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6] 글을 시작하는 12가지 방법

“말과 글은 시작이 절반”
– 첫 머리 시작 방법 12가지

말과 글의 성패는 첫 마디, 첫 문장에서 판가름 난다.
거꾸로 얘기하면, 출발에서 실패하면 독자와 청중은 떠난다.
그런 점에서 ‘시작이 절반’이란 속담은 말과 글에 정확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글이 밥이 되는 전업 작가에게도 그렇고,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도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례적인 시작을 피하려고 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시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김대중 대통령은 격식을 갖춘 출발을 선택했다.
언제나 시작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었다.

어느 쪽을 택하건 글 쓰고 말하는 사람의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는 시작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한 마디’ 해야 하는 자리가 있다.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언젠가 올 수 있는 재앙(?)과 같은 것이다.
아무 대비 없이 살다가는 어느 순간 그런 재앙으로 인해 머릿속이 하얗게 될 수 있다.

사람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몇 가지 팁을 항상 머리에 넣고 다닌다.
사회자나 주최 측에서는 나를 배려해준다고 ‘한 말씀’을 권했는데, 그것이 나에게 봉변이 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1. 소감
기쁘다든가, 영광스럽다든가, 반갑다든가, 이런 말로 그 자리에 참석한 소회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두 대통령 모두 자주 썼던 서두였다.
하지만 자신을 과도하게 낮추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대통령은 ‘영광스럽다’는 등의 표현은 쓰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 군인이나 경찰, 젊은이들이 모인 행사에서는 여러분을 보니 ‘믿음직하다’, ‘자랑스럽다’ 이런 말도 자연스럽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장에 가서 느낀 것만을 소감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
소감으로 말을 시작할 거면 미리 준비해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2. 인연이나 에피소드
노 대통령이 간혹 썼던 방식이다.
2003년 10월 서울 YMCA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서두 연설이다.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YMCA 회원입니다. 그리고 목사님, 기독교인과 함께 기도할 때에는 항상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005년 2월 오마이뉴스 창간 5주년 축하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창간되고 한 달쯤 지나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당시 오마이뉴스나 저에 대한 평가는 ‘과연 될까’였습니다. 그러나 됐습니다.”

나도 배워서 써먹었다.
참여정부 이후에 전경련에 가서 강연할 일이 있었다.
처음 시작할 말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사실은 이 고민이 해결되면 그 다음은 어렵지않다.
결국 이 말로 시작했다.
“나는 김우중, 조석래 두 분의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그러니 저도 전경련의 한 식구와 같습니다.”
강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3. 행사 장소에 대한 의미 부여
행사 장소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우, 이에 대한 소감을 밝힌다.
2005년 12월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착공식 노무현 대통령 축사
“문화전당이 들어서게 될 이곳 금남로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자랑스러운 역사의 현장입니다.”

2005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기념식 연설
“이곳 용산은 지난 한 세기동안 청나라와 일본, 미국의 군대가 번갈아 주둔해왔던 곳입니다.”

4. 소개에 대한 겸양
자기가 말해야 할 순서에 앞서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소개말을 받아서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 순발력 있어 보이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대통령 해외순방 시에는 거의 빠짐없이 순방국 경제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 있다.
이 경우에 그 나라의 경제단체장이 대통령을 소개한다.
당연히 최상의 예우를 갖춰 소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소개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말을 시작하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적어도 ‘과분한 소개에 감사한다’는 한 마디는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말을 떼기 시작하면 말하는 사람도 편안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자기에 대한 소개가 없는 경우에는 앞서 얘기한 사람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너무 좋은 말씀이어서 뒤에 얘기하는 사람이 부담이 많이 됩니다.”

