 한번은 축구팬 여러분들에게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2000년대 한국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수비불안] 이였고 저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사실 저 때문에 진 경기가 한두번이 아니였음을 고백합니다. 내 실수를 엄한 동료들이 덮어쓴 적도 있었고 정정당당히 마주해야 할 패배 앞에서 비겁한 변명과 핑계로 대신한 적도 많았습니다.

가끔 한국축구와 K리그에 일부러 싫은 소리를 한적도 있습니다.

한국축구와 K리그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축구가 발전하는 모습..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우리가 바꿔 나가야할 수많은 것들 사이에서 한국축구를 통해 성장한 어떤 선수의 작은 책임감이었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지난 27년간 치열한 그라운드를 내달리느라 그라운드 밖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던 저는.. 이제서야 27년간의 긴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경기장 밖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있는지를 깨닫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도움만 받았을 뿐.. “누군가에게 나는 어떠한 도움이 되었나..?” 라는 스스로의 물음 앞에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앞으로의 나의 삶이 어떠한 삶이여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나라를 대표해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뛴 155경기는 제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할 것 입니다.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축구.. 그래서 “축구는 내가 즐거운게 우선” 이라는 1인칭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저는,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태극기 앞에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을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서야.. 진정한 축구의 즐거움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라운드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축구의 즐거움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하지만.. 지난 27년간 스스로에게 충분히 정직했기에 아쉬움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저를 채워주신 모든 지도자 분들과 동료들 선후배님들 그리고 한국의 모든 축구팬들과 언론 여러분들.. 마지막 인사를 할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연맹..

마지막까지 함께해준 나이키와 지센,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들.. 사랑하는 아내, 두 딸에게 고맙고 감사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유민영

사진출처: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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