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와 유민영의 위기전략: ‘세월호 침몰사건’ 1] FIRST IN LAST OUT

※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로 인해 5월로 예정한 저희들의 계획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리더십/위기관리 전략에 대한 케이스 연구자, 실천자로서 진도 앞바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에 대한 위기와 위기관리의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국민과 개인 모두에게 심리적 재난을 안겨준 국가적 위기 사태를 다시 흘려보내지 말고, 재발 방지를 위해 우리 사회가 새롭게 배우고 혁신하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공공의 재난을 겪은 후 잘못과 실수로부터 배우지 않고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새로운 세대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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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7일 뒤늦게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세월호의 사고 수습과 사후대책을 총괄할 범정부적 차원의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목포에 상주하며 본부장을 맡아 현장을 지휘하기로 했다. 이번 사건의 정부 공식 대변인은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다.

세월호 침몰 대참사 사건에서 위기관리자, 현장 책임자, 사실 확인자, 최종 책임자는 어디에 있었는가?

리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기관리 과정에서 현장 책임자의 역할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2001년 미국 9/11 사태 당시 뉴욕 현장에서 위기관리를 담당했던 제임스 스왈츠는 버지니아주 Arlington의 소방관이었다. 미국에서 소방관은 재난관리분야에서 다른 직종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한국의 소방관에 비해 훨씬 폭넓은 임무를 수행한다. 이 사람은 당시 알링턴 소방서의 넘버2였고 펜타곤이 비행기에 공격당했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다. 그의 말이다.

미국에서는 현장에 먼저 도착하거나(by arrival), 전문성(by expertise)이 있느냐에 따라 현장 지휘권을 갖게 된다. 나는 알링턴 소방관이었지만, FBI와 함께 현장 지휘권을 갖게 되었다.” 당시 펜타곤에 있었던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언제 내가 펜타곤에 대한 지휘권을 되갖게 되는가?” 그러자 현장에 있던 참모는 현재 펜타곤에 화재가 발생했고, 펜타곤은 알링턴 소방서 관할이므로, 전문가인 알링턴 소방관이 갖게 된다. 그러자 럼스펠드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직원들의 대피를 도왔다고 한다. (제임스 스왈츠는 화재로 인한 피해가 문제가 된 초기 10일간 지휘권을 행사했고, 그 이후에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는 FBI로 전권을 넘겼다. FBI10일 후 현장을 지휘했고, 그 이후 럼스펠드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제임스 스왈츠가 현장을 지휘하고 있을 때, 얼마 지나 상사가 현장에 도착하자 그는 지휘관 모자를 넘기며(지휘권을 넘기는 상징 행위) 지휘권을 넘기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상관은 그에게 즉각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이 현장에 대해서는 자네가 더 전문성이 있으니 계속 지휘를 하고, 다른 일을 돕겠다고 했다.

재난과 위기의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스피드(“먼저 도착하거나“)와 정확성(“전문성이 있느냐“)에 기반한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것을 우리는 순간탄력성이라 부른다. 미국의 공공분야 위기 및 재난 현장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한 지휘체계가 현장에서 작동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위기 및 재난 현장지휘관은
1. 우선 평소 충분히 훈련되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2. 단순히 직책이 아니라 현장을 얼마나 잘 알고 장악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리더십이 부여되며, 전문성이 있는 부하에게 이를 넘기는 것이 상식으로 통용된다.
3. 모두에게 존중받고 실제로 상황을 지휘한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1.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승무원은 움직이지 말고 선내에 대기하라고 안내 방송을 했다. 현장의 위기관리자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고 위험에 따른 현장 행동을 지휘하지 않았다.
2. 세월호 선장은 선원법 제11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아니된다를 어겼다. 위기관리자의 역할을 아예 수행하지 않았다. 생존자를 두고 선장과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먼저 떠났다
3. 상황을 초기 인식하고 대응한 해양경찰청 현장 지휘부는 지휘권을 확보받지 못했고, 서울의 중앙대책본부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도 통제하지 못했다.
4. One Voice, One Team의 시스템은 구현되지 못했고 권위를 가진 사실 확인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사실확인과 지휘체계에서 멀리 있는 중앙대책본부는 실종자 통계에서 결정적 실수를 했다.
5. 현장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사실 확인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단원고와 경기도 교육청은 주관적 바람을 객관적 정보로 둔갑시켰다.
6. 총리, 여야 지도부, 지방자치단체장, 6월 선거의 후보들은 그냥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들도 현장 지휘권을 존중하지 않았다.
7. 대통령의 첫 번째 메시지도 잘못된 정보에 기초했다. 인명 사상의 상황이 보고되었을 상황에서 대통령의 첫 번째 메시지는 전원 구제였다.

현장의 지휘자도 없었고 최종 지휘자도 없었다.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았다.

First in, Last out의 리더는 없었다.
First out, Last in만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아무도 사고를 대비하고 예방하지 않았다.
현장의 리더는 제일 먼저 도망을 갔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가장 나중에 도착했다.

이것이 비극을 만든 것이다. 재앙이 일어난 것이다.

정부 내에서 위기관리 업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제대로 된 위기관리 전문가를 양성하며, 정부 리더들의 위기관리 마인드와 의사결정력을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위한 위기관리 예산이 증대되길 바란다. 위기가 터지고 난 다음에 “앞으로 철저히 보완하겠다”고 반복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실천하자. 어느 일도 그렇겠지만 리더의 관심과 투자가 없이는 위기의 역사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무엇보다 훗날 세월호 대참사가 공공의 위기관리에 대한 변화된 시스템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김호 더랩에이치, 유민영 에이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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