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5] 적자생존 –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링컨, 에디슨, 김대중, 노무현의 공통점
– 메모하라

정약용, 아인슈타인, 링컨, 에디슨, 김대중, 노무현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메모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정약용 : 둔한 붓이 총명함을 이긴다는 둔필승총(鈍筆勝寵), 즉 사소한 메모가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말을 남겼다.
아인슈타인 : 만년필과 종이, 휴지통.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어디든지 연구실이라 할 정도로 아무리 작은 생각도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
링컨 : 큰 모자 속에 늘 노트와 연필을 넣고 다녔다.
에디슨 : 3,400권의 메모 노트가 그를 발명왕으로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
김 대통령은 기억력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배경에는 메모 습관이 있었다.
‘메모광’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매사에 꼼꼼히 기록했다.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메모하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정리했다.
평생 일기를 썼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도 메모를 이용했다.
행정관 시절, 내가 초안을 쓴 연설문에 대해 대통령께서 이런 메모를 내려 보낸 적이 있다.
“재테크란 말은 일본식 표현입니다. 되도록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대통령은 독서를 하면서도 메모를 했다.
이를 ‘대차대조 메모법’이라고 불렸다.
책을 읽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나오면 책의 여백이나 노트에 재무 대차대조표를 그리듯이 도표를 그렸다.
도표 한 쪽에는 책의 내용을, 다른 한 쪽에는 자신의 의견을 적고 그 해법을 얘기했다.
생각이 묻혀 사장되지 않도록 철저히 메모했다.

김 대통령의 마지막을 지켜본 최경환 비서관의 책 <김대중 리더십>은 이렇게 전한다.
대통령은 대화중에도, 회의하는 가운데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었다.
작은 손 수첩을 많이 활용했다.
여기에 신문이나 읽은 책의 주요 내용, 정세와 대책, 각종 수치와 통계, 해야 할 일 등을 1, 2, 3… 숫자를 붙여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완료된 일은 줄을 그어 표시하고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는 수첩을 보고 계속 확인했다.
간혹 비서들이 깜빡 잊고 있는 일도 김 대통령의 수첩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김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과거에 지시한 사항을 확인하며 ‘그건 어떻게 돼가지요’라고 물었다.
이렇게 물을 수 있었던 것은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 메모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1998년 취임한 후 자신만의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무회의 등 각종 회의에서 해야 할 이야기 요지를 직접 적었다.
그리고 주요 내외신 회견을 앞두고도 할 말을 먼저 적었다.
퇴임할 때 이 노트가 무려 27권이나 됐다.
언론은 이를 ‘국정노트’라 불렀다.
퇴임 후에도 6권의 노트를 남겼다.
마지막으로 남긴 것 중에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 추도사 요지였다.
말미에 ‘정부 반대로 하지 못함’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대통령은 평생 메모하고 쓰는 것으로 답을 찾아나갔다.
대통령의 이런 메모 습관은 단지 기억을 되살린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매일매일 글쓰기를 연마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노무현 대통령
늘 가까운 곳에 메모지를 놓고 살았다.
손바닥 두 배 크기쯤 되는 메모지였다.
여기에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메모를 했다.
회의 시간이나 연설할 때에는 양복 안쪽 호주머니에서 이 메모지가 나왔다.
연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신년에 경제인 대상으로 연설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에 갔다.
대통령께서 알아서 하겠다고 따로 연설문을 준비하지 말라고 한 자리였다.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선 대통령이 윗저고리 호주머니를 뒤지다 난감한 표정으로 얘기한다.
“여러분께 드릴 말씀을 잔뜩 메모해 놨는데, 아침에 옷을 갈아입으면서 두고 왔네요. 그런데 메모를 하면서 다 외웠으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맞다. 대통령은 메모하는 시간이 생각을 정리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시간이었다.

연설비서실에도 자주 메모가 내려왔다.
주로 어느 연설 계기에 무슨 내용을 넣어달라는 주문이었다.
연설비서실 입장에서 송구하고 괴로웠던 메모가 있다.
대통령이 연설비서실에서 올린 원고를 읽지 않고 본인이 직접 준비해서 연설한 후, 준비해간 메모를 참고하라고 연설비서실에 보내주는 경우이다.

메모는 메모지에만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이지원이라는 청와대 내부 전산망 안에 ‘실마리 파일’이라는 기능을 만들어놓고 글쓰기 거리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했다.
그리고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들어와 조금씩 조금씩 살을 붙여 나갔다.

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서 중에도 부지런히 메모를 했다.
활용할만한 내용은 책갈피 마다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해 두었다.
일종의 독서노트였던 셈이다.

대통령의 메모 습관은 단지 개인 차원을 뛰어넘었다.
훗날 참고가 되도록 국가 차원에서 대통령의 국정기록을 관리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기록관을 만들고, 대통령이 한 말과 대통령이 하는 모든 일을 녹음하고 메모해서 낱낱이 이관하도록 했다.
사실 이러한 기록관리는 전임 김대중 대통령에서 비롯되었다.
2001년 공공기록법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국가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두 대통령은 개인적인 메모광이었을 뿐 아니라, 체계적인 국가 기록관리의 기틀을 세운 장본인이었다.

글쓰기와 메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나는 그것을 직접 몸으로 경험했다.

#1
2000년 8월 청와대에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된 후, 회사생활의 마지막 여유를 즐기려고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한참 해수욕을 하고 있는데 백사장에 있던 아내가 빨리 전화 받아 보라고 한다.
당시 고도원 연설비서관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에 관해 공부한 후 출근하라면서 책 이름을 마구 불러댄다.
손에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달랑 수영팬티만 입고 있던 터였다.
나는 손가락에 불이 나도록 모래에 메모를 했다.
그때만 해도 청와대 비서관은 딴 나라 사람이어서 감히 조금 있다 전화하자는 소리를 못했다.

#2
2006년 어느 일요일이었다.
화장실에 있는데 관저 부속실에서 전화가 왔다.
대통령께서 통화를 원하신다는 전화였다.
마침 휴대폰을 들고 있어 연결해달라고 했다.
용무 중이니 조금 후에 통화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불경스러워 보였다.
대통령이 얘기를 한다.
잠깐일 것으로 생각하고 머릿속에 기억하기 위해 최대한 집중했다.
점점 더 길어진다.
수화기를 막고 안방에 있는 아내를 불러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대통령의 얘기 속도가 빨랐다.
한 마디도 놓쳐선 안 됐다.
급기야 한계에 이르렀다.
도저히 외울 수가 없다.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화장실을 기어 나와 메모지를 찾았다.
그 뒤로는 화장실, 자동차, 침대, 가방 등 모든 곳에 메모지를 놔두게 됐다.
또한 어딜 가든지 수첩을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은 휴대폰의 메모 기능을 활용하지만, 이전만 해도 수첩을 손에 들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요즘에도 메모를 한다.
주로 지하철에서 한다.
그때 생각이 많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이란 말이 있다.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One Response to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5] 적자생존 –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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