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커뮤니케이션] “빵과 집이 부족한 이 상황에 심리치료를 누가 대체 원한단 말입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 재난 이후 심리치료 커뮤니케이션

butterflyhug

*주: 재난이 일어나고 시간이 흐르면 재난은 지나간다. 그러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남겨진다. 생존자, 유가족, 그리고 목격자들 모두 심리적 위기상황에 빠진다. 어떤 이는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 해 장기간 고생할 것이다. 어떤 이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난의 끔찍한 경험을 무작정 머릿속에서 들어내려 할 것이다. 심리 전문가의 도움 없이 방치되는 것이다. 대중을 위한 심리치료의 사례를 발췌 번역했다. 아이티 지진 후 포르투프랭스 마을 사람들의 심리치료과정을 소개한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에 있는 리 제임스의 글이다.

1. 재난 후 남은 사람들

포르투프랭스 마을은 마을 전체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경험과 감당 안 될 정도의 슬픔으로 휩싸여 있었다. 현재 거리는 상인들로 북적이지만 불과 몇 달 전 이 곳은 신원확인을 기다리는 시체가 줄지어 정렬되어 있었다.
지진이 일어났던 1월 12일, 마을주민 대부분은 울음소리를 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건물과 땅의 조각들 아래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를 말이다. 사람들을 끄집어낼 기계가 그들에겐 없었다.
포르투프랭스 마을 땅이 갈라졌고 사람들은 그 틈으로 떨어졌다. 지구 핵으로 이어지는 그 어딘가로 떨어졌을 것이다. 벌어진 땅의 틈이 다시 들러붙었을 때, 사람들 일부는 발이 잘려나갔다.

트라우마는 지속됐다. 1300여 개의 IDP 캠프에는 여전히 몇 백만 명이 방치되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죽었고 또 아기들은 태어났다. 지진이 또 있을 것이 두려워서 건물 밖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다.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또 다른 지진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밝히면서도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말은 거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재건’ 프로세스가 없었다. 일자리가 거의 없었고 치료나 보조도 없었다. 국제원조가 있었다지만 그것들이 언제 오는지 또 언제 가는지 명시되지 않았다. 캠프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고 실제 결정할 수 있는 사항 또한 거의 없었다.
그 시점에 포르투프랭스에는 정신건강 서비스 인프라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말은 역으로 도울 방법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주 조그만 방법만으로도 말이다.

2. 심리치료의 시작

나는 몇 달 전 이 곳에 도착해 미시건 대학교 리서치팀과 함께 캠프 거주민들을 인터뷰했다. ‘사후 재난 평가’의 일환이었다. 인터뷰 결과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문제가 산재해 있음이 드러났다. 심각한 정신질환 몇 개가 개인들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심한 각성상태가 지속된다든가, 조그만 자극에도 깜짝 놀란다든가, 수면문제, 공포, 불안함, 비탄의 감정 등에 대한 문제였다. 이 문제들이 상당수 사람들에게 퍼져 있었다. 큰 소리가 나면 사람들은 발아래 땅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Ann Arbor VA 병원의 PTSD 클리닉에서 트라우마를 공부했고 테라피스트로 일했다. 그 경력으로, 기초적인 심리교육 클래스를 열 수 있었다. 안정을 찾는 훈련 등 대처 전략에 대한 것이었다.

문화는 정말 중요한 측면을 차지했다. 우리는 가족, 커뮤니티, 그리고 종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우리는 종교에서 지진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조심스럽게 가르쳤다. 대개는 지구멸망의 날로 묘사되어 있었다. 동시에 지진에 대한 과학적 지식도 가르쳤다.

문화적인 조율을 마친 후 우리는 교실을 나간 후 캠프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그건 이 사실에 착안한 거였다. 트라우마의 일반적인 반응에 대한 기초적 정보에 대해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은 트라우마의 강도가 줄어든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갈 것이고 우리가 떠난 후에도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밟을 것이었다.

3. 숨고르기, 상상, 그리고 버터플라이 허그

기본적인 숨고르기와 안정한 상태를 상상하는 기술에 대한 프로그램은 심리적 트라우마 증상을 완화시켰다.

우리 팀에 솔론이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트라우마에 관해 정통했고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후 재난 스트레스에 관한 클리닉을 매주 열었다.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캠프 사람들과 함께 클리닉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히도 매우 힘들었다. 때때로 심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우리는 지진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과학적인 것이라든가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요동치는 심박수 같은 심리적 반응이나 안전하게 몸을 피신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잔상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죽은 사람들의 얼굴들과 굴러떨어지는 돌덩이들, 그리고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들 등에 대해. 공포와 슬픔의 감정, 죄책감과 분노, 무력감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트라우마의 증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논의했다. 그리고 포옹과 대화, 일상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복식호흡, 눈을 감고 상상하기, 버터플라이 허그를 동시에 했을 때 곳곳에서 깊은 한숨이 들렸다. 아무도 눈을 뜨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로저는 “익숙한 환경”을 상상하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해변, 연인, 편안한 환경 같은 것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4. 심리치료의 필요성

클래스가 끝나고 사람들은 질문했다. 좋은 질문이 많았다. 종종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어떤 작은 여성이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대체 누가 심리치료를 원한단 말인가?’라고 말할 거예요. 우리가 필요한 건 먹을 것과 일자리, 그리고 제대로 된 쉴 곳이라고요. 그러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죠?” 많은 사람들은 동조하는 의미로 웅성거렸다.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굉장히 거대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봤다. 사실 그 질문은 우리가 몇 번이나 던졌던 질문이었다. 우리는 입을 열었다.

“먼저, 당신은 공감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얻을 수 있죠. 충격적인 경험과 정의롭지 않은 상황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요. 이곳의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원하는 모든 것들을 드릴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죠. 배고픔과 가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그것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충족시켜드릴 수가 없어요. 우리가 가진 것은 단 하나입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죠. 이 상황에서 바꿀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정부가 그렇고 사회와 조직, 다른 사람들, 날씨, 그리고 신은 바꿀 수 없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건 아마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게 할지도 몰라요. …. 이렇게 대답한 다음에도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불평한다면, 미국에서 심리학자를 만나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알려주세요!”

번역 김정현

출처: 허핑턴포스트, http://www.huffingtonpost.com/leah-james/relief-for-the-spirit-a-l_b_6137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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