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1] 긴장의 연속이었던 청와대 연설비서실 생활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굶은 사연
– 청와대 연설비서실과 과민성대장 증세

청와대 생활이란 게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오늘도 무사히’란 구호는 택시 기사님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설비서실은 더욱 그러하다.
하루에 평균 두세 개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는 대통령.
이 모든 일정에는 말과 글이 따른다.
여기에 영부인 일정까지 연설비서실의 몫이다.

연설문과 관련한 사고 유형은 다양하다.
내용 중에 사실관계가 틀린 것이 있거나, 대통령이 주문한 내용을 빠트렸거나, 맞춤법에 어긋나는 오탈자가 있거나, 대통령이 읽을 낭독본 출력을 잘못했거나 등등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게 연설비서실 일이다.

이전부터 장이 좋지 않았던 나는 청와대 8년 동안 과민성대장염을 지병으로 얻었다.

2002년 국장 진급 임명장 받는 날
청와대 행사라는 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문제가 된다.
지각을 하거나 예행연습에 불참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과천에서 경복궁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나는 그날도 넉넉하게 집을 나섰다.
긴장해서 인지 화장실이 급해 신용산역에서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빈칸이 없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
도저히 안 돼 칸칸마다 두드리며 호소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물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급기야 옆 여자 화장실로 뛰어갔다.
여자들의 비명 소리에 쫓겨 다시 남자 화장실로 돌아왔다.

결심했다.
대통령 임명장을 받는 날, 사고가 나선 절대 안 됐다.
바지를 내리고 급한 대로 소변기에 앉았다.
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들이 뭔지 모르지만 귀신에 홀린 듯 순간적으로 엄청난 혼돈을 느끼며, 못 들어올 데 들어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나간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남자 소변기가 이렇게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2005년 제86주년 3.1절 기념사 준비회의
대통령과 윤태영 부속실장, 그리고 나뿐이었다.
대통령은 독립기념관에 다녀온 소회를 밝히며 기념사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구술했다.
“구한말, 개화를 둘러싼 의견차이가 논쟁을 넘어서 분열로 치닫고, 마침내 지도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배반한 역사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대통령의 구술이 짧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면서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났다.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대통령에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다음 일정도 있어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더 큰 결례를 범할 수는 없어 한참 말씀 중인데 벌떡 일어섰다.
“대통령님!”
대통령이 놀랐다.
그러나 곧바로 내 표정으로 상황의 위중함을 알아챈 듯했다.
“다녀오게.”
대통령 집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밖에 있던 경호원도 깜짝 놀란다.
대통령의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용무를 봤다.

돌아오니 대통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렇게 얘기했다.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북행길
역사적인 회담을 앞두고 나에겐 큰 걱정이 하나 있었다.
육로를 통해 평양까지 올라가야 한다.
화장실이 문제였다.
대통령과 함께 하나의 대오를 갖춰 올라가게 된다.
만약 내가 차를 세우면 대통령도 서고 모두가 서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버스 안에서 용무를 볼 수도 없는 일.

나는 장 내시경 검사할 때처럼 하루 전에 관장약을 먹고 장을 완전히 비웠다.
그리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꼬박 서른 시간 가까이 지나 평양에서 식사를 했다.

나는 지금도 과천에서 청와대 가는 길에 어떤 건물의 화장실 문이 열려 있고, 어느 지하철 역 화장실이 깨끗한지 모두 꿰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긴장의 연속이었던 청와대 생활,
늘 푸근하게 덮어주었던 대통령이 그립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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