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 글쓰기에 대한, 내 인생 세 번의 질문

인생이 내게 세 번 말을 걸어왔다.
– 나는 어떻게 글쟁이가 되었나.

“강원국 씨, 글 좀 쓰나요?”
1990년, 대우증권 홍보실 상사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때 갓 입사한 신입사원.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그 후 내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

나는 글쓰기 젬병이다.
그저 서툰 정도가 아니다.
글 쓰는 게 두려웠다.
초·중·고를 그렇게 다녔다.
대학 때는 시험답안 쓸 때 말고는 글을 써본 기억이 없다.

그런 내가 꿈만 야무졌다.
기자가 되려고 한 것이다.
당연히 시험에 떨어졌다.
미련을 갖고 홍보실을 자원했다.
신문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해가 대우증권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
20년사를 만드는 일이 내게 주어졌다.
예순 중반의 퇴역 언론인 작가를 보조하는 게 내 임무였다.
자료를 챙겨드리고 그분 수발을 들었다.

그런데 이분께서 다른 회사 사사를 베껴 보내신다는 걸 발견했다.
상사에게 얘기했다.
계약을 물리고 계약금을 돌려받아 오란다.
한사코 부인하시는 걸 증거를 들이대 계약금 절반을 받아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간이 없으니 나보고 쓰란다.
이제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말이 되는가.
사사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단다.
기한 내에만 쓰면 된단다.
쓰라니 썼다.
개발새발 썼다.

겉만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고급 장정에 컬러 사진을 잔뜩 넣었다.
글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주 잘 만들었단다.
나는 그 순간, 글 잘 쓰는 사람이 됐다.
20년 사사를 단숨에 써내려간 글쟁이가 되고만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강원국 씨, 글 좀 쓰나요?”라고 물었을 때,
“아니오.”라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단언컨대,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몸은 튼튼해요?”
2000년 7월, DJ 정부 청와대 박선숙 공보기획비서관이 물었다.
대통령 연설 담당 행정관 면접 자리에서다.
이것이 내가 글과 관련하여 받은 두 번째 질문이다.

대우증권의 ‘글쟁이’가 된 후 사보와 사내방송 일을 했다.
일은 하다 보면 늘게 되는 법.
글 쓰는 게 두렵지 않게 될 무렵,
대우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됐다.
나는 대우증권에서 회장비서실로 자리를 옮겨
김우중 회장의 연설문 작성을 보좌하는 일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실황 생중계를 봤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 서울 출발 성명서를 낭독하는 장면이었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회담에 임하겠습니다.”
아내에게 무심코 한마디 했다.
“나도 저런 연설문 쓸 수 있는데…”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일주일 후 고도원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우선, 연락 받은 것 자체를 보안으로 하라고 주의를 줬다.
메일로 보내는 내용을 참고해서 광복절 경축사를 써서 보내란다.
몰래 숨어서 철통보안(?) 속에 경축사를 써서 보냈다.
얼마 후 면접 보러 오라는데,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택시를 잡아탔다.
청와대 가자고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광화문에서 내렸다.
물어물어 청와대를 찾아갔다.

그래서 만난 게 박선숙 당시 비서관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사람.
그중 기억나는 질문이 바로 앞서 얘기한 “몸은 튼튼해요?”
글을 쓰겠다고 온 사람에게 몸은 왜 묻는지 의아했다.

사흘이 지나자 않아 그 이유를 알았다.
대통령 연설문을 쓰는 일은 ‘노가다’였다.
몸이 튼튼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다른 말로 몸만 튼튼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과 만났다.
지금의 외교부 청사에 꾸려진 인수위원회 당선인 방에서였다.
아침 이른 시간.
메이크업을 하고 계시는 중에 웃으시며 한 말씀만 하셨다.
“글로 보여주실 거죠?”

글쓰기와 관련하여 내 인생에 던져진 세 번째 질문이자,
그 후로 그분의 임기 5년,
아니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아니 내가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인연의 시작이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12 Responses to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 글쓰기에 대한, 내 인생 세 번의 질문

  1. 허영채 says:

    강작가님을 응원합니다~

  2. 정여운 says:

    일은 하면 늘게 돼 있다 – 만고의 진리죠 ^^
    몸이 튼튼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진리 ~ 응원 합니다!

    • hyeondonglee says:

      성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3. Eunah Lee says:

    강원국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힘찬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4. Jungmi Cho says:

    강주간님~ 응원합니다~~~ 홧팅이요~

  5. Pingback: 강원국의 ‘두 대통령과 함께 한 전략적 글쓰기’를 마치며 | Acase

  6. 강하늘 says:

    이렇게 연설관이 되신줄은 몰랐네요 잘읽고 가요~!

  7. Pingback: 케이스 연구 | Acase | Borda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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