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미래 45] 2013년은 스트리밍의 해 – 저무는 태양이 될까?

스트리밍의 시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스트리밍의 시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주: 우리는 이미 인식하지 못한 새에 스트리밍의 세상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스트리밍(Streaming)을 직역하면 ‘흐르는 시냇물에서 헤엄치기’ 정도가 되겠습니다. 웹에서 시냇물은 흐릅니다. 페이스북의 콘텐츠는 실시간으로 흘러갑니다. 지속적으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대다수 콘텐츠는 그냥 흘러가버리겠죠. 트위터나 유스트림, 구글리더 등, 모두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방대한 콘텐츠들은 시냇물처럼 우리를 스쳐갑니다. 스트리밍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이유는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지기 때문일 텐데요, 아마 이 글 역시 그 콘텐츠들의 향연 중 일부로 사라져가겠죠? 서문이 길었습니다만, 2013년은 스트리밍의 해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스트리밍 시대는 굳건하게 건재할 수 있을까요? 아틀란틱의 기사를 발췌번역 소개합니다.

1. 스트리밍의 시대
바야흐로 스트리밍의 시대다. 2009년부터 웹은 실시간으로 콘텐츠가 흐르도록 구현됐다. 정보는 점차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구현된다. 웹페이지를 참고하는 것은 구식이 되어 가고 있다. 기업들도 규모에 관계없이 스트리밍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트위터를 사용한다는 것뿐이 아니다. 페이스북, 프렌드피드, AOL, Digg, 트윗덱, 시스믹 데스크탑, 테크밈, 트윗밈, 유스트림, 구글 리더 등에 대한 이야기다. 웹상에서 스트리밍은 전 분야로 퍼져나가고 있다.

스트리밍이 뭔지 감이 잘 오지 않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뉴욕타임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스트리밍이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는 스트리밍이 아니다.

2. 왜 스트리밍일까? 스트리밍은 영원할까?
스트리밍의 성공요인은 뭘까.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이제 세상의 정보를 분류하거나 심지어 정확한 정보를 찾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실시간’, ‘새로운’ 것들이 이 분야의 강자로 떠올랐다. 현재 인터넷미디어는 끝없이 샘솟는 (게다가 공짜인) 물건들로 가득 찬 백화점과 같다. 최대한 정보를 많이 찾아도 당신이 모르는 새로운 정보가 더 많이 생겨난다.

‘실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듯한 느낌도 준다. 낮이나 밤이나 어디에서나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현재 일어나는 것들을 볼 수 있으니. 남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음악을 듣거나 잡지를 읽을 수 있다. 당신이 하는 활동에 사람들도 응답할 것이다.
아마 스트리밍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중 일부는 직업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흥미 있어 할 만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다.

‘베타웍스’ CEO 존 보드윅스가 쓴 책 <지금 순간, 기여하라>에 따르면 스트리밍의 부상은 다음의 문장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끊임없는 정보의 향연 속에서 뒹굴다보면 언젠가 깨달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쌍방소통’은 적합한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쌍방소통은 인터넷 게임처럼, 당신이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연상시킨다. 스트리밍은 당신이 컨트롤할 수 없다. ‘끝나지 않는’이 맞는 표현이다. 스트리밍은 영원히 무언가 새로 생겨나는 것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 구를 기억하라. 스트리밍의 이 특성이 아마 스트리밍을 망하게 할 것이다. 이미 망조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3. 시냇물에 떠다니는 콘텐츠의 가치
스트리밍 부상의 징조는 일찍부터 있었다. 디지털 세계에서 남들에 소속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힙스터나 미디어계 사람들 간에만 있는 감정으로 치부됐었다.
요즘은 누구나 스트리밍에 참여한다. 새로 도착하는 그 많은 정보를 따라잡기는 사실 무진장 어렵다. 게다가 그 정보들 중 대다수가 그냥 허튼소리다.

스트리밍에 질 높은 콘텐츠가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예상보다 질 낮은 콘텐츠를 걸러내는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개개인들이 기존에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뉴스피드를 수동적으로 향유했던 것에서,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질 높은 공짜 콘텐츠를 찾아 즐기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새로운 스트리밍의 발견
4-1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
‘넷플릭스’가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전 에피소드를 동시에 개봉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것을 좋아했다. 매주 한 편씩 공개되는 여타 프로그램보다 신선했고 더 풍부해 보였기 때문이다.

