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3] 생각의 숙성기간을 가져라

글쓰기도 와인처럼 숙성과정이 필요하다
– 생각이 글쓰기의 알파요 오메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공통점은 많다.
그 중 하나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늘 생각, 생각, 생각을 한다.
그리고 퍼뜩 떠오르는 생각은 반드시 메모를 한다.

그런 결과일까.
어떤 주제, 어느 대상에 대해서도 늘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와 자기주장이 있다.

2006년 신년연설 준비 회의
이날도 노무현 대통령은 막힘이 없었다.
참모들이 내심 감탄했다.
대통령이 물었다.
“내가 자네들보다 머리가 좋을까?”
대답이 없자,
“아닐세. 나는 자네들보다 열 배는 더 생각을 많이 할 걸세.
어느 때는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하네.
잠자리에서 생각난 것을 잊어버릴까봐 그렇다네.”

실제로 그랬다.
노 대통령은 회의 자리에서도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서 회의 중에 잠시 대화가 끊기는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없는 사람이다.”고 할 정도로 생각을 중시했다.
심지어 장관이나 참모들에게 의견을 물어,
세 번 이상 본인 생각을 얘기하지 못하면 인사를 고려할 정도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김 대통령 스스로 생각을 많이 했다.
잠자리 들기 전에 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 동안 읽고 듣고 경험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 세 번 정도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두 번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생각, 어떤 입장일까?
세 번째, 이 두 가지 생각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두 대통령의 글쓰기 힘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보는 널려 있다.
따라서 글감은 많다.
구슬을 꿰는 줄이 필요하다.
그 줄을 어떻게 얻을 수 있나?
바로 생각이다.
생각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두 대통령은 서로 다른 점도 많다.
그 중 하나가 생각의 변화 주기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간 해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아 하지만,
한번 정립된 생각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생각에 관해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생각이 진화한다.

여담이지만, 어느 분의 연설문 쓰기가 쉬울까.
당연히 김대중 대통령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연설문을 쓰는 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황에서 과녁에 화살을 맞히는 것과 같다.
그 시기 이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과녁은 정지해 있지 않다.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 얼마나 맞히기가 어렵겠는가.

아무튼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정해지면 그 글의 주제에 관해 당분간은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
이 빠져 있는 기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다.

물론 PC 앞에 앉자마자 단번에 일필휘지하는 사람도 있다.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천재는 그렇게 많지 않다.

와인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숙성기간이 필요하듯이,
글도 생각의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단박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생각이 안 나면 무의식의 세계에 잠시 내버려둬도 좋다.
PC를 끄고 산책을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때로는 며칠씩 묵혀두고 다른 일을 할 필요도 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언제일지 모르고, 어느 장소일지 모른다.
혼자 걷다가, 혹은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또는 화장실에서 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된다.

2003년 4월 국회 국정연설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취임 후 첫 번째로 맞는 큰 연설이어서인지 대통령은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날도 일요일, 관저에서 일곱 시간 가까운 회의가 이어졌다.
대통령은 갑자기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축구를 할 만큼 관저 마당이 넓지는 않지만,
우리는 30분 정도 대통령과 공을 주고받았다.

대통령은 잠시 쓰는 것을 멈추고 생각의 숙성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One Response to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3] 생각의 숙성기간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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