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8] 대통령 연설문 준비과정에서 보는 글쓰기 순서

대통령 연설문 준비과정을 보면 글쓰기 순서가 보인다.
– 대통령 연설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대통령 연설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글쓰기의 과정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필요한 절차는 참석하는 행사가 정해지는 것이다.
대통령 참석을 요청하는 행사는 셀 수 없이 많다.
누구나 대통령이 와 주기를 희망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이곳저곳 다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광복절이나 3.1절 같이 응당 참석하는 행사가 있다.

이처럼 당연히 참석하는 행사 외에는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행사의전회의에서 결정하게 된다.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행사의전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행사 참석은 그 자체가 메시지이다.
예를 들어, 2003년 12월 소프트엑스포 및 디지털 콘텐츠 페어 개막 행사 참석은 소프트웨어 산업을 진흥시키겠다는 정부와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행사 참석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된다.

글을 쓰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디에서 기고 요청을 받거나 누군가에게 글을 쓰고자 하는 경우가 그렇다.
우선 쓸지 말지를 충분히 생각한 후 결정해야 한다.

행사에 참석하기로 결정이 되면 두 번째 단계로 그 행사의 개요에 대해 파악하게 된다.
– 행사 제목
– 행사 일자 및 장소
– 행사 식순 (대통령 앞에 연설을 하는 사람은 있는지)
– 대통령의 연설 시간
– 참석자 현황 및 성향 (특히 거명해야 할 주요 인사는 누구인지)
– 방송 및 통역 유무

글쓰기에 있어서도 자신의 글이 언제 어느 지면에 실리는지, 써야 할 분량은 얼마인지, 내 글을 읽는 독자는 주로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글이 들어가는 지면이나 내가 말해야 하는 행사의 성격과 취지는 무엇인지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하면 ‘봉창 두드리는’ 말이나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느 자리에서나 세 가지 내용의 말과 글이 필요하다.
첫째,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둘째, 청중이나 독자가 듣고 싶은 말
셋째, 상황에 맞춰 꼭 해야 하는 말
이 세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글, 좋은 연설이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연설문을 쓰기 위한 재료를 찾는 것이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행사 참석을 요청한 해당 비서실에서 초안을 작성하여 보내준다.
물론, 그 초안 역시 해당 비서실에서 만드는 것은 아니고 해당 부처나 행사 주관기관에서 작성하여 보내온 것을 해당 비서실에서는 문제가 없는지 검토만 한 후 연설비서실에 보내준다.

신년연설이나 광복절 경축사, 국회 시정연설 등은 해당 비서실이 없고, 또 중요한 연설이기 때문에 비서실장 주재로 별도의 TF팀을 구성하여 초안 작성 작업을 한다.
이 경우에도 작성된 초안은 연설비서실로 넘어온다.

연설비서실 자체적으로도 자료를 찾고 참석 행사에 대한 메시지 연구를 한다.
어차피 해당 비서실에 받은 초안은 참고만 할뿐, 그것을 근간으로 삼지는 않는다.
해당 비서실 초안에서 파악하는 것은 이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에서 대통령께 듣고 싶은 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에 있어 자료를 찾아보고 챙기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재료가 부실하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기초가 부실한 건물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단계는 연설비서실에서 초고를 쓰는 것이다.
해당 비서실에 받은 초안, 그리고 그동안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 메모 지시 등을 참고하여 초고를 작성한다.

먼저, 해당 계기의 연설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설득인지, 제안인지, 당부인지, 설명인지, 아니면 단순 축하인지 등 주된 목적을 생각해 본다.

대통령께서 지시한 메시지를 담고, 지시가 없는 경우에는 기존에 했던 말씀 등을 토대로 행사 성격에 부합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행사 참석자에 매이지 말고, 대국민 메시지라는 관점에서 작성한다.
행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그 시점에서 중요한 이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고려한다.
연설 한 계기에만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준공식 축사라고 할 때, 해당 산업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관한 것까지 언급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또한 대통령님의 국정운영 철학과 핵심메시지는 유사한 행사 계기에 표현을 달리하여 반복해서 담는다.

신문에서는 어떤 제목을 뽑고, 방송에서는 대통령님 연설 중 어느 부분을 육성으로 인용할 것인지 고려한다.
따라서 연설문의 주제를 한 줄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이나 정책, 예산 등 후속대책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이해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연설의 결과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섯 번째는 검토 단계이다.
글쓰기 과정에서는 퇴고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검토 단계라고는 하지만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 단계를 거치면 연설비서실에서 보고한 초고는 온 데 간 데 없고, 전혀 새로운 연설문이 탄생하기도 한다.

우선 초안을 보내온 해당 비서실의 검토를 거친다.
여기에서는 주로 사실관계 오류만 찾는다.

그리고 e지원이라는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을 통해 대통령께 보고된다.
대통령은 e지원 상에서 직접 수정하거나, 연설비서관을 불러 수정 지시를 한다.
때로는 이 과정이 5~6차례나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서 연설문이 확정되면 연설비서실은 마지막 점검을 한다.
이때 점검하는 체크리스트는 이렇다.
– 대통령님 지시사항 중 반영되지 않은 것은 없는가?
– 예정된 연설시간에 맞는 분량인가?
– 내용상 군더더기는 없는가?
– 통계 및 사실관계를 관계비서실과 꼼꼼히 점검했는가?
– 연설의 운율은 맞는가?
– 외래어 표기 등 맞춤법에 오류는 없는가?
– 앞서 연설하는 사람의 연설문과 중복되지는 않는가?
– 연설 서두에 거명해야 할 사람을 빠뜨리지는 않았는가?
– 연설문 작성이후 변동된 상황은 없는가?

이러한 점검 단계를 거치고 나면 행사에서 대통령이 직접 읽을 낭독본을 만들어 의전비서실에 전달하는 것으로 연설문 작업이 종료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문 작성 과정이 좀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이후 연설문을 보고할 때에는 자료 제공, 핵심 메시지 구성 등에 관하여 협의한 과정을 함께 보고 바랍니다.”
<2004년 11월 제41회 무역의 날 연설문>

“최초 초안에서 수정과정을 거쳐 최종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의 문서로 정리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시스템의 의미입니다.”
<2006년 6월 제51회 현충일 추념사>

또한 두 대통령 모두 연설문 작성에 관한 한 연설비서실이라는 공적 조직을 활용했다.
조직과 시스템을 중시한 것이다.
연설문은 본인의 말이기 때문에 더 나은 연설문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 없고, 그럴 경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한 번씩 써보게 하는 유혹을 느낄 법도 한데, 두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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