4-2 스트리밍 부작용을 넘어
스냅챗과 스노든의 NSA폭로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스냅책은 기존 스트리밍의 부작용에 주목했다. 스트리밍은 개인은 스쳐 지나가지만 기업이나 정보기관에는 축적된다. 인터넷에서 당신은 스트리밍을 추적할 수 없지만 스트리밍은 당신을 추적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NSA라면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없어져버리는’ 스트리밍에 주목했다. 스냅챗은 시간이 지나면 스트리밍의 정보가 사라져버리게 만들었다. 스냅챗은 말한다. ‘만약 우리가 완벽하게 숨어버릴 수 없다면, 최소한의 발자국만 남기자. 시냇물(Stream)이 아니라 조금 지나면 없어져버리는 안개라든가 연기가 되자.’

5. 스트리밍을 활용하고 싶다면
5-1 스트리밍 입문 단계에는 이메일로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 뉴스레터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한 번만 발송된다.
5-2 입문 단계가 지나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스트리밍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떤 것도 건드릴 필요 없이 그냥 업데이트 되는 정보를 향유하면 된다.
5-3 혹은 스노우폴을 하자. 이건 어떤 스토리를 스트리밍 형식으로 디자인하고 그것에 디지털 이펙트를 입혀서 완성되는 콘텐츠다. 이런 건 ‘실시간’의 유용성을 능가하는 가치가 있다.
5-4 또는 유료 스트리밍을 이용할 수 있다. ‘인포메이션’ 같은 최신 IT저널을 이용하는 식이다. ‘페이스북 담벼락’ 같은 곳에 노출되지 않는 정보다. 이는 시냇물(스트림)에 떠내려가지 않는 바위와 같다. 여기서 제공하는 정보를 따라잡으면서, 당신은 한숨 돌릴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6. 스트리밍은 모든 이에게 축복일까? 
2013년 스트리밍이 넓고 깊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조금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다음의 세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첫째, 스트리밍에 압도되었다. 둘째, 실시간 흘러가버리는 스트리밍 정보를 분류해 보관하기 위해 노력했다. 셋째, 스트리밍 자체를 보지 않기로 했다.

7. 스트리밍은 영원할까?
스트리밍이 이제는 너무 대중화되어서 애초에 스트리밍이 매체의 자연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물론 스트리밍도 결국 인터넷의 일부다. 불과 몇 년 전일뿐인 2009년만 하더라도 스트리밍은 일부 회사와 개인이 생각해낸 창조작이었다. 물론, 그들 역시 어떤 방식이 적합할지, 어떤 방식이 대중에게 널리 활용될지 추적하다가 스트리밍을 생각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스트리밍은 그들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제 인터넷 환경은 어떻게 변화할까? 당분간 스트리밍 대세는 쭉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는 콘텐츠들이 더 큰 힘을 얻을 가능성도 크다. 스트리밍은 ‘흘러가버리는 것’과 ‘남아 있는 것’으로 크게 나뉘게 될 것이다. ‘흘러가버리는 것’은 만들어지는 즉시 소비되어야 하는 컨텐츠로, 일반적인 메일이나 트윗 등의 컨텐츠다. ‘남아 있는 것’은 한 달이 지나고 혹은 일 년이 지나더라도 계속 가치를 가지거나 더 가치가 높아지는 컨텐츠다. 이 컨텐츠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확산되게 마련이다. 현재 스트리밍에는 ‘흘러가버리는 컨텐츠’가 필요 이상으로 많고 ‘살아남을 컨텐츠’가 적다. 인터넷 환경은 ‘살아남을 컨텐츠’를 더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더 근본적인 변혁이 있을 수도 있다. 스트리밍이 곧 인터넷 자체가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현재 생산되는 컨텐츠의 아우라가 모든 인터넷을 장악해버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우리가 원하는 때에 ‘강남스타일’을 듣기 위해서는 싸이가 그 때 강남스타일을 연출하도록 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어쩌면 스트리밍이 일간지나 뉴스채널을 대체할 수도 있다. 스트리밍은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 기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트리밍의 그 특성을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할지라도 구현되기는 힘들 것이다. 콘텐츠를 만들 때 그에 대한 피드백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예측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인터넷미디어의 기반은 탄탄하지 못 하다. 한 때는 그럴듯해 보였던 스토리 생태계가 붕괴해버리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아무도 어떤 스토리가 히트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한 때 균형을 이루던 콘텐츠들의 생태계가 붕괴된다면 아노미 상태의 인터넷 콘텐츠가 갈 길은 하나다. 더욱 빠르게 만들어질 것. 그리고 더욱 많이 만들어질 것.

그렇다면,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게다가 양까지 방대한 스트리밍을 누가 다 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아마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스트리밍 말고 다른 방식은 어때? 박물관처럼 큐레이터가 골라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어때?’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아니면 다시 ‘웹’의 본질로 회귀할 수도 있겠다. 그저 네트워크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닌 것 같다.

김정현

출처: 아틀란틱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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