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끝문장] 삼십세, 잉게보르크 바하만

삼십세

삼십세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김광석 서른즈음에-

‘서른’이란 나이는 20대 젊은이들에겐 막연한 무게감과 공포감을 주는
29세의 12월을 보내고 있는 이에겐 씁쓸한 체념을 선사하는
30대를 지난 중장년층에겐 지난 날의 추억이 되는 묘한 인생 기점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독일 여류작가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산문집을 엮은 ‘삼십세’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총 7개 단편 중 ‘삼십세’란 단편을 대표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29세 생일부터 30세에 이르는 일년간의 내적 갈등과 고뇌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 속 화자는 안간힘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갑니다. 한없이 좌절하기도, 여기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기도, 마지막엔 희망을 품어보기도 합니다.
6개 단편들의 주인공들도 서른이란 나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흥미로운 구조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녀의 인생에서 서른이란 나이가 특별한 순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원래 시인이었습니다. 꼭 서른이 되던 해 그녀는 두번째 시집 <대웅좌의 부름>을 통해 촉망받는 대시인으로 평가받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시의 침묵기’에 접어들고 맙니다. 단 한편의 시집도 펴내지 못합니다. 이후 그녀는 산문 작가로 전향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그녀에게 ‘삼십세’는 절박함으로 가득했던 시기였습니다.

‘어떠한 기회에 부딪혀도 그는 긍정을 했던 것이다. 우정에도, 사랑에도, 무리한 요구에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항상 일종의 실험으로서, 또한 몇 번이고 거듭될 수 있는 것으로서였다.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30세의 해의 막이 오르리라고는, 판에 박힌 문구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또한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무엇을 진정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순간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천 한 개의 가능성 중에서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고는 – 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껏 한번도 의혹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제껏 무엇 하나 겁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17, 18페이지-

그녀가 바라본 서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때는 어떤 시기였나요?
그녀처럼 고뇌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품어보는 시기였나요?

첫문장: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고함 역시 그는 빼앗긴 것이다. 일체를 그는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는 바닥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無)로 환원해버린다.

끝문장: 그는 생기에 넘쳐 닥쳐올 것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을 생각하며 저 밑 병실 문을 어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병약한 사람들, 빈사의 사람들 곁은 떠나서.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이현동

출처: 문예출판사, 1997년 중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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