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채홍의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확성기를 단 인력거가 뉴스를 전한다 – 잡지 COLORS 86호 읽기

1. 인력거가 뉴스를 전하는 나라

방글라데시에선 영화상영 일정이나 기도 일정을 인력거에 달린 확성기로 듣는다. 2007년 11월 태풍 ‘시드르’가 올 때도 사람들은 이 확성기로 대피 예보를 들었다. 4만 명이 넘는 인력거 운전수가 동원되었다. 사람들은 소식을 접하고 대피했다. 미국에선 허리케인이 닥칠 때 신문·방송보다도 빨리 트위터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한다. 방글라데시에선 인구의 단 5퍼센트만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

2. 마피아와 고독한 전쟁을 벌이는 60세 뉴스 캐스터

이탈리아 시칠리 섬의 작은 마을에 사는 만 60세 피노 마니아치씨는 1999년부터 시칠리아 마피아들이 저지른 범죄를 매일 오후 방송으로 전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텔레야토 TV에 뉴스캐스터로 나와 뉴스를 전한다. 구타와 협박·앙갚음이 뒤따르지만, 줄담배를 피우며 일을 계속한다.

이탈리아01

3. 드론 공격 추적자

파키스탄의 와지리스탄에서 누어 베흐람은 미국의 드론 공격이 일어난 곳을 추적하고 있다. 무기를 장착한 드론 서너 개가 와지리스탄에 밤낮으로 날아다닌다. 누어 베흐람은 공격이 일어난 곳을 찾아 미사일 잔해, 피 묻은 신분증, 옷조각을 파내고 현장 사진을 찍어 세계 언론에 알린다. 사진 중에는 어린이 시신도 섞여 있다. 이 지역에 외신 기자는 출입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600구가 넘는 시신을 목격한 누어 베흐람이 추정하기엔 드론 공격으로 이슬람 과격주의자 1명이 죽을 때마다 민간인 15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

파키스탄

4. ‘재난 포르노그래피’ – 재난을 찍는 사진기자의 딜레마

대지진이 일어난 며칠 뒤인 2010년 1월 19일,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에서 파비엥 쉐리스마라는 소녀가 액자 세 개를 훔치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파비엥의 주검을 찍은 사진은 곧 세계에 알려졌다. 파비엥의 주검 사진은 대지진으로 절망에 빠진 아이티를 상징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사진가 두 명이 이 사진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난 두 달 뒤, 사진가 네이선 웨버는 ‘취재 후기’로 찍은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파비엥의 시체를 찍고 있는 동료 사진가들의 모습이었다. 죽은 소녀와 불과 이삼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무리를 이루어 저마다 바쁘게 셔터를 누르거나, 카메라 설정을 매만지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 무렵 아이티의 대재앙 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넘쳐나는 것도 역시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급기야 영국 재난구호위원회 최고 책임자인 브렌던 곰리는 불필요하게 고통을 드러내는 이미지인 ‘재난 포르노그래피’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아이티 사람들 역시 사진기자들에게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아이티

5. 잡지 “COLORS”가 전하는 지구 위의 ‘뉴스 만들기’ 풍경

베네통에서 만드는 잡지 “COLORS” 86호 ‘뉴스 만들기’에 실린 기사들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찾은 다양한 ‘뉴스 만들기’ 풍경을 보여준다. 나라별로 몇 가지 더 소개한다.

