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정도전’, 정통으로 차별화하다.

 정도전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한 이 말이 지난 해 꽤 많이 언급됐다. 한국사교과서논쟁을 설명하는 데 이만큼 적절한 문구가 없다고 많은 사람이 판단한 모양이다. 똑같은 역사적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교과서별로 너무나도 판이했다. 해당 논란은 교과서선정이 진행되는 지금까지 뜨거운 감자다.

같은 맥락에서 사극 드라마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좋은 소재다. 사극 드라마의 역사왜곡 논란은 최근 특히 빈번해서, 적어도 필자에게는, 이런 논란들이 이제 조금 피로하다. KBS에서 새로 시작한 사극 <정도전>은 이 시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1. 차별화

정통: 1 바른 계통 2 적장(嫡長)의 혈통 3 사물의 중심이 되는 요긴한 부분

‘정통’의 사전적 의미는 위와 같다. 대개 정통은 기초이자 기본이다. 주류를 이룬다.
정통을 거스르는 것은 파격이다. 그런데 정통이 파격이 되기도 한다. 십중팔구가 파격인 곳에서는 오히려 정통이 파격적이다.

<정도전>은 ‘정통대하사극’을 표방한다. 팩션사극의 홍수 속에서 <정도전>은 정통으로 스스로를 차별화했다.

사극은 논란을 낳기 쉽다. 역사에 충실할 것인지 극적인 상상력에 치중할 것인지의 선택은 사극의 제작진이라면 모두 고민하는 주제일 텐데, 최근 상상력에 치중한 사극이 많았던 탓이다. <기황후>는 고려를 괴롭힌 고려 출신 대륙 황후를 미화했다는 논란을 낳았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흔히 알고 있는 장희빈에 대한 정보를 무시한 채 사랑의 희생자로 미화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이처럼 역사왜곡논란을 빚었던 사극은 차치하더라도, <천명>, <칼과 꽃>, <대풍수> 등 2013년 지상파 사극은 팩션사극이 대세를 이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정도전>은 이 구절을 제작발표회에 등장시켰다. 역사에 충실한 사극이 부재한 상황에서 위 말은 시청자 다수의 감정을 건드렸다. ‘정통으로의 귀환’은 과거에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에도 유리하다. 사극의 주된 시청자였던 중년남성은 다시 TV 앞으로 소환되었다.

2. 변화

정통사극을 표방한 <정도전>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과거 사극이 시도하지 않았던 다큐형식을 도입했다. 매주 일요일 <정도전>은 인물 정도전을 조명하는 다큐를 드라마 후반부에 덧붙인다. 역사를 바로 아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정도전>이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진한 제스쳐다.

3. 퀄리티

차별화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예선전이라고 볼 수 있다면 퀄리티는 본선이다.
시청자들이 보는 드라마는 한 가지밖에 없다. ‘재미있는 드라마’다. 여타 드라마와의 차별화로 시청자가 드라마를 한번 보도록 유도할 수는 있겠지만, 차별화만으로 드라마를 계속 보게 할 수는 없다.

<정도전> 제작진은 제대로 역사고증을 하기 위해 2년의 시간을 투자했음을 밝혔다. ‘제작발표회에서 작가가 마치 EBS 수능강사 같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웃기지만은 않은 이유다. 고려시대의 의복도 제대로 구현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극에서 의상은 제작비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다. 이 때문에 많은 경우 의상은 한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출연진도 퀄리티를 엿볼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조재현, 유동근 등 출연배우는 연기력으로 이미 인정받았거나 과거 정통 사극에서 ‘한 가닥’ 했던 사람들로 채워졌다. 한류스타나 아이돌이 없다. 정통사극에 목말라 하던 타겟시청층은 출연진으로 또 한 번 공략 당했을 것이다.

4. 사측의 전략

“수신료 현실화, 건강한 공영방송의 시작입니다.”

드라마는 이 문구와 함께 시작된다. <정도전>뿐만이 아니라 KBS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다. 최근 KBS는 수신료 인상을 의결했다. 돈을 더 걷겠다는데 좋아할 국민은 많지 않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KBS가 여타 방송사와 다르다는 점을 어필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 역사에 충실한 정통사극을 만드는 것은 일면 전략적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왜곡 논란으로 정국이 시끄러운 때에 역사를 바로 알리겠다는 취지가 짙은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기에 좋다. KBS는 최근 시사교양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도 정도전을 주제로 다루는 등, <정도전> 밀어주기에 한창이다. 공익을 추구하는 방송을 만든다는 명목 하에 외부광고를 방영하지 않는 KBS1TV가 정통사극 <정도전>으로 주목받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KBS는 수신료 인상에 대한 부담을 조금 덜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 KBS가 <정도전>에 스스로를 투영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공익을 추구하는 정통방송 = KBS’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지 유추하는 것은 비약일까?

정도전은 이제 막 두 회를 방영했다. 일단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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