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영의 ‘나는 이렇게 쓴다’- 글쓰기의 시작을 위한 노트 35] 감정이입을 해야 진정한 고스트라이터

“이건 자네 글이지, 내 글이 아닐세.”
민주당 상임고문 노무현은 A4용지 두 장으로 출력된 원고를 덮었다. 첫 대목의 서너 줄만 읽었을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탁자 위를 응시하던 노무현 고문이 나를 책망했다.
“이런 원고를 쓰려면 사전에 나에게 물어봤어야지. 다시 쓰게.”
지시를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일정이 촉박한 탓이었다. 난감해진 것은 나였다. 대통령 경선후보 캠프에 들어오고 나서 첫 작품이었다. 외부에서의 기고 요청이 많았는데, 마감이 임박한 두 건을 우선 처리하려고 초고를 쓴 것이었다. 10여 년 이상 정치권에서 익숙하게 해온 일이었다. 기고 요청이 들어오면 으레 공보비서가 아이디어를 구상해서 초안을 잡은 다음 보고하는 것이 상례였다. 어떻게 쓰라고 지침을 주는 정치인은 드물었다. 오히려 물어보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작성된 원고는 대부분 무리 없이 통과되고 결재되었다. 그만큼 자신도 있었다. 그 자신감이 노무현 캠프의 첫 작업에서부터 의외의 복병을 만난 것이었다.
(졸저 ‘기록’에서 인용)

자신의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있다.
고스트라이터이다. 일명 ‘대필작가’라고도 한다.
비서나 참모의 신분으로
자신이 모시고 있는 사람의 원고를 작성하는 일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쓴다는 개념으로 보면 같이 묶을 수도 있겠다.
참모가 글을 쓰면 여러 가지로 유리하다.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면서 매일 대화하기 때문이다.
상관의 생각과 주장에 익숙하기 때문에 더욱 잘 쓸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단순히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외부에 원고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
어떤 한 사람의 생각과 밑바탕을 이루는 철학을
하루 이틀 사이에 파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자주 쓰는 용어와 꺼려하는 표현도 알 수 없다.
그런 내용들을 다 파악하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외부인에게 중요한 연설을 맡기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할 일이다.
홍보물도 마찬가지이다.
전문가가 잘 쓸 것 같지만 후보나 인물에 대해서 아는 바가 너무 적다.
아는 사람이 쓰는 게 최고다.
물론 당사자가 쓰고 전문가가 다듬으면 더욱 좋다.

그렇다면 참모가 윗사람의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 사람으로 빙의가 되어야 한다.
즉 감정이입이다.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버리고
철저하게 윗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표현들을 찾아야 한다.
상대 후보나 인물도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글의 모든 내용을 그 사람이 살아온 길과 철학과 일치시켜야 한다.

 

윤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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