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16] 정석으로 갈 것인가? 파격을 선택할 것인가?

 

바둑에 정석이 있다.
프로기사들의 대국을 보면 네 귀에서 정석의 형태가 펼쳐진다.
정석이란 무엇일까?
그 상황에서 각자가 둘 수 있는 최선의 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대국이 정석에 따라서 두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석에서 이탈하는 수가 생기기도 한다.
말하자면 변화를 모색하는 수인 것이다.
이를 통해 판세를 흔들거나 새로운 전투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정석에서의 이탈, 즉 파격은 다분히 공격적이다.
파격에 비해 보면 정석은 상대적으로 방어적이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국무위원 여러분! 부산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국무위원 여러분! 저는 별로 성실한 답변을 요구 안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도 비슷하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하략)“
(1988년 7월 초선인 노무현 의원의 사회분야 대정부질문 시작 대목)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설이었다.
대정부질문이라면 의례적으로 사용되는 문구들이 대폭 생략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존경하는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그리고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여러분.”
노 의원은 이 부분을 대폭 생략하거나 압축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언급도 파격적이었다.
이어서 등장하는 표현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니꼬운 꼬라지’는 이런 점잖은(?) 연설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다시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후의 노무현 대통령.
그가 공식석상에서 읽은 연설에서는 이런 류의 파격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글의 도입부분은 상당히 정형화된다.
의례적인 이야기들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게 된다.
낭독형 연설은 또 청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프리토킹은 뚜렷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노 대통령의 경우 자주 시도했지만,
대통령의 위치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수라도 생기면 역풍이 불기 때문이다.
파격은 모험이다.
high risk high return의 원칙이 적용된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파격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정석에서 시작하자.
감사 인사와 내빈 소개와 같이 의례적으로
거쳐야 할 대목이 있다면 그대로 따르자.
어느 정도 글쓰기에 익숙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과감하게 파격을 시도해보자.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자.
주어진 틀을 거부하자.
앞뒤를 바꾸어 써보기도 하고 도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보자.
매일 정석만 두면서 실점을 안하려고 해서는
글쓰기 능력에 발전이 있기가 어렵다.
정석에서 일탈해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변화를 시도하는 기사가 진정한 10단이다.

윤태영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