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17] 비유는 상상력이다, 맘껏 활용해보자.

 

비유는 말과 글을 풍성하게 해주는 장치이다.
직유든 은유든, 비유가 있을 때
글은 감칠맛을 더하고 읽는 재미가 생긴다.
비유가 만사형통은 아니다.
너무 많은 비유는 글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만의 비유다.
자신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비유는 조심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고 하자.

“선반의 삐져나온 모서리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많이 아팠다. 몇 년 전 갑자기 뇌출혈이 찾아왔을 때 느꼈던 통증과 같았다.”

머리의 아픔을 ‘뇌출혈’의 통증에 비유하고 있다.
과연 적절한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뇌출혈’의 통증을 통해 머리가 아픈 강도를 설명하려는 시도라면 적절치 않다.
‘뇌출혈’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독자들은 그것이 어느 정도의 아픔인지 헤아릴 수 없다.

그렇다면 적절한 경우는 무엇일까?
뒤의 비유가 그 자체로 하나의 묘사를 위한 것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 경우 문장의 주안점은 뒤의 문장에 있게 된다.
작가의 의도가 선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친 것을 빌려
과거에 자신에게 뇌출혈이 찾아왔던 경험을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묘사일 수도 있다.

앞의 경우처럼 순수하게 아픔의 강도를 묘사하려 한다면
다음과 같은 비유들이 적절할 것이다.
“선반 모서리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아픔이었다.”
“선반 모서리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수십 개의 바늘이 콕콕 찔러대었다.”

비유는 상상력의 세계이기도 하다.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비유도 있다.
‘벼랑끝 전술’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구름 위에 뜬 기분’
‘터질 듯한 심장’
‘지옥의 초열’
모두 다 겪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느낌의 비유들을 몇 가지씩 찾아보자.

– 자신을 버린 주인이 다시 올 것으로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망부석이 되어버린 유기견의 기다림.
– 영하의 겨울 서울역 지하도에서
펼친 종이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잠이든 노숙자의 힘겨움
– 이스라엘에서 날아온 포탄에 맞아 피 흘리며 죽어간 아들을 끌어안고 있는
시리아 어느 아버지의 슬픔.

윤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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