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9] 글쓰기의 원천, 독서

책 읽는 대통령과 청와대 리더십비서관
– 독서와 글쓰기

책과 인연이 깊다.

초등학교 다닐 때,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아버님께서 사오셨다.
엄밀히 얘기하면 얻어 오셨다.
아버님이 할부 책장사에게 사셨는데 반품하시겠단다.
당시는 먹고살 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할부 책장사가 많았다.
반품한다는 말씀에 밤새워 읽었다.
아마도 그 책이 계속 집에 있었으면 지금도 못 읽었을 것이다.

중학교 다닐 때는 이모부 댁에 더부살이를 했다.
이모부는 전북 문단에서 이름만 얘기하면 누구나 아는 시인이었다.
집에 책이 많았다.
양옥집 이층이 온통 책뿐이었다.
오죽하면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지 모른다고 했다.
책에 묻혀 자고 밥을 먹었다.
그때 우리나라 소설 중에 야한 것은 거의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 전북에선 제일 큰 서점에 입주 과외를 했다.
매일 밤 11시 이후에는 서점 책이 모두 내 것이었다.
그 집에서 나올 때, 내 방에 책이 한 가득이었다.
지금도 전주 중심가에 그 서점이 있다.
30여 년 전에 이미 2층짜리 서점이었으니 큰 서점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대학교 때는, 과외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책 사는 데 썼다.
읽지는 않고 모으기만 했다.
그 책이 3천 권을 넘었다.
책에 짓눌려 살기 싫어 2012년 말에 모두 팔았다.
헌책 사는 분이 한 트럭을 실어갔는데 몇 십 만원 주셨다.

책을 모두 정리하고 이제는 책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책 만드는 출판사에 다니게 됐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이런 책과의 인연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서와 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독서 없이 글을 잘 쓸 수 없으며, 글을 잘 쓰는 사람치고 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특히 그랬다.

김대중 대통령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감옥에서의 독서는 유명하다.
정치, 경제는 물론, 철학, 신학, 역사, 문학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러 권을 펴놓고 돌려가면서 하루 열 시간 정도 독서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고서 이런 농담 아닌 농담도 했다.
“마음껏 책을 봤으면 원이 없겠다. 이럴 때는 가끔 감옥에 있을 때가 그립기도 하다.”
청와대 시절에는 큰 방 하나가 책만으로 가득 찼다.
대통령은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으면 비서실에서 보고한 책 요약이라도 꼼꼼히 찾아 읽었다.
독서 중독인 셈이다.
김 대통령이 휴가 때 자주 찾았던 청남대의 동상이 책 읽는 모습이었을 정도로 휴가 중에는 아주 독서삼매에 빠졌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는 사색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노 대통령도 책읽기를 좋아했다.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읽었다.
주위에 늘 책이 있었다.
하루에 한 쪽이라도 읽었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책은 장차관과 참모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했다.
퇴임해서는 책에 더욱 빠져들었다.
찾아오는 사람들과 책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즐겨했다.
재임 중에는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청와대 안에 ‘리더십비서관’이란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리더십비서관의 역할은 현안에 대한 의견 개진도 있었으나,
주로 국내외 책이나 칼럼, 논문을 읽고 그 요약본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 한 건씩 대통령께 보고되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코멘트를 하고, 궁금한 건 물어봤다.
그 시간이 대통령에게는 독서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초대 리더십비서관이자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외교관 출신 이주흠 비서관의 발탁 배경도 대통령이 그가 쓴 책 <드골 리더십과 지도자론>을 읽고서다.

두 대통령 모두에게 독서는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두 대통령 모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해가며 책을 읽었다.
주로 글쓰기와 정책 수립에 참고가 되는 부분에 밑줄이 그어졌다.

김 대통령에게 독서의 완결은 읽은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 역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나 영감을 정책에 반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책으로 집대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대통령이 읽고 있는 책이나 추천 도서는 그 목록 자체가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대통령의 관심분야를 알 수 있는 주요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 대통령이 탐독한 윤성식 교수의 <정부혁신의 비전과 전략>은 향후 정부혁신의 방향을 예측해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됐음은 물론이다.

두 대통령 모두 미래 예측 도서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존 나이스비트 등 미래학자의 책을 많이 읽었고, 노무현 대통령도 앤서니 기든스, 폴 크루그먼, 제러미 리프킨의 책을 애독하고 추천했다.

하지만 두 대통령의 독서 패턴은 좀 달랐다.
노 대통령이 속독이었던 반면, 김 대통령은 정독하는 쪽이었다.
책 내용이 완벽하게 자기 것이 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곱씹었다.
또한, 노 대통령이 근자에 나온 책 가운데 읽어봐야 할 책을 선호했다면, 김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고전에 심취했다.

두 대통령은 평생을 책과 함께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노 대통령은 마지막 남긴 글에서 책을 읽을 수 없어 힘들다 했고,
김 대통령이 남긴 책상에는 <제국의 미래>, <오바마 2.0>, <조선왕조실록>이 놓여 있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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