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18] 같기도, 다르기도 했던 두 대통령의 연설문

예의 중시 vs 교감 중시
– 두 대통령 연설문의 차이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깜짝 놀랐다.
어쩌면 이렇게 닮았는지.
지도자는 원래 이렇구나, 이래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두 분 모두 호기심과 인정이 많았다.
독서와 사색,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할 줄 알았다.

그밖에도 공통점이 참 많았다.

두 분 다 연설문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공리공론보다는 실사구시를 추구했고, 사례나 수치를 들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했다.
무엇보다 좀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이 넘쳤다.
나아가 글쓰기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겼다.

또한, 논리를 중시했다.
김 대통령 연설문은 대단히 논리적이다.
서면메시지나 축전과 같이 짧은 글도 기승전결의 논리적 구조를 중요시했다.
앞뒤가 인과관계로 들어맞아야 한다.
소위 ‘3김시대’에 기자들이 “YS의 말은 아무리 받아 적어도 나중엔 기사 쓸 것이 없는 반면, DJ의 말은 그대로 기사가 된다.”고 할 정도로 김 대통령 연설문은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율사 출신답게 논리를 중시했다.

차이점 또한 많다.

노무현 대통령 연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
솔직, 소탈, 강조어법이 아닐까.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설득, 논리, 반복이 생각난다.

먼저, 일반론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에 일반론을 담는 것을 꺼려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논리와 주장, 제안을 담으려고 했다.
2003년 5월 제11차 반부패 국제회의(IACC) 연설문 초안에서 부패의 해악에 대해 언급한 후, 국제 공조를 통해 부패를 일소해야 한다고 썼다.
대통령은 전면 수정을 지시했다.
부패가 안 좋은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고, 국제 공조 역시 공자님 말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대한민국이 부패 척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해나갈 것인지, 우리의 이야기를 넣으라는 주문이었다.

이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론에 가까운 지론을 펼치는 걸 즐겨했다.
자신의 생각체계를 완벽하게 갖춘 사상가의 면모였다.

“인류는 농업혁명, 도시혁명, 사상혁명, 산업혁명과 지식정보혁명 등 다섯 번의 혁명을 거쳤으며, 21세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 문화가 인류 진보를 이끄는 힘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는 없지만,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살면 성공한 인생이고, 이러한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인용에 대한 선호 차이다.

노 대통령은 남의 말이나 속담, 격언을 인용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에 반해 김 대통령은 세계적인 학자나 권위 있는 국제기구를 자주 인용했다.
마치 대학교수의 좋은 강의를 듣는 것 같은 연설문을 썼다.

‘합리적 기대이론’을 주창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적이 있다.
“경제는 그 주체들이 기대한대로 이뤄진다.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좋은 방향으로 가고,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빠진다.”
이후에 대통령은 ‘경제는 심리다.’며 이 내용을 몇 차례 인용하곤 했다.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도 단골 메뉴였고, “2050년경에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8만 달러를 넘어 일본, 독일 등을 제치고 미국 다음의 경제 강국이 될 것이다.”는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를 간혹 인용했다.

많은 사람이 아는 대로 즉석연설에 대한 견해 차이도 있다.

김 대통령은 반드시 사전에 준비한 연설문을 읽었다.
정치인은 그래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1년 중 3개의 연설문은 아무리 바빠도 직접 썼다.
연두회견 모두연설과 광복절 경축사, 국군의 날 연설문이다.

노 대통령은 청중과 직접 호흡하는 현장 교감형 연설을 선호했다.
정색을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평소 쓰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얘기 나누듯이 연설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하지만 노 대통령도 준비는 철두철미했다.
연설해야 할 날짜가 오기까지 고치고 다듬고 또 수정했다.
애드리브까지도 사전에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글은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는 형식으로 직접 작성했다.

김 대통령은 메시지의 반복을, 연설의 시작은 무조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었다.
노 대통령은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좋아했다.

김 대통령은 배경에서부터 파급효과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자주 사용했다.
첨단기술을 얘기할 때는 반드시 IT, BT, NT, ET, CT, ST 여섯 가지를 다 들었다. 초안에서 IT, BT만 넣어놓으면 대통령이 수정하면서 나머지 4개를 꼭 추가했다.
국민의 정부의 성과를 설명할 때에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식기반사회, 생산적 복지,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까지 한 묶음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하나라도 빠트리면 반드시 채워 넣는다.
그래서 연설문이 전반적으로 길었다.
‘그리하여’, ‘그러므로’ 등 접속사도 많이 썼다.

그에 반해 노 대통령은 문단 처음에 단도직입적으로 규정하고 뒤에 풀어서 설명하는 식이었다.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김 대통령은 겸양의 표현을, 노 대통령은 자신 있는 표현을 좋아했다.

노 대통령은 철학적이고 큰 담론을 좋아한 반면, 김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함께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상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이상만 추구하면 글이 공허해지고, 현실에 집착하면 가치가 없어진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김 대통령은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고 관련 부처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특히 광복절 경축사는 적어도 두어 달 전부터 비서실장 주재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여 각계각층의 의견을 꼼꼼하게 수렴했다.
그래서 튀는 내용이 없었다.

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타입이었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당당하게 얘기하고자 했다.

두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다르면서 같았고, 같으면서 달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필력이 뛰어난 정치인으로 두 사람을 꼽는데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강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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