5. 관계자에 대한 감사 표시
대통령은 칭찬하는 사람이다.
예외라고 하면 청와대 회의 정도라고나 할까.
그밖에는 최상의 찬사로 칭찬해줘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다.
공무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아낌없이 칭찬했다.
누군가를 언급하는 것, 즉 거명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의 말과 글에서는 엄청난 칭찬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이 군 시찰 가서 쿡 찔러 직속상관 관등성관만 대도 승진이 될 정도였다고 하는 확인되지 않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할 말이 생각나지 않거든 그 자리에서 감사할 사람만 얘기해도 본전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6. 의표를 찌르는 시작
뜬금없이 단정하고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귀를 번쩍 뜨이게 강렬한 첫 마디는 분위기를 압도할 수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노예로 태어나 미 정부 고위직에 임명된 최초의 흑인인 프레더릭 더글라스는 1852년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 초대되어 연설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미안합니다만, 왜 저를 불렀습니까?”
이어서 다음에 “저와 제가 대변하는 사람들은 이날을 경축할 이유가 없습니다.”
청중의 집중도가 어떠했을지는 굳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어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제47주년 4·19혁명 기념사에서 내가 그동안 4.19 행사에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4.19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통상적인 4.19 기념사와는 다른 시작이었다.

거두절미 방식으로 가장 인상 깊게 시작한 글이 2006년 4월에 발표한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담화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독도는 우리땅입니다’로 시작하는 명문이다.

7. 질문으로 시작
긴장감을 높이고 말하는 사람의 부담을 청중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청중을 자기의 연설이나 글 안에 끌어들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당신은 구경꾼이 아니야. 정신 빠짝 차려!’하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다.

두 대통령 모두 국민의 생각만큼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나라가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었다.
‘이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2008년 1월 이명박 당선인이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관해 묻기만 하는 것으로 기자회견문을 작성했다.
“우리 정부가 큰 정부입니까?
크다면 세계에서 몇 번째나 큰 정부입니까?
공무원 숫자, 재정규모, 복지의 크기, 각기 세계에서 몇 번째나 큰 정부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연이어서 조목조목 물어본다.
연설 중반부까지 질문이 무려 40개 가까이 이어진다.

8. 최근 사건 및 뉴스 언급
최근에 있었던 일에 관해 언급한다.
이것은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시의성 있고 주목도도 높일 수 있다.
2005년 4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원법회에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시작했다.
“먼저 산불로 인해 낙산사가 크게 훼손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2003년 취임사에서도 첫 시작은 이랬다.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빌면서,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9.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시작
“이런 자리 처음입니다. 어디 가서 말을 잘 못합니다. 많이 떨립니다.”
이렇게 첫 마디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 다음 말이 훨씬 수월해진다.
듣는 사람들도 말하는 사람의 편이 된다.

10. 하고자 하는 말의 요점
자신이 하고자 말의 요지를 얘기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혹은 결론부터 얘기한다고 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의 요점을 얘기한다.
친절하고 안정감 있는 방법이다.
특별한 연출도 필요 없다.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라고 담담하게 하면 된다.
약간의 연출을 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무슨 얘기로 시작할지 고민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초보일수록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무난하다.
고수가 될수록 기본으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김대중 대통령은 이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

11. 유익 강조
내 글을 다 읽었을 때, 내 말을 끝까지 들었을 때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인지를 서두에 알려준다.
“글쓰기에 관한 오늘 내 강연을 다 듣고 나면 적어도 글을 쓰는 것이 두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들으면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집중도를 높인다.

12. 재미있는 일화나 속담으로 시작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흔히 쓰는 것이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
시작을 너무 길게 끌면 안 된다.
사람들은 본론을 듣고 싶어 한다.
정 시작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안녕하세요.’로 시작하자.
꼭 멋있게 시작할 필요 없다.
평범한 시작이 어설픈 시도보다 나을 수도 있다.

2004년 6월 제17대 국회개원식에 참석해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했다.
어떻게 시작을 할지 연설비서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첫째, 조크로 시작해볼까?
“브라질에서는 국회를 ‘고장 난 에어콘’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우리 17대 국회는 ‘성능 좋은 에어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여야, 진보 진영의 특정 의원을 거명하면서 친근감 표시
셋째, 17대 국회부터 한글 명패를 사용하게 된 것을 언급하며 달라진 국회 이야기로 시작
넷째,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기억 언급

하지만 대통령은 어느 것도 채택하지 않았다.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제17대 국회의 개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17대 국회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국회’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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