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1] 퇴고를 통해 글이 완성된다

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
– 퇴고하기

두 대통령은 눈이 높다.
한 마디로 고수다.
고수일수록 퇴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실제로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초고가 완성되면 발제 정도가 끝난 것이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글쓰기 시작이다.
고치는 것은 마감 시한도 없다.
연설하는 그 시각이 마감 시각이다.
그때까지는 계속 고친다.

무엇을 고쳤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는 게 맞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로 주제의 적절성 여부다.
2006년 8월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준비할 때는 3개의 서로 다른 주제의 경축사가 만들어졌다.
버전이 계속 바뀌거나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최종본은 광복절 하루 전날 완성됐다.

고치기의 두 번째 주안점은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주제가 잘 부각됐나? 즉 청중이나 독자가 어느 게 주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 주제를 알기 쉽기 설명하고 있는가.
– 주제를 뒷받침하는 소재는 충분하고 적절한가.
– 주제의 명료함을 가리는 장황한 수사는 없는가.

세 번째는 글의 전개에 무리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는가.
– 서론, 본론, 결론의 서술이라면 이들 간의 안배는 균형감 있게 되어 있는가.
– 문단 구분은 적절한가.
– 문단과 문단 사이에 연결은 매끄러운가.
– 문단 순서를 바꾸면 더 나아지는 것은 없는가.

네 번째는 내용상의 보완이다.
– 빼도 상관없는 군더더기는 없는가.
– 빠트린 내용은 없는가.
– 앞과 뒤가 서로 상충하는 내용은 없는가.
– 분량은 맞는가.

다섯 번째는 표현상의 문제이다.
– 더 적절한 단어는 없는가.
– 불필요한 중복은 없는가.
– 불확실한 표현은 없는가.
– 진부한 표현(Cliche)은 없는가.
– 비문은 없는가.
– 짧게 끊을 데는 없는가.

여섯 번째는 오류 찾기이다.
아무리 사소한 오류라 할지라도 그것 하나가 글 전체의 격과 신뢰에 손상을 준다.
– 외래어 표기 등 맞춤법과 띄어쓰기 오류
특히 해외 순방 연설문에서 외국인 이름이나 지명은 현지에서 사용하는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숫자, 이름, 연도 등 사실관계 오류
‘우리 국민이 해외로 나가 쓴 의료비가 10억 달러’라는 잘못된 통계가 2005년 2월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에서 인용된 적이 있다.
한 병원장이 경제지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을 재경부가 받아, 그 내용이 청와대 정책실을 거쳐 연설에 사용된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 표절 시비 우려는 없는가.
– 날씨, 종합주가지수와 같은 유동적인 내용의 변동은 없는가.

일곱 번째는 독자나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들이다.
–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을까.
– 재미, 감동, 지식 등 무슨 유익을 얻을까.
– 처음 시작에서 흥미를 보이겠는가.
– 결론에서 여운이 남겠는가.
– 글이 리듬을 타고 있는가.

이러한 고치기 과정에서 몇 가지 지켜야 할 게 있다.

▶ 오류는 틀림없이 있고, 수정하면 나아가지는 게 반드시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

2006년 신년사 준비
대통령이 연설비서실에서 보고한 초안을 수정하여 내려보냈다.
2006년은 병술년 개띠 해였다.
‘개의 해’였던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수정본이 ‘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했다.
초안은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다.

연설비서실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개띠해지만 설마 대통령이 ‘개해’라고 하셨을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개띠 해에 ‘개해’라고 표현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했다.
결국 대통령에게 여쭤봤다.
대통령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거 오타네.’ 하는 거였다.
대통령이 수정을 하면서 ‘새해’를 ‘개해’로 잘못 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자판에서 ‘ㄱ’과 ‘ㅅ’은 붙어 있다.
확인과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였다.

▶ 철저히 독자가 되어야 한다.
글을 쓴 사람에 머물러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쓴 이유와 배경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합리화한다.
인정사정없는 독자가 되어야 한다.
가차 없이 고쳐야 한다.

▶ 잠시 묵혀둬야 한다.
글을 쓴 다음에 곧바로 고치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다.
자기 글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인 입장으로 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뜸을 들인 후 독자의 눈으로 다시 보자.
쉬운지, 명료한지, 설득력이 있는지, 혹시 오해할 것은 없겠는지.

▶ 소리 내어 읽어보자.
운율이 맞는 글이 잘 읽힌다.
어색한 부분은 읽으면서 걸린다.
연설문은 말할 것도 없다.

▶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물어볼 것이고, 느낌은 얘기해줄 것이며, 명백한 오류는 잡아줄 것이다.
나아가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줄 것이다.
특히 전문적인 내용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필수다.

2004년 11월 미국 LA 국제문제협의회 주최 오찬 연설문 준비
단어 하나가 문제였다.
대통령은 단어 하나를 두고 고쳤다 다시 썼다를 반복했다.
이미 시간을 밤 10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당시 북핵 문제가 심각했다.
2기 부시 행정부의 출범으로 미국의 강경 대응이 우려되던 시기였다.
대통령은 미국의 무력행사를 우려했다.
전쟁만은 막아야 했다.
북한의 입장을 어떻게든 설명해야 했다.

처음에는 ‘북한 나름의 논리는 된다.’였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북한 나름의 논리는 된다고 봅니다.”

미국으로 떠나는 다음날 아침.
대통령은 관계 장관과 수석에게 연설문을 보여주고 문제는 없는지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했다.
관계 장관과 수석이 이 부분을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로 고쳤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의 주장이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현장에서 연설문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런 후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처음에 내가 썼던 표현은 ‘합리적’이 아닌데, 참모들이 민감하다며 고친 것 같습니다. ‘합리적’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처음에 썼던 표현을 되찾아보겠습니다.”

최종적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많은 경우에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의 주장은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이렇게 단어 하나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대충 넘어가는 것은 없었다.
정확한 전달을 위한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One Response to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1] 퇴고를 통해 글이 완성된다

  1. Pingback: 강원국의 ‘두 대통령과 함께 한 전략적 글쓰기’를 마치며 | Acas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