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21] “대화체”를 적극 활용하라. 쓰기도 편하고 읽기에도 좋다.

두 달 전쯤의 일. 관저의 서재에서 보고를 받고 있던 대통령을 여사님이 거실에서 급히 찾았다.

“여보, 빨리 나오세요. 정연이 전화 연결되었답니다.”
미국에 나가 있는 딸과 통화를 할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나오려는 순간, 수화기를 든 여사님 옆으로 다가선 대통령의 느닷없는 한마디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자, 시작할까요?”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안부전화가 아니라는 예감이 퍼뜩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를 앞에 들고 나란히 선 내외는 대통령의 ‘하나, 둘, 셋’ 구령과 함께 합창을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딸의 생일날, 대통령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은, 평범한 아버지의 따뜻한 부정이 대통령의 거실에 은은히 감돌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중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글의 도입부이다.
중간에 대화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만일 대화를 지문으로 옮겨서 표현했다면 어떠했을까?
독자들은 아마 글의 도입부터 상당히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연설문이 아니라면 ‘대화’를 군데군데 넣을 필요가 있다.
‘대화’는 지문보다 오히려 쓰기 편하다.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생함이 살아있어 좋다.

글을 쓰던 중 마땅히 이어갈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애꿎은 담배만 피우거나 방안을 맴돈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진부한 설명이 지루하게 이어진다고 생각될 때
발상을 바꿔 대화를 생생하게 묘사해볼 필요가 있다.
스토리텔링은 말할 것도 없고
수필이나, 감상문, 여행기에도 대화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까다로운 시작은 아예 대화체의 문장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어, 저건 꿩이잖아? 꿩이 이곳에 다 오네.”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기라도 한 듯, 대통령은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마당이 보이는 창문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나서 2주일이 지난 3월 25일 오후, 관저 응접실에서의 일이었다.
“저것 보게! 진짜 꿩이야. 어떻게 여기까지 꿩이 왔을까?”
물끄러미 꿩을 바라보던 대통령은 불현듯 생각이 난 듯 관저 부속실로 통하는 인터폰을 눌렀다.
“마당에 꿩이 왔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먹거리를 만들어 놓아두면 좋겠는데.”
색다른 날짐승의 출현이 담담하기만 하던 대통령의 표정을 일순간에 바꾸어놓았다. 그 표정 속에는 유폐 아닌 유폐, 연금 아닌 연금으로 갇혀버린 대통령의 안타까운 봄날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2004년 탄핵당시의 국정일기)

 

윤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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