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잉투기’ – 짜증이 날 정도로 외롭고 화가 날 정도로 무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잉투기페북

0. <잉투기>를 봤다. 작년 말에 개봉했고 이미 막을 내렸지만 최근 ‘2013년 청춘의 작품’을 재상영하는 행사를 운 좋게 발견했다. 잉투기(ing투기)는 ‘지금 싸우고 있는 중’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병맛 냄새 물씬 나는 포스터와 예고영상, 그리고 ‘키보드워리어*가 현피**뜨는 이야기’ 정도로 알려진 줄거리 때문에 나는 <잉투기>가 그저 그런 킬링타임용 B급영화일 것으로 예상했다.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1. 짜증이 날 정도로 외롭고 화가 날 정도로 무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키보드를 잡은 청춘이 있으니, 주인공 태식이다. 태식은 외로움을 잊고 스스로 쓸모 없는 잉여인간 같다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기 위한 해법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태식은 인터넷의 축복 ‘익명성’ 뒤에 숨었다. 웹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올린 글에 악플을 달았다. 다른 네티즌과 싸움도 서슴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용기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키보드워리어’라고 부른다. 키보드워리어는 또 다른 키보드워리어를 부르게 마련. 태식은 또 다른 키보드워리어 욱한과 댓글로 개싸움을 하기도 했다.

태식이 선택한 키보드워리어로써의 해법은 엄청난 굴욕과 트라우마로 끝났다. 태식이 기습적으로 욱한에게 현피를 당한 것이다. 태식은 손쓸 도리 없이 얻어터졌고 그 영상은 뉴스에 나올 만큼 유명세를 탔다. 이제 태식의 무기이자 방패였던 익명성은 저 멀리 사라졌다.

어라, 그렇다면 태식의 답은 틀렸다. 외롭고 무력한 청춘들이 찾아야 할 답은 뭘까?
영화 <잉투기>는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2. 예상 답안 하나: 인터넷에서 로그아웃하고 현실로 로그인한다.

1에서 언급했던 ‘또 다른 키보드워리어 욱한’은 ‘현피’를 그 답으로 찾았다. 인터넷 뒤에 숨은, 입만 산 찌질이가 되지 않기 위해 댓글격투를 현실로 가져왔다. 욱한에게 당한 태식 역시 비슷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욱한을 찾아내 현피로 복수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 답도 영 틀려먹은 것 같다. 두 가지 지점에서 그렇다.
첫째, 현피가 이뤄지는 것은 현실 세상이지만 현피를 뜨는 그 순간에도, 현피에 성공한 순간에도 그는 인터넷 세상에 있다. 현피 뜨는 모습을 인증하는 영상을 올리는 곳도 인터넷,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곳도 인터넷이다.
둘째, 애초에 이 청춘이 무력감을 느꼈던 장소는 현실이다. 인터넷 안에서의 승리는 현실 어느 부분도 바꿔주지 못 한다. 현실에서 그는 여전히 쓸모없는 잉여처럼 인식되고, 무력감은 변함이 없다.

3. 예상 답안 둘: “나 힘들어. 좀 도와줘.” 주변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두 가지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장면 하나. 먼저 태식이 엄마에게 처음으로 진심어린 편지로 부탁을 하는 부분.

“코스타리카에서는 택시운전사도 행복하다더라. 행복지수 1위래. 이민 가자.”, “아 몰라. 너 안 가면 나 혼자라도 갈 거야.”라고 포고한 엄마에게 태식은 편지를 남긴다.
<엄마 뭐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나 이제 격투기 대회 나가. 그래도 내가 이거 하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어떤 생각이 들었거든. 그러니까…. 내가 대회 끝나면…. 뭐라도 해볼게. 엄마 그러니까… 우리 이민 안 가면 안돼?>
엄마의 대답을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태식에게 엄마는 태식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지금까지 같이 살았으면 오래 같이 살았지 뭐… 엄마가 보증금까지는 해줄게. 월세는 해결할 수 있지?”

장면 둘. 힘들어 미치겠을 때,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고백하는 부분.

좌절을 겪고 연락이 두절된 태식을 걱정하던 영자는 자신의 집에 들어와서 영자를 기다리던 태식과 마주한다. 태식이 비장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한다.
“좋아해.”
영자는 거절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챙김 받고 싶었다고!” 영자의 거절에 욱한 태식은 소리친다.
‘퍽’ 격투기 소녀 영자에게 태식은 한 방 세게 얻어터진다.

이쯤 되니 ‘주변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한다’도 답이 아닌 것 같다. 왜일까?
세상은 태식에게만 가혹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도 외롭고 엄마도 무력하다. 힘들어서 ‘이민’이라는 이름의 도망을 가려는 엄마는 태식을 안아주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두 번째 장면은 더 가관이다. 영자는 엄마아빠 없이 혼자 산다. 영자 입장에서 보면, 엄마 있는 남자애가 챙겨달라니. 한 대밖에 안 때렸으면 많이 참은 셈이다.

4. 누구나의 오답: 욱한이 태식을 때렸던 이유.

태식은 욱한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욱한이 태식을 때렸던 이유를 듣는다.
“자기랑 비슷하니까 맘에 안 든다고…”
욱한에게 있어 현피는 무력함을 넘어 자기 자신의 못난 면을 없애고 싶은 감정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욱한이 왕년에 불렀다는 노래 <데칼코마니>의 가사도 의미심장하다.
“친구여 너와 나는 데칼코마니 / 이제는 내가 너를 데려가나니”

결국 욱한은 스스로 자신을 없애는 것으로 답을 찾는다.

5. 답은 대체 무엇일까.

잉투기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답을 찾아간다. 그러나 정답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어떤 드라마틱한 결론도 없다. 태식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얼굴을 흠씬 두들겨 맞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날아오는 주먹을 눈을 부릅뜨고 마주한다는 것 정도다.
짜증이 날 정도로 외롭고 화가 날 정도로 무력한 청춘이 해야 하는 일은 숨어버리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 발짝 정도는 진전할 행운이 허락될까.

<잉투기>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가 도리어 질문을 던지며 막을 내린다.

6. 덧.

고민 없이 승승장구하는 청춘은 몇이나 될까.
<잉투기>에는 태식, 욱한, 영자 외에도 여러 유형의 청춘들이 등장한다. 나와 닮은, 혹은 나의 친구와 닮은 등장인물을 찾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예를 들어 나는 ‘영어리스닝 파일을 들으면서, 옆 친구에게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보이도록 고개를 까딱이며 리듬을 타는 여학생’에 공감했다. 공부따위 관심도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하게 되면 항상 이런 질문을 받게 마련이니까. “너 공부하냐?”

김정현

*키보드워리어: 인터넷에서 상습적으로 악플을 마구 달고, 댓글로 싸움을 하는 네티즌.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자행한다.
**현피: ‘현실’의 앞 글자인 ‘현’과 PK(Player Kill)의 앞글자인 ‘P’의 합성어. 게임, 게시판 등 웹상에서의 싸움을 현실에서 벌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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