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 명문의 욕심없이, 내용에 집중하라

그대 시인, 소설가를 꿈꾸는가?
– 글쓰기가 두려운 이유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욕심 때문이다.
잘 쓰려는 욕심이 글쓰기를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문필가였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욕심을 안 부렸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글에 관한한 욕심이 대단했다.
두 분 모두 ‘이 정도면 됐다.’가 없었다.

먼저, 김대중 대통령
당시만 해도 대통령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연설비서관은 물론, 그 위 직급인 공보수석조차 연설에 관해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모든 소통은 필문필답.
연설문을 출력해서 대통령 부속실에 올려주면,
그 종이에 대통령이 직접 수정해주었다.

김 대통령은 그 바쁜 와중에도 연설문만은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로 고쳐서 내려 보냈다.
한 자도 고치지 않고 내려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연설문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각별했다.

수정된 내용을 연설비서실에서 알아보지 못할 것을 염려해,
다음 글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화살표로 표시하는 자상함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신께서 고친 것을 재수정할 때에는 화이트(수정액)를 쓰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있는데다,
한자를 약자로 흘려 썼기 때문에 이를 해독하는 데 애를 먹곤 했다.

대통령의 수정 정도에 따라 연설비서실 스스로 나름의 등급도 매겼다.
단어 몇 자 고쳐서 내려오면 만점 수준.
한 단락을 긋고 좌우 여백에 다시 쓰면 그것 또한 매우 양호한 것.
한 페이지(쪽) 전체에 가위표를 치고 뒷장에 다시 쓰면 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녹음 테이프가 내려오는 경우다.
대통령이 고쳐보려 했지만 어찌 손을 댈 수가 없는 경우다.
이런 때는 직접 녹음을 해서 내려 보낸다.
이것을 우리는 ‘폭탄’이라고 했다.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한 번씩은 폭탄이 터졌고,
연설 행정관 모두 폭탄 하나씩은 맞는 아픈 경험을 했다.

대통령은 ‘폭탄’을 녹음하기 전에 부속실에 물어봤다.
“이 연설 몇 분짜리지요?”
첫 마디 육성은 연설 제목이다.
“이것은 국군의 날 연설문입니다.”
놀랍게도 녹음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는다.
정확히 연설해야 할 시간에 꼭 맞는 분량으로 끝이 난다.
우리는 대통령의 육성을 실연문(대통령께서 연설 현장에서 직접 읽는 것으로 글씨 크기를 크게 하여 출력) 형태로 다시 옮겨 썼다.
그러면 대통령은 그것을 들고 가 연설을 했다.

연설에 대한 열의는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매년 연초부터 일 년 동안의 연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신년연설부터 시작해 3.1절, 4.19혁명, 5.18, 현충일, 광복절로 이어지는 주요 계기마다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를 미리부터 고민했다.
그리고 이런 연설문은 연설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완성되지 않았다.
고치고 또 고치고, 생각에 새로운 생각을 더했다.
특히 광복절 경축사와 국회 연설문이 그랬다.

2005년 2월 24일 밤 10시쯤 대통령이 찾는다.
다음날이 국회 연설인데, 전면 수정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주무시는 관저로 올라갔다.
깜깜한 관저 복도 저쪽에서 대통령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대통령은 혼자 걸을 때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1시간 가까이 구술이 이어졌다.
대통령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문한 내용으로 다시 쓰려면 국회 시간에 맞출 수 없다.
머릿속은 이미 자포자기 공황상태

비서실로 내려와서 쓰기 시작했다.
죽을 둥 살 둥, 허둥대고 있는데,
새벽 3시30분 대통령이 전화했다.
“어디까지 됐나?”
“3분의 2쯤 됐습니다.”
“내게 보내세요. 마무리는 내가 할게요. 수고했고, 고마 주무세요.”
대통령도 마음이 안 놓여 잠들지 못한 것이다.
새벽 5시 30분
“아, 이제 다했네. 나도 눈 좀 붙일 테니 뒷일은 알아서 해주게.”
그리고 몇 시간 후,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 섰다.

대통령은 이렇게 에너지가 넘쳤다.
글에 관해서는 대충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멋있는 글 욕심 버리고,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해야
그렇다면 대통령의 글에 관한 욕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글을 잘 쓰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과 배치되지 않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 쓰느냐와, 무엇을 쓰느냐의 차이다.
어떻게 쓰느냐,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멋있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의 고민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대통령의 욕심은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의 고민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그것이 곧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자신 없다고 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자의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명문을 쓸까 하는 고민인 것이다.
이런 고민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담감만 키울 뿐이다.

노래방 가서 빼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가수인줄 착각하는 경우이다.
노래를 못 부르면 어떤가?
열심히 부르는 모습 자체만으로 멋있지 않은가?

글의 감동은 기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용이 중요하다.
쓰고 싶은 내용을 진심을 담아 쓰면 된다.
맞춤법만 맞게 쓸 수 있거든 거침없이 써 내려가자.
우리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지 않은가.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One Response to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 명문의 욕심없이, 내용에 집중하라

  1. Pingback: 강원국의 ‘두 대통령과 함께 한 전략적 글쓰기’를 마치며 | A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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