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3] 독자를 의식하고 그들과 교감하라

‘인민’이란 표현이 어때서요?
– 상대와 교감하기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
마샬 맥루한의 유명한 말이다.

말과 글은 상대가 있다.
그러므로 말을 하고 글을 쓸 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과 상대가 듣고 싶은 말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고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은 실속이 없다.
자칫하면 아부나 영합이 될 수도 있다.
교감이 필요한 것이다.

꼭 글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교감을 강조했다.
첫째, 반 보만 앞서가라.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너무 앞서 가지 마라.
읽는 사람이 공감하지 못하는 글은 아무 쓸모가 없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읽는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읽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 손을 놓지 말라.
읽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늘 그들 속에 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현장도 강조했다.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직접 교감하고자 했다.
실제로 현장을 자주 찾았다.
청와대에서도 사람들을 초청해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려고 했다.
바빠서 이런 자리를 못 만들면 인터넷 민심이라도 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좀 달랐다.
현장을 방문해 연출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재래시장에 가서 상인들 손 잡고 “장사 잘 되느냐?”고 물어보고,
재해 현장에서 위로금 봉투 내밀며 사진 찍을 시간에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교감 자체를 꺼려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교감을 강조했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2003년 7월 중국 국빈방문 시 칭화대학 학생들과 만났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러 사람이 있지만 마오쩌둥 주석도 그 중의 하나’라고 답했다.
또한 답변 도중 ‘국민’이란 용어 대신 중국인들이 쓰는 ‘인민’이란 말을 썼다.
마샬 맥루한이 말한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 발언이 문제가 됐다.
어떻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마오쩌둥을 존경하며, 북한이 쓰는 ‘인민’이란 용어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은 일언반구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2006년 3월 아프리카 순방을 앞두고 주문한 내용이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는 경우에는 그들의 자존심에 손상을 주는 말을 연설문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후진국에 가서 양국은 상호보완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당신들은 인력과 자원을 대시오. 우리는 자본과 기술을 대겠소. 이렇게 말하곤 하는데, 이때 ‘상호보완적’이란 말은 그들에게 굴욕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한번은 이런 메모도 내려왔다.
“사리에 맞는 내용을 좋아하는 청중과 감정에 호소해야 할 청중, 긴 연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청중과 짧은 연설을 기대하는 청중을 잘 따져서 연설문을 준비해 주기 바랍니다.”

2003년 4월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대통령은 두 차례 연설을 해야 했다.
한 번은 국회에서 파병 동의를 구하는 연설을, 다른 한 번은 파병 장병을 환송하는 자리에서다.
그런데 이 연설을 지켜보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1. 파병을 요청한 미국
2. 우리 건설사가 많이 진출해 있는 이라크 당국
3. 파병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4. 당사자인 파병 장병
5. 파병 장병의 가족

노무현 대통령은 난처했다.
여러 대상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각기 달랐다.

1. 미국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라크는 악의 축이다. 그러므로 이라크 전쟁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2. 이라크 당국을 향해선 “이라크의 선량한 국민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그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되찾아주러 왔다.”
3.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에게는 “명분 없는 전쟁인 것은 맞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현실을 무시할 순 없는 것 아니냐.”
4. 장병들에게는 “열심히 싸우고 돌아오라.”
5. 장병 부모들에게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무사히 돌아오라.”

대통령은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명분을 중시해온 정치인입니다. 그런 내가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나의 결정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명분에 발목이 잡혀 한미관계를 갈등관계로 몰아가는 것보다,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03년 4월 이라크 파병 동의를 요청하는 국회 연설>

“이라크 전쟁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이번 파병은 ‘참전’에서 ‘복구와 구호활동’이라는 새로운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라크 국민들이 하루빨리 평상의 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다녀오기 바랍니다. 이라크 국민들의 가슴 속에 한국 국민들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심어 주고 오세요.”
<2003년 4월 이라크 파병부대 환송행사 연설>

이것은 비단 이라크 파병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미 FTA 협정 체결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안에서 매번 부딪히는 딜레마다.
또한 이게 어디 대통령의 말과 글에만 적용되는 것이겠는가.
누구나 글을 쓸 때에는 그 글을 읽을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얘기를 기대하는지 독자를 의식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기업에서 사장의 연설문 작성을 맡은 직원이 있다고 하자.
그가 의식해야 할 대상은 누구누구일까?
1. 사장
2. 연설을 들을 직원들
3. 이 연설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사 기자
4. 언론 기사를 보는 고객, 주주, 직원 가족

이렇게 기업 연설문 하나에도 그 대상은 많다.
이들 각각에 대한 연구는 아무리 오버해도 지나침이 없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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