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우 저널리즘 1 교황 프란치스코 4] 알자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어떻게 볼까? – 교황에 대한 다른 생각: 그는 전임 교황들과 다르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알자지라의 생각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알자지라의 생각은?

 

* 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르다. 연일 전세계 신문에 교황의 행보, 그리고 발언들이 쏟아진다. 교황의 입지가 원래 대단한 것이라 이 정도 이슈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지난 교황들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긍정적인’ 이슈메이커로 ‘자주’ 등장한 적은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확실히 다르다.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 동성애나 무신론자에 대한 접근, 현재 카톨릭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신도들의 행복에 대한 관심, 타 분파 포용 등에 대해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끈적이는 경쟁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측의 생각은 어떨까? 다음 ‘알자지라’의 보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의할 순 없더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 교황의 PR은 훌륭하다는 것이다.

1.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미디어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사실 이는 전례 없던 일이다. “심지어 운동선수들 조차 교황을 사랑한다” 최근 CNN의 보도다. 데일리 비스트의 헤드라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별함” 이었다.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교황이 선정되며 이는 절정에 달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없지만, 아주 많이 교황을 사랑한다” 한 트위터 유저의 말은 널리 퍼져나갔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의 교황’이란 교황의 예전 이미지 대신 생생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의 최우선 염려가 ‘빈자의 보살핌’이라는 선언을 통해, 스캔들로 가득 찼던 바티칸엔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겸손과 감사함이 퍼지고 있다.

2.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소(그는 중고차를 몬다!) 그리고 값비싼 의복 배제 등은 교회에 회의적이었던 전문가들이 존경을 고백하게끔 했다. 이는 그가 호화스런 교황 전용 아파트를 포기하고 방문 성직자들과 더 어울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결정했을 때 시작되었다. 언론인들도 교황에 열광했다. 그리고 11월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 자본주의 및 금융 시장에 대한 교황의 비판과 훈계가 이어졌다. 진보를 표방하는 미디어는 의기양양했다. MSNBC 에드 슐츠(Ed Schultz)가 열변을 토했다. “교황이 말하는 것은 역대 교황 누구도 재임기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리고 이는 공화당 정치인들, 보수주의자들의 심장을 때렸다. 그들은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우파 측은 프란치스코를 막시즘과 연결시켰다.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러시 림바흐(Rush Limbaugh)는 “이는 슬픈 일이다. 교황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3.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좌파, 우파의 생각은 모두 틀렸다. 그는 자신을 신선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관리했다. 하지만 그는 ‘급진적인’ 이미지 변신을 통해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이 아니다. 그는 제스처 그리고 상징의 미학을 마스터 함으로써 이를 이뤘다. 여기서 프란치스코의 이미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의 신학의 문제로서의 PR(Public Relation)에 접근하는, 그의 열정적인 눈이다. 전세계에서 주목 받는, 셀리브리티로의 빠른 변신은 현재 바티칸의 PR 운영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前 Fox뉴스 리포터 그렉 버크(Greg Burke)에 의해 운영된다. 금욕적 종교단체 오푸스 데이(Opus Dei)의 구성원으로서, 버크는 금욕과 전문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와 일생을 함께하고 있다. 그는 Fox뉴스 이전, 타임지(당신이 예측했겠지만) 로마 특파원으로 활동했었다.

4.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 베네딕토 16세 또한 시장 절대론에 높은 반대 목소리를 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버크의 덕을 보지못했다. 그래서 베네딕토가 “규제받지 않는 금융 자본주의”로 표현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시대 정신”을 비난했을 때 지금보다 훨씬 낮은 팡파르만이 있을 뿐이었다. 보수적인 가톨릭 기준들에 의해서조차, 바티칸시티의 급작스런 사회주의적 물결은 잔뜩 부풀려진 것으로 인식된다. 유명 가톨릭 작가 조지 웨이거(George Weigel)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표들은 그의 전임자들의 가르침과 “전적인 지속성을 띈다”고 기록했다.

5. 사실, 프란치스코가 복음전파를 위한 교회에 대한 전적인 헌신에서 전임 교황들과 다른 부분은 ‘믿음이 없는 자들을 가톨릭 신자로 바꾸는 것’이다. 극찬 받았던 그의 많은 충고들은 오직 무기나 고발(j’accuse)을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가톨릭 신자들이 어떻게 ‘당대 세속주의의 맹공격’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지 또 신의 가르침을 넓힐 수 있을지에 대한 조언으로서 설계된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약탈성에 대한 비판은 전도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결핍 때문에 믿음에 대해 특별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고 적었다.

6. 진보주의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용한 주된 이유는 뜨거운 사회적 이슈인 동성애, 낙태, 여성 사제 등에서 더 내재적인 메시지인 ‘경제 정의’로 나아간 것이다. 교황은 경제적 궁핍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게 결국 가톨릭을 융성케 하는 것으로 이어지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불필요한 고통을 만들어 낸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자체가 사회와 국가에 대해 명령하고, 가톨릭 교리의 도덕적 권한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물질’에 대한 숭배가 이어진다. 다른 시각에서 교황은 더 공평한 부의 분배가 ‘신을 두려워하며 교회로 달려가는 신도들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과거 교황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7. 버크는 정확하게 추측했다. 금욕 생황과 계속된 경제적 암울함의 시대에서 꾸밈없이 소박한 외모를 유지하는 리더가 대중의 호의를 얻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핵심 교리의 변화도 불필요하다. 이는 가장 오래된 트릭들 중 하나다. 前 이란 대통령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를 예로 들면, 좋은 페르시안 카펫들로 뒤덮였던 집무실에서 이들을 싹 걷어냈다. 몇몇 호의적인 헤드라인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중요한 것이었고, 이는 실제로 작동했다. 버크는 지난 5월 런던의 한 강의에서 “교황이 목표를 달성했어요 그렇죠?”라며 “교황은 우리를 위해 목표들을 달성했고… 우리는 오직 이 혜택을 보면 되는겁니다.”고 밝혔다.

이현동

출처: 알자지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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