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6] 독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쉽게

읽는 사람이 갑이다.
– 쉽게 쓰자

‘포지셔닝’이란 개념을 처음 정립한 잭 트라우트(Jack Trout)가 이런 말을 했다.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지만,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내용을 글에 대비해 보면 이렇다.
‘글은 쓰는 사람이 쓰지만, 글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쓰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할까?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듣는 사람이 잘 알아차릴까?
김대중 대통령의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김 대통령의 충고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대한 쉬운 표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비유나 속담이 많이 등장한다.
햇볕정책을 설명하는 데는 이솝 우화가 동원됐다.
“바람과 해가 나그네의 옷을 누가 먼저 벗기나 내기를 했습니다. 바람은 강제로 벗기려하나 실패했습니다. 해는 따뜻한 햇볕을 쬐어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합니다. 햇볕정책이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대통령의 손을 거치면 쉽고 명쾌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글이라는 건 중학교 1, 2학년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
실제로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이 어디쯤인지 알고 싶다고 중학교 교과서를 가져와 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의, 즉 소수가 누리던 것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까지 확산하는 것.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일조하는 길이다.

글쓰기는 나와 남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 글을 봐 주는 사람이 이해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하고 제대로 이해시킬 책임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글이나 말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 입에 떠 넣어줘야 한다.
손에 확 잡히도록 쥐어줘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당연히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전문용어에 돼먹지 않은 아는 체는 자제해야 한다.

둘째,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얘기의 요점은 이것, 이것, 이것이다’라고.
그래서 읽는 사람이 척 보면 알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여 이해를 도와야 한다.
여행 갔을 때, 가이드가 그 나라 국토 면적을 몇 제곱킬로미터라고 하면 이해가 쉽든가?
한반도의 몇 배다, 이렇게 설명해줘야 쉽지 않든가.

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세 번 정도는 반복해줘야 전달이 분명하게 된다고 한다.
글의 서두에 내가 할 얘기는 이것이다. (한 번)
이런 얘기를 하는 배경은 이것이다. (두 번)
내 얘기의 결론은 이것이다. (세 번)
단, 이런 반복이 ‘강조’로 들리지 않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횡설수설로 들리면 곤란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반복할 것을 주문했다.
다 알아 듣는 것 같아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하는 사람은 여러 번 해도 듣는 사람은 한 번이라고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전국에서 10개 경기장이 순차적으로 개장 행사를 가졌고, 대통령은 매번 참석했다.
이때 월드컵 개최의 의미와 파급효과에 대해 모든 연설문을 똑같이 썼다.
연설비서실에서는 좀 다르게 바꿔 봤지만, 대통령은 항상 같은 내용으로 다시 원위치시켰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코멘트도 함께 내려 보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듣는 사람은 처음 듣는 것입니다. 설사 같은 말을 다시 듣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한 번 말해서는 머릿속에 잘 기억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반복하세요.”

김 대통령은 예를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해박한 분이 항상 같은 예시를 들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독창성을 얘기할 때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 해동불교로 발전시켰고, 유교를 받아들이면 조선유학으로 발전시켰다.”고 되풀이했다.
다른 예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것저것 사례를 들면 헷갈릴 것을 염려해서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레이건이 민주당 몬데일을 이긴 이유도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몬데일은 다양한 주제의 연설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레이건은 두세 가지 내용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레이건은 콘텐츠가 빈약하다’며 비판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레이건은 괘념치 않았다.
결국 몬데일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유권자의 머릿속에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레이건의 말은 분명하게 기억했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반복하는 걸 싫어했다.
2007년 전국적으로 혁신도시 기공식 행사가 줄줄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혁신도시 개발 취지를 늘 달리 설명하기를 원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일반인 누구나 쉽게 알아먹을 수 있는 서민의 언어를 쓰고자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언어’를 쓰라고 옥조였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막가자는 것이지요?”라고 했을 때, ‘못해먹겠다’고 했을 때, ‘대못질’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도 ‘대통령의 말이 경박하다’, ‘대통령의 말에 품격이 없다’고 꾸짖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군림하는 대통령을 경험한 국민들 사이에서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그런 표현을 써도 되나’,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권위가 있어야지’ 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씨는 쉬 고쳐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말이 따로 있는가.’
‘대통령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누가 만들었는가.’

그래서였을까?
대통령은 깔끔하게 정제된 표현보다는, 진솔하고 투박한 표현을 좋아했다.
우리가 살면서 평소 쓰는 일상어로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들려고 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입는 것, 먹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없는 세상입니다.”
<1988년 7월 국회 본회의 사회문화에 관한 질문 중>

어쨌든 글은 쉽게 써야 한다.
말과 글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이 갑이다.
설득 당할 것인가, 감동할 것인가의 결정권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에게 있으니까.

그렇다면 쉬운 글은 쓰기 쉬운가?
더 어렵다.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차라리 어려운 글은 쓰기 쉽다.
그런 점에서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고 한 헤밍웨이의 말은 확실히 맞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One Response to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6] 독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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