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작은 것이 모여 큰 시간이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1.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제나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철없는 엄마가 가출한 뒤 차분히 서로를 돌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컸던 <아무도 모른다>부터 사고로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담담하게 살아가는 <걸어도 걸어도>, 부모의 이혼에 떨어져 살게 된 형제가 함께 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적을 찾아나서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까지 그가 가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지점은 다양하다. 공통점은 의문의 시점이 아이들의 눈높이라는 것이다. 훌륭한 아역배우를 찾아내는 탁월한 안목을 가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아이들에게서 의문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시작은 사립초등학교 시험날의 풍경이다. 아이의 성격에 대해 아버지는 친절하고 따뜻한 성품이 엄마를 닮았지만, 아버지로서는 좀 더 승부에 몰두하지 않아 서운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올 여름의 기억으로 아빠와 함께 캠핑가서 연날리기를 한 경험에 대해 얘기한다. 이 두 가지 대답을 기억해놓을 필요가 있다. 영화 내내 이 이야기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계속 등장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처럼.

3. 잘나가는 대기업의 능력있는 직원 료타는 도쿄 시내에 멋진 집에서 상냥한 아내와 착한 아들과 살고 있다. 일이 너무 바빠서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적지만, 아내와 아이는 료타를 사랑한다. 어느날 아이를 낳았던 병원에서 연락이 오고, 6년간 키운 아이가 다른 집 아이와 바뀐 아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럴 경우 대부분은 ‘교환’을 선택한다는 병원 쪽 변호사의 말은 양쪽 부모를 당황하게 만든다. 혈연인가, 키운 정인가. 간단하지 않은 선택이다.

4. 아이가 바뀐 사실을 듣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료타는 “역시 그랬었군”이라는 말을 한다. ‘역시’와 ‘그랬었’이 주는 무게는 의미심장하다. 아내는 그 말을 마음에 담는다. 작은 표정, 작은 눈짓,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말의 의미를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크나큰 장점이다. 영화 속에 잠깐 등장한 매미 유충의 이야기처럼 작게 뿌려놓은 씨앗들이 나중에 연결되어 매미 울음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어떻게 역시 그랬었군이라는 말을 할 수 있냐고 묻는 아내와 말다툼을 하는 료타의 이야기를 아들 케이타는 침대에서 듣고 있다. 아무 설명 없이 아이가 눈을 뜬 채 누워있는 장면이 지나가면 놀이터에서 케이타를 카메라로 찍고있는 료타가 나온다. 아이에게 카메라를 주겠다고 하자 아이는 거절한다. 아이가 거절한 의미는 영화 막바지에 가면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이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돌려주는 영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돌려주는 영화

5.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여러 영화에서 가족의 의미를 물을 때 부모는 무책임해 보이기도 하고,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어른의 세계라는 게 있다는 듯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료타 또한 자신의 피를 물려받아 자신을 점점 더 닮아갈 아이를 선택한다. 그러나 그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닌 아빠와 엄마를 택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상대방 부모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돈을 제시하기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양육을 아내에게만 맡겼던 료타는 사실 비겁한 어른이자 자라지 못한 어린애였다. 그가 피가 아닌 시간의 의미를 깨닫고 케이타에게 용서를 구할 때 케이타의 작은 손이 그를 감싸안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12월, 1월, 4월, 8월 등의 날짜 표시는 료타를 위한 시간의 흐름이었다.

6. 영화 속에서 자주 사용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다보면 굴드의 허밍 소리가 작게 들린다. 그가 콧소리를 흥얼거리고 발을 구르는 작은 소리가 굴드만의 골드베르크 곡을 완성시킨다. 발표회에서 누군가를 이기려고 배우는 피아노가 아닌, 피아노를 즐기려고 배우는 케이타의 연주도 그와 다르지 않다. 굴드의 허밍처럼 아주 작은 사운드들을 잘 활용하는 것 또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의 매력이다. 청소기 소리, 열차 소리, 로봇의 삐용삐용 소리부터 개울물 소리까지 작은 사운드들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그렇게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돌려주는 영화다.

송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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