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24] 글이 산만하면 첫째, 둘째를 활용하여 단락을 지어라.

글을 부지런히 써놓고 나서 한번 읽어보면

스스로 보기에도 두서가 없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내용은 뒤죽박죽 정리가 안 되어있고
맥락도 흐름도 뚜렷하지 않다.
사람들이 과연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지 염려가 들 정도다.
그럴 경우에는 산만한 대목을 일목요연하게 묶어줄 필요가 있다.
첫째, 둘째, 셋째…를 활용하는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글이 딱딱해 보일 위험은 있다.
그럼에도 깔끔하게 정리될 필요가 있을 때 유용하다.
이렇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군더더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기가 훨씬 편리해진다.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기자회견문이나 시정연설 같은 데 자주 활용된다.

사례를 한번 보자.
2003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의 일간지 기고문 가운데 일부이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 국채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낮은 금리로 해외에 팔렸습니다. 중요한 국제신용평가기관들도 한국경제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내 증시에 외국 투자자금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제 서민경제 회생에 주력하겠습니다.
첫째, 주택-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 안정은 기필코 이뤄내겠습니다. 서민들의 꿈과 희망을 일순에 앗아가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서민경제를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적어도 제가 집권하는 동안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둘째, 추가경정예산을 청년실업해소, 서민주택건설 지원, 전략적 SOC투자에 집중 투입해 일자리 창출 등 서민보호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단기적인 경기부양만을 위한 경기대책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단기 경기부양은 결국 물가상승 등 서민경제를 악화시키는 부메랑이 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셋째, 국내외 투자를 막는 행정편의적이거나 실효성이 상실된 규제의 개혁에 과감히 나서겠습니다. 투자야말로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경기를 진작시키고, 중장기 경제를 튼튼하게 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입니다. 대기업들이 26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해외투자자들도 한국시장에 새로운 관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투자를 가로막는 실효성 없는 규제에 대해선 전반적인 재검토를 하겠습니다.
넷째, 자본시장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투신 문제도 연내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투신문제의 해소야말로 증시활성화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리라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정책과 제도의 실패로 양산된 신용카드 연체자에 대해서도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을 모색하겠습니다. 수백만 신용카드 연체자들을 신용불량자로 방치해서는 신용사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차원의 접근이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글을 자세히 읽어보자.
첫째부터 다섯째로 분류된 내용들은 모두 딱딱한 경제용어들로 가득하다.
정신을 바싹 차리고 읽어야 각 단락이 이야기하는 바가 명확히 이해된다.
이처럼 딱딱한 용어들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이어질 때면
‘첫째, 둘째, 셋째…’의 활용이 효과를 발휘한다.
다만 이 방법이 한 편의 글에서 두 세 차례 되풀이되면 곤란하다.
두 세쪽의 글에서는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좋다.
자꾸 사용되면 오히려 피로감을 줄 우려가 있다.

산만한 글을 ‘첫째, 둘째…’을 활용하여 정리하니 매우 깔끔해지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다시 ‘첫째, 둘째…’를 빼도 무방할 정도로 정리가 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는 다시 과감하게 ‘첫째, 둘째…’를 생략하자.
‘첫째, 둘째…’는 호흡을 멈추게 하고 과도한 긴장을 유발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그런 만큼 서정적인 글에서는 가급적 활용하지 말자.

 

윤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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