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5] 용기를 필요로 하는 그 이름, 글의 양념 ‘유머’

“하나님 뜻에 따르겠다니요?”
– 유머 던지기

유머나 조크는 음식의 고명과 같다.
없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잘 얹으면 음식의 맛과 모양이 확 달라진다.

두 대통령은 유머감각이 뛰어났다.
그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사람의 그것이 아니다.
‘이의 있다’며 결연하게 일어서던 그 눈동자가 아니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찾는 악동 같다.
장난기가 묻어난다.

나아가 두 대통령에게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들뜨게 한다.
볼 때마다 새롭고 기대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재밌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마음이 느껴진다.

김대중 대통령 영상메시지를 녹화할 때였다.
배석하는 참모들은 휴대전화를 놓고 올라간다.
녹화 중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대통령이 처음부터 다시 녹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사고’를 치는 셈이다.
그 날 처음으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대통령이 녹화를 중단했다.
공보수석실 비서관 중의 한 분이었다.
순간 당황해서 전원을 끊으려 하지만, 버튼을 못 찾고 허둥댄다.
“내가 꺼줄까요?”
폭소가 터졌다.
대통령은 싸할 뻔 했던 분위기를 이렇게 조크로 넘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비서관은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는가.

김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를 비롯해 방송에 나가서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했다.
IMF 고통 분담 차원에서 월급을 반납할 생각이 없냐고 묻자,
“나야 청와대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대통령은 방송에 나가 이런 일화도 소개했다.
“1980년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데, 우리 아내가 ‘김대중을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르겠다’고 해서 어찌나 섭섭했는지 몰라요.”

김 대통령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을 설명할 때도 익살을 곁들였다.
“법정에서 최종 형이 선고되는 순간, 나는 판사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면 사형이고, 둥글게 튀어나오면 무기였어요. 살고 싶었어요. 옆으로 찢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요.”

1998년 11월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장쩌민 주석이 김 대통령에게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물었다.
“저는 오랫동안 망명과 연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 동안에는 제 인생이 중단되다시피 했으니 노화도 중단되었겠지요.”

최경한 비서관이 그의 책 <김대중 리더십>에서 전하는 사례 두 가지만 더 소개하겠다.

2006년 10월 전남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여학생 사회자가 ‘이제 전남대 선배가 됐으니 후배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하자 김 대통령은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오늘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전남대와 처음 인연을 맺었으니 먼저 온 여러분이 선배지 내가 왜 선배냐? 선배님들이 후배인 나를 잘 봐 달라.”

2006년 10월 서울대 개교 60주년 초청강연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져 ‘전쟁 불사론’까지 등장하자 대통령은 전쟁만은 안 된다며 던진 비유인데,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이라는 희극배우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히틀러를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희극배우답게 말했어요. 전쟁은 전부 40대 이상의 사람만 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이 먹는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든 살든지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유머와 위트의 달인이었다.
친근한 이미지와 친화력의 저변에는 타고난 해학과 기지가 있었다.

2004년 5월 연세대 리더십 특강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하다가 요즘 근황에 대해 설명
“손녀가 예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뻐 봤자 뻔하죠. 한계가 있지요. 저를 보면 상상이 되지요?”

2004년 12월 풍기 인삼 현장 방문
홍삼이 남성 정력에 좋다며 권하자 시식하며 던진 한 마디
“우리 집사람에게는 그 얘기 하지 마세요.”

2005년 11월 신임 사무관과의 대화
여성 사무관이 대통령의 건강 유지 비결을 묻자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기밀입니다.”

참모들과도 격의 없는 농담도 즐겼다.
봉하에 내려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집필에 몰두하고 있던 대통령은 책의 목차를 짜서 참모들에게 넘겨주며 이런 말을 덧붙여 내려 보냈다.
“헉!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인자는 너거들이 죽을 차례다. 나는 한참 좀 쉬어야겠다.”
양정철 전 비서관의 증언이다.

