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커뮤니케이션] 죽음과 커뮤니케이션- 자신의 부고를 쓰는 사람들

old hand

 

“자신의 부고 기사를 작성해 보라” 몇 년 전 한 글쓰기 강의에서 이런 과제를 받고 잠시 머리가 멍해진 적이 있다. 내 장례식은 어디에서 어떻게 치러질까, 누가 참석할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 전까지 해본 적이 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실제로 자신의 부고를 직접 쓴 사람들이 있다. 지난 3월 21일 숨을 거둔 미국의 배우 제임스 레브혼(James Rebhorn)은 피부암 말기에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자신의 부고를 쓰기 위해 펜을 들었다.

1. 미국 뉴저지주의 세인트 폴 루터 교회가 24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짐이 말하는 그의 삶(His Life, According to Jim)’이라는 제목의 부고 기사에서 레브혼은 가족과 지인들에 대한 고마움과 연기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부고는 그가 가족들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다며 부모와 아내, 자녀, 친척의 이름을 일일이 지칭한다. 부고는 “그는 가족들은 자신의 죽음을 딱 필요한 만큼만 슬퍼해주길 바란다. 그들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고,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부고 기사는 “그는 모든 면에서 운 좋은 사람이었다.(He was a lucky man in every way)”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레브혼은 지난 해까지 미국드라마 ‘홈랜드’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로 출연하는 등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들에서 조연으로 활약했다.

2. ‘20세기의 지성’으로 꼽히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셀프 부고 기사’도 유명하다. 그는 78세였던 1950년에 출간한 ‘인기없는 에세이집’에 자신이 직접 쓴 부고 기사를 수록했다. 러셀은 자신이 9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고 가정하고 1962년 6월1일 영국의 일간지 타임스에 발표될 자신의 부고 기사를 작성했다.

그는 스스로 작성한 부고에 이렇게 적었다. “러셀은 한평생을 천방지축으로 살았지만 그 삶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으로 일관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19세기 초의 귀족 출신 반역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신념은 기묘했으나 그의 행동은 늘 신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는 친구들에게 그는 비상하게 오래 산 사람치고 몹시 재미난 인물로 여겨졌는데 여기에는 의심할 것도 없이 그의 변치 않는 건강이 큰 공헌을 했다”, “이는 또한 정치적으로 만년의 그가 왕정복고 이후의 밀턴만큼이나 고립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숨을 거둔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실제로 러셀은 98세까지 장수를 누리고 1970년에 세상을 떴다.

3. 작년 여름에는 한 여성 작가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쓴 부고가 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2013년 7월 미국의 시애틀타임스에 여성작가 제인로터(Jane Lotter)가 직접 쓴 부고가 실렸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자궁내막암의 장점”이란 농담으로 시작하는 그녀의 부고에는 자신의 일대기와 가족에게 전하는 말,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었다.

1952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로터는 1975년 워싱턴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99~2005년까지 그녀는 일간지 시애틀선에 ‘제인 익스프레스’ 코너를 맡아 유머 칼럼을 작성했다. 부고는 “저는 밥(로버트의 애칭)을 75년 11월22일 파이어니어 광장의 술집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날은 제 생애 가장 운 좋은 밤이었어요. 밥, 당신을 하늘만큼 사랑해”라며 남편 로버트 마르츠에게 사랑을 전했다. 딸 테사와 아들 라일리에게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가 정말 자랑스럽다” 며 “인생길에서 장애물은 장애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길이란다. 이를 항상 기억하렴”이란 말을 남겼다. “이 아름다운 날, 여기 있어서 행복하다.(beautiful day, happy to have been here)” 그녀는 자신의 부고를 이렇게 끝맺었다.

운좋고, 가치있고, 행복했던 삶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 어쩌면 죽음을 앞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망이 아닐까 싶다.

김재은

제임스레브혼 부고 전문:http://stpauljerseycity.org/stpaul/2014/03/24/in-memory-of-jim-rebhorn/#hislife
제인로터 부고 전문:http://www.legacy.com/obituaries/seattletimes/obituary.aspx?pid=166098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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