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2] 애드리브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럴 때만 일국의 대통령인가요?
– 노 대통령 애드리브를 위한 변명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시달렸다.
‘일국의 대통령이 준비된 연설을 해야지, 왜 그렇게 즉흥적으로 연설을 하느냐.’고.
애드리브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럴 때만 일국의 대통령입니까?’

노 대통령의 애드리브는 현장 교감을 위한 연설의 일부였다.
그가 애드리브를 하는 경우는 세 가지 상황이다.
첫째, 현장의 청중 상황이 예상과 다를 때
둘째, 앞서 연설한 사람이 준비해간 연설문 내용을 먼저 언급해 버렸을 때
셋째, 연설 현장에서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런 때에도 준비해간 연설문을 고집해야 하는 것인가?
순발력 있는 대응과 생생한 현장 연설이 어려워 써준 대로만 읽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노 대통령은 현장에 가기 직전까지 고치기를 반복한다.
연설 시작 직전에 고친 연설문이 소위 ‘준비된 연설문’일 뿐이다.
그것을 연설 시작 후에 한 번 더 고친들 그게 무슨 문제인가.
기자들에게 사전에 나눠주는 준비된 연설문이란 것도 기자들의 취재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것일 뿐, 실제로 연설한 내용이 진짜 연설문이다.
준비된 연설문이란 건 그야말로 사전에 만들어 놓은 연설문일 뿐이다.

애드리브를 즐겨하는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을 질타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순발력이 뛰어나다, 매력적이다, 준비한 원고보다 감동을 준다는 등 칭찬 일색이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애드리브는 상대에 대한 추임새이고 배려였다.
그에게는 원고를 줄줄 읽는 것은 청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눈을 맞추고 그들과 교감하며 말하는 것이 최소한의 성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결코 가벼워서가 아니다.
‘본인은’으로 시작하는 권위주의적,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 싫었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청중의 반응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썼다.
특히 국민의 마음을 읽어내고, 정서적으로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서민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진심을 담아 공감했다.
때로는 눈물도 흘렸다.
순발력 또한 노 대통령 못지않게 뛰어났다.
하지만 예를 갖추는 방식이 달랐다.
김 대통령은 원고를 읽는 것이 청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녹음해서 내려 보내준 원고, 즉 머릿속에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연설 내용도 글로 써서 그것을 다시 읽었다.

그렇다고 설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1년 국군의 날 기념사가 문제가 됐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 번의 통일 시도가 있었다. 신라와 고려의 통일은 성공했지만 세 번째인 6·25사변은 성공하지 못했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벌떼 같이 문제 삼았다.
연설비서실도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았다.

애드리브 자체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따라서 애드리브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좋은 애드리브는 현장감을 살리고 청중과 혼연일체가 되게 한다.
다만, 실패한 애드리브가 문제가 될 뿐이다.
애드리브로 인해 오히려 분위기가 썰렁해 진다거나, 예정된 연설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것 등이 문제다.

노 대통령은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자네들 내가 즉흥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지? 물론 그럴 때도 있지. 그러나 대부분은 자네들 연설문을 보고 이 대목 정도에서 이런 얘기를 추가해야겠구나 생각을 한다네.
간혹 원고에 없는 얘기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좀 길어지는 경우가 있지. 그때는 연설을 하면서 준비한 원고 어디쯤으로 되돌아갈지를 찾아본다네. 그래서 가끔 말을 하면서 원고를 뒤적거리지. 추가된 분량만큼 미리 준비한 연설에서 빼야 하니까. 그래야 연설시간을 넘기지 않고 끝낼 수 있거든.”
실제로 노 대통령은 귀신 같이 본래 원고로 돌아와 연설시간을 맞추곤 했다.

노 대통령의 애드리브가 환영받은 적이 한 번 있다.
2005년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 때이다.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원고에 없는 내용을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선진한국과 한나라당의 선진한국이 같아 이를 표절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로열티를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겠다.”
대통령의 위트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고, 다음날 언론들도 우호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끝으로, 대통령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직접 얘기한 대목을 보면 그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다.
“저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데, 체질적으로 제가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고 윗자리에 앉으면 불안해지고, 말은 위엄 있게, 행동은 기품 있게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에서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던 점은 있습니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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