그의 해학과 기지는 해외 순방에서 더 유감없이 드러났다.
윤태영 전 부속실장 증언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2004년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명예교수 위촉장 전달
“세계적으로 저명한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으로부터 명예교수 위촉장을 받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어 위촉장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한 후 한 마디 보탠다.
“그런데 이제 교수가 됐는데 위촉장을 읽을 수 없어 큰일입니다. 위촉장을 읽을 수 있도록 공부를 다시 하겠습니다.”

2004년 11월 브라질 방문시 룰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대통령 표현을 빌리자면 ‘귀국해서 국민에게 자랑할 것이 한 보따리’일 만큼 많은 현안들이 해결되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뜻을 대통령은 이렇게 표시했다.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아서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2004년 12월 폴란드 방문시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대통령은 우리 측 참모를 소개하는 순서에서 정우성 외교보좌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 외교보좌관, 이름이 뭐지요?”
다음 날 폴란드의 한국학과 교수와 학생 접견 자리
“폴란드 사람 이름은 외우기가 힘이 듭니다. 저는 매일 만나는 보좌관 이름을 기억 못해서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이름은 잊어먹지 않았습니다.”

2006년 12월 호주 방문 시 존 하워드 총리 주최 공식오찬 답사
대통령은 원고에 없는 얘기를 꺼내 들었다.
“불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년 60억 달러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꼭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은 배를 잘 만드니까 최소한 한국으로 석탄과 LNG를 싣고 갈 때 꼭 한국 배로 부탁드립니다. 또한 제가 여러 나라를 갔을 때, 한국 산 자동차와 휴대폰을 보면 그 나라에 무한한 친근감을 느낍니다. 내년에 또 다시 오는데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각별히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에서도 대통령은 수입 확대 요구라는 딱딱한 통상 문제를 유머감각을 발휘해 부드럽게 전달했다.
“호주산 철광석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자동차들이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모범은 아니지만, 그들은 유머를 중시한다.
백악관에는 유머 담당 작가가 별도로 있을 정도다.
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대통령의 위트>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미국의 밥 돌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쓴 책이다.
여기 보면 역대 미국 대통령의 유머리스트 순위가 나온다.
1위 에이브러햄 링컨 :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재미있었던 우리의 대통령
2위 로널드 레이건 : 배우로서 결코 타이밍이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3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그의 위트는 미국이 공황과 세계대전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됐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은 청중을 웃게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유머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정적 스티븐 더글러스 의원이 공격했다.
“당신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요”
링컨이 받아쳤다.
“만약 내게 두 개의 얼굴이 있다면 하필 이런 중요한 자리에 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소.”
물론, 링컨이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조크이다.

로널드 레이건의 조크는 위기상황에서 빛이 났다.
1981년 존 힝클리의 저격을 받고 긴급 후송되었을 당시,
간호사가 그의 몸에 손을 대자 “우리 아내에게 허락 받았나요?”
수술 집도의사에게 “당신들 모두 공화당원이겠지요?”
이러 유머가 알려지면서 지지율이 83%까지 올랐다.
하지만 다음 해 지지율이 30%까지 내려가자 참모들이 걱정했다.
“다시 한 번 총 맞으면 된다.”

영국의 처칠도 촌철살인의 유머로 유명하다.
처칠이 화장실에서 국유화를 주장하는 노동당수 애틀리와 만났다.
그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처칠은 계속 기다렸다.
이를 본 애틀리가 이유를 묻자 처칠이 대답했다.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려고 하는 당신이 내 것을 보고 국유화하자고 달려들면 큰일 아니오.”

사실, 말이나 글에서 유머를 던지기는 쉽지 않다.
욕심나지만 두려운 게 유머와 조크다.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실패했을 때 감수해야 하는 썰렁함 때문이다.
그래서 유머나 조크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쫄지 말자.
아니면 말고 정신으로 과감하게 도전해보자.
도전하면 50%의 성공 확률이 있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100% 실패뿐이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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