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9] 그 글 어떤 글이야? 기조 잡기의 중요성

비장함이야, 축제 분위기야?
– 기조 잡기

무엇을 쓸 것인가, 즉 핵심메시지가 정해지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글의 기조를 잡는 것이다.
기조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데, 글의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예를 들면 광고에서 말하는 톤&매너(Tone&Manner), 영화나 연극에서 얘기하는 무드(mood), 패션에서의 스타일, 음악의 음조, 회화의 색조 같은 것이다.

속된 말로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이번 경찰의 날 연설문은 띄워주는 거야, 조지는 거야?”
“돌아오는 광복절 연설문은 밝게 갈 거야, 무겁게 갈 거야?”
“무역의 날 연설은 비장함이야? 축제 분위기야?”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기조 잡기이다.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김선일 씨가 피납되었을 때 대통령 담화문의 기조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테러행위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하면 피납자의 안전이 염려됐다.
그렇다고 납치행위에 굴복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피납자가 선교를 위해 그것에 갔던 터라, 당시 국내에서는 기독교 신자와 비신자 간에 피납 사태를 보는 느낌이 서로 달랐다.
이 또한 기조를 잡는 데 있어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담화문의 기조를 단호함으로 갈 것인지, 절절한 호소로 할 것인지, 차분한 설득으로 할 것인지 정해야 했다.

광복절 경축사나 3.1절 기념사를 작성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어려움에 부딪힌다.
바로 일본에 관한 언급 수위이다.
당시 한일관계 등을 고려하여 강경하게 갈 것인지, 담담하게 갈 것인지를 정한다.

기조는 크게 보면 논리적 접근과 정서적 접근이라는 둘로 나뉘기도 한다.
대개 지도자들은 논리적 접근을 좋아한다.
정서적인 부분은 양념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부처에서 올라온 연설문 초안을 보면 정서적인 접근을 한 것이 많다.
2차 남북정상회담의 통일부 초안이 그랬다.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글이었는데, 언뜻 보았을 때 마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결국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대통령은 콘텐츠를 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기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서적인 접근으로 점수를 따야 할 때도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조를 잡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글 쓰는 사람의 목표, 혹은 목적의식이다.
글 쓰는 목적이 주장인지, 설득인지, 설명인지, 호소인지, 당부인지, 반박인지, 질타인지, 제안인지, 사과인지에 따라 기조가 바뀐다.
목적이 ‘설명’에 있다면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주장’이 글을 쓰는 목적이라면 주관적으로 자신의 단호한 입장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또는 글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기조를 달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이유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인지, 감동을 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행동을 유발하기 위함인지, 단지 재미를 주거나 칭찬, 격려하기 위해서인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 이승철 논설위원에 따르면, 신문 사설도 설명형, 비판형, 설득형, 칭찬형으로 나뉘며, 해당 이슈의 성격에 따라 각각에 맞는 흐름을 쓴다고 한다.

기조에 따라 전달 형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할 것인지, 기자회견을 통해 전달할 것인지, 연설을 할 것인지, 아니면 편지 형식으로 부드럽게 전달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한미 FTA 체결과 관련해서도 기조가 설명인지, 설득인지, 호소인지, 아니면 반박인지에 따라 발표하는 형식이 달라졌다.

기조에 따라 문체도 결정된다.
강건체와 우유체, 간결체과 만연체, 건조체와 화려체 중에 적합한 문체를 고르게 되어 있다.

기조는 가급적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게 좋다.
글의 흐름은 그것을 쓴 사람의 고유한 스타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안에 대한 기조는 그 사안에 대한 그 사람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기조가 자주 바뀌면 곤란하다.

기조를 잡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많다.
대상이 전 국민인가, 지지 세력인가.
거대담론 형식으로 가져갈 것인가, 현안 중심으로 작게 가져갈 것인가.
차분하게 설명할 것인지, 각을 세워 도발적으로 반론할 것인지.
대외문제로 접근할 것인가, 대내문제에 국한할 것인가.
미래 얘기에 중점을 둘 것인가, 당면 과제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낮게 겸손하게 갈 것인가, 당당하게 갈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를 일 년여 남겨둔 2001년 신년사
벤처 비리가 불거져 국민정서가 좋지 않았다.
대통령이 어느 수위로 국민에게 사과를 표명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사과하는 표현에도 수위가 다양하다.
‘유감이다’에서부터 ‘사과한다’, ‘송구하다’, ‘면목 없다’. ‘죄송하다’, ‘사죄 드린다’, ‘참담한 심정이다’에 이르기까지.

기조가 잡혔다고 해서 기조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
모든 사안에는 이해 당사자가 많다.
대표적으로 임금이나 근로조건과 관련한 얘기를 할 때에는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어느 일방을 칭찬한 결과가 다른 일방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경우 엄하게 질책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정했다 할지라도 시종일관 그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칭찬 쪽으로 정한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칭찬만 하면 오히려 의례적인 칭찬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므로 주된 기조로 80%, 그렇지 않은 쪽으로도 20% 정도는 안배를 하는 게 좋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진실에는 흑백이 없다.’

글에만 기조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에게도 기조란 게 있다.
성격일 수도 있고, 성향일 수도 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었을 때, ‘어떤’에 해당하는 게 기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 마디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기조 잡기는 어려운 것이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One Response to [두 대통령과 함께한 전략적 글쓰기 29] 그 글 어떤 글이야? 기조 잡기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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