– 영국, 미국: 신문산업의 규모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고 신문 산업 종사자들이 대량 해고된 뒤, 살아남은 기자들은 짧은 시간에 몇 배나 더 많이 쓰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 압박 때문에 생기는 오보 사례. 그리고 뉴스 기사의 많은 양이 보도자료에 의존하거나 그대로 베껴 쓴 것이다.
– 프랑스, 미국: 파파라치들이 유명인들을 쫓아다니는 방식. 드론을 사용하기도 한다.
– 이스라엘: 단위 면적당·국민 일인 대비 지구 상에서 가장 해외 기자단이 많다. “크로커다일”이라 불리는 젊은 종군 사진가 지망생들은 자신의 경력을 쌓게 해줄 사진을 찍기 위해 이스라엘로 몰려든다. 2012년 11월 14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트위터로 전쟁을 선포했다.
– 이란, 미얀마: 지독한 검열 사례들
– 이탈리아, 러시아, 북한: 방송을 장악한 권력자의 여러 모습
– 파키스탄: 알 카에다의 방송 제작법과 소셜미디어 전략
– 리비아: 카다피가 붙잡힌 현장 사진은 반란군들이 녹화해둔 카메라폰 액정 화면을 찍은 것이었다. 이 사진이 전 세계 신문 일면을 장식했다.
– 일본: 2011년 쓰나미가 일본을 휩쓸었을 때 “이사노마키 히비” 신문 기자들은 6일 동안 플래시를 비춰가며 신문을 손으로 써서 만들었다.
– 시에라리온: 1996년 대통령 선거를 ‘혁명연합전선(RUF)’ 반란군들은 부정선거라 주장하며 유권자들의 손을 잘랐다. 이때 두 손이 잘린 패트릭 라하이(당시 10살)는 2012년 11월 시에라리온 총선을 휴대전화 문자로 보도했다. 라하이는 영국 NGO ‘레이더’가 훈련한 45명의 시민 기자 중 한 명이다. 시민기자 가운데 절반은 장애인이다.
– 멕시코: 범죄를 취재하다 살해당하는 기자들. 모든 언론이 범죄 조직에 대해 입을 다물자 익명의 저자들이 쓰는 “엘 블로그 델 나르코”라는 사이트 등장. 갱단들의 악행에 관해 멕시코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기록인지도 모른다. CNN, 워싱턴포스트, UN, FBI를 팔로워로 두고 있다.

영국_일본_시에라리온

6. 큼직큼직한 사진, 짧고 간결한 글, 이해를 돕고 설명을 보충하는 일러스트 – 디자인과 편집

“컬러스”는 예의 큼직큼직한 사진으로 지구촌의 뉴스 생산 방식을 툭 던지듯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 사진은 무심한 것 같지만 말과 글을 대신해 쓰는 충분히 의도된 메시지이다. 때때로 어떤 사진은 시각적으로 불편하다. 불편해도 그 사진이 상황을 가장 충실히 보여준다면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글로 쓴 기사는 핵심을 간추린 정보들이다. 길게 쓰지 않는다. 86호는 메인 기사 외에 보충기사라 할 만한 것을 본문 크기 반만하게 만들어 꼭지 사이사이에 삽지 형식으로 끼워 넣었다. 그리드를 분할해 박스형 기사를 만들기 보다는 넘겨 보는 작은 화면으로 처리해서 기사의 성격을 분리시켰다. 메인 기사의 이해를 돕고 설명을 보충하는 만화형식의 일러스트도 여기에 들어 있다.

이탈리아02

7. “뉴스란 누군가 인쇄되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광고에 불과하다.”

이 말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조지프 퓰리처와 경쟁적으로 선정적 보도를 하며 ‘황색언론’을 만들어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한 말이다. “컬러스”는 이 말을 표지와 부록 첫 페이지에 담았다.

표지와부록

‘뉴스’란 것을 곱씹어 본다.
뉴스는 무엇일까? 뉴스는 전달하려는 자가 있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전달자는 목숨을 위협 받을 정도로 뉴스란 절박하다. 절박함은 실현 가능한 매체를 찾고 그 매체는 어떤 곳에선 트위터지만,어떤 곳에선 구형 노키아 휴대폰이거나 인력거에 달린 확성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재난의 현장에선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종이 신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서채홍

* 이미 87호가 나와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컬러스 애호가들을 제외하면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서 86호를 소개했다. “COLORS”는 이탈리아의 의류잡화 브랜드 베네통에서 만드는 계간 잡지다. 1991년 창간 당시 그래픽 디자이너 티보 칼맨이 편집장을 맡아 혁신적인 잡지로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디자이너가 잡지 편집장을 맡는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베네통 광고에 쓰인 여러 충격적인 사진으로 잘 알려진 사진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크리에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컬러스의 생각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는 곳과 문화는 달라도 지구 위에 함께 사는 똑같은 인간이란 점을 강조한다.

컬러스의 핵심 수단은 사진이다. 매호 세계 곳곳의 삶을 보여주는 보편적인 주제를 한 가지씩 정해서 사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행이나 스포츠를 다루기도 했지만, 인종, 종교, 에이즈 같은 예민한 주제도 있었다. 인종 문제를 다룰 때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얼굴을 흑인처럼 바꾸고, 에이즈를 다룰 때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에이즈 환자처럼 만든 사진을 실어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까지 포토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잡지로 손꼽힌다. 영어와 이탈리아어 두 개 국어로 만들다가 지금은 프랑스, 스페인, 한국어판도 내고 있다. 2010년 가을호(78호)부터 영어가 병기된 한국어판이 나왔다. 컬러스는 현재 베네통이 설립하고 후원하는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 ‘파브리카’에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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