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8] 진정성이 부르는 그 것, 감동

진짜, 진실, 실천
– 진정성으로 승부하라.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어버이날에 부르는 노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노래.
음정 박자 틀렸다고 문제가 되겠는가.

말과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진실한 모든 말과 글은 훌륭하다.
진정성이다.
말과 글의 감동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진정성을 뜻하는 영어 ‘authenticity’는 ‘authentikos’(진짜)라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렇다.
진짜가 진정성의 첫째 조건이다.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2003년 3월, 국회 국정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저녁 시간에 관저로 올라갔다.
그곳에 안희정(현 충남도지사)이 있었다.
대통령이 얘기했다.
“희정 씨, 이번 국정연설에서 나라종금 건을 다 밝히고 갔으면 해요.”
대통령은 연설문에 담으라며 구술했다.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저의 참모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나라종금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미 검찰에 이 사건을 정치적 고려 없이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수사를 해도 그 결과를 놓고 또 다른 의구심이 제기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에 따라 소모적인 정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실 규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만일 ‘나라종금 사건’에 저의 참모가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저를 위해 일했던 사람의 잘못은 곧 제 잘못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대통령의 신분인 만큼, 저의 임기 중에는 형사소추가 유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임기를 마치는 대로 기꺼이 그 책임을 질 것입니다.”

이 문안은 참모들의 만류로 결국 연설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안희정이 완강하게 말렸다.

대통령은 얼마 후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시했다.
“나라종금 건은 나와 관련이 있다 해도 개의치 말고 수사해 주십시오.”

진정성의 두 번째 조건은 진실한 것이다.
이것은 솔직한 것과는 좀 다르다.
진실하다는 것은 단지 감추지 않고 속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솔직함도 있다.
외교적 수사가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은 진심으로 대하는 것을 대화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대통령은 이렇게 얘기한다.
“모든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 신뢰를 쌓는 것이다. 입장이나 의견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대하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이면 모든 문제는 풀 수 있다. 진정성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진정성 있는 대화는 시작은 힘들지만, 한 번 시작되면 쉽게 깨지지 않는다.”

김 대통령은 이런 원칙을 갖고 많은 정상과 지도자들을 만났다.
국민들 앞이라도 해야 할 쓴 소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도자의 용기이고 도리라고 했다.

김 대통령을 정치 9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술수’나 ‘꼼수’를 말하는 것이라면 틀렸다.
대통령은 늘 진실한 태도로 임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사안을 진지하게 대했다.
그가 정치 9단이라면 진정성의 결과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이후에 ‘정치 10단’이란 소리를 들었다.
개헌을 제안했을 때도 술수가 있을 것이라고들 얘기했다.
이처럼 개헌 제안에 대해 진정성 논란이 일자, 2007년 1월 지방언론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에게 진정성을 따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진정으로 하면 어떻고 안 진정으로 하면 어떻습니까? 정치인이 진정으로 안 하는 말이 어디 있고, 또 진정으로 하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오죽 했으면 이런 말까지 했겠는가.
노 대통령은 ‘꼼수’나 ‘잔머리’를 쓰지 않아 늘 문제가 되었다.
대연정 제안 때도 그랬다.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의 증언이다.
“2004년 2월 초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해 왔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아직은 보안사항이지만, 기자들에게 ‘6자회담 전망이 밝아지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며칠 후 북한의 복귀 사실이 공표되면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마디 했다.”
“하지 맙시다.”

속셈이나 저의가 없는 것, 겉과 속이 같은 것이 진실한 것이다.
지나치게 계산되거나 수위를 조절한 메시지는 진정성 면에서 힘을 잃는다.

국민, 대중, 청중은 안다.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
심지어 소비자들도 진심으로 말하는 기업의 제품을 산다.

진정성의 세 번째 조건은 행동과 실천이다.
말로만 해서는 진정성을 얻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줬다.
박해와 시련, 죽음의 고비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일관되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매진했다.
평생 화해하고 용서하는 삶을 실천했다.
그를 죽이려했던 사람들과도 화해를 시도하고 용서했다.
민주주의, 남북관계, 용서와 화해에 관한 그의 메시지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봐도 진정성은 그 사람의 행적으로 평가받는다는 게 사실이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낙선하고 이렇게 말했다.
“결코 굽히지 않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살아 있는 영혼이 이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증거를 보여줘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그쳤으면 진정성이라 할 수 없다.
1998년 종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서도, 2000년에 또 부산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역주의 극복에 관한 진정성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진정성을 말할 때 놓쳐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자기가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의 핑계 대면 안 된다.
사돈 남 말하듯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자기희생을 전제해야 한다.

또한, 진정성은 선한 뜻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취지가 좋으니까, 나는 이런 선한 동기를 갖고 한 일이니 진정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은 곤란하다.
진정성은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한 책임윤리이고, 진정성이다.

2003년 10월 긴급 기자회견 모두연설
“최도술 씨는 약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 왔습니다. 그의 행위에 대해서 제가 모른다 할 수가 없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선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서 국민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립니다.
아울러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서 그동안에 축적된 여러 가지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2004년 3월, 대선자금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회의가 있었다.
대통령과 민정수석실, 연설비서실이 관저에서 하는 기자회견 모두연설 준비회의였다.
나는 준비한 초안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한마디만 했다.
“됐습니다.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음날 대통령은 직접 메모한 내용을 갖고 연설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듭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번번이 하는 사과, 말로 끝나는 사과, 그 뒤엔 다시 달라지지 않는 정치 등 국민 여러분들은 사과받기에 지치고 짜증이 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사과를 다르게 하겠습니다. 책임지겠다고 약속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도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진지한 자세로 책임을 이행하겠습니다. 같은 일로 다시 사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측근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최도술 씨는 20년 가까이 일을 맡았고, 안희정 씨는 15년 가까이 됐습니다. 제가 감독하고 관리할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잘못은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거듭, 거듭 사과드립니다. 이들이 조달하고 사용한 대선자금은 저의 손발로서 한 것입니다. 법적인 처벌은 그들이 받되 정치적 비난은 저에게 하기 바랍니다.”

두 대통령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이 서거 이후에 더 많은 사람에게 애틋한 기억과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바로 진정성의 힘이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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