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커뮤니티 디자인” –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디자인

커뮤니티디자인01

* 피크15와 에이케이스는 다달이 ‘이달의 책’을 골라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달엔 “커뮤니티 디자인(야마자키 료 지음, 민경욱 옮김, 안그라픽스, 2012)”을 읽었습니다.

1. 만드는 디자인에서 만들지 않는 디자인으로.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간단히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를 이끌어내는 디자인이다. 이 책의 저자 야마자키 료는 건축가,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주택과 공원 등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디자인해왔다. 기존 공간을 허물어 대규모 뉴타운을 짓고, 그 곁에 공원을 만드는 도시화 과정은 살기에 편리할지는 몰라도 사람들 사이의 교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50년간 일본은 ‘무연고 사회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우울증, 자살, 고독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비단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어촌·산간 마을에도 인구가 줄면서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야마자키 료는 이런 상황에선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의 교류를 디자인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이 책은 그 시도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2.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어 공원을 조성하고 운영한다.

공원은 하드웨어만 잘 갖추었다고 사람이 지속해서 찾지 않는다. 효고 현에 있는 아리마후지 공원은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해마다 비약적으로 방문객이 늘고 있다. 연을 만들어 날리는 커뮤니티, 늪지 식물을 관찰하는 커뮤니티, 놀이와 자연관찰 커뮤니티, 공원 센터 안에서 컴퓨터 교실이나 연주회도 진행한다. 활동하는 커뮤니티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이 입장객을 맞이하고 함께 즐기는 공원이 되었다.

오사카에 있는 이즈미사노 구릉 녹지는 공원 조성 단계에서부터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공원 예정지인 황폐해진 뒷산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장소를 좋은 공간으로 바꾸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활동을 전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할 ‘파크레인저’를 양성하기 위해 해마다 지역 주민 가운데 40명을 뽑아 총 11회 강좌를 실시한다. 이를 수료한 사람이 파크레인저로 활동한다. 공원의 하드웨어 정비를 기존의 20%로 줄이고 나머지 80% 자원을 소프트웨어에 투입해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커뮤니티를 이용해 공원을 만들고, 완성된 공원을 운영하는 담당자를 디자인하게 된다.

3.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오사카의 요노 강 댐 건설이 중단되자 주민들은 몹시 반발했다. 홍수 예방과 모아둔 물의 활용 모두를 검토한 결과, 미래에 꼭 필요하지 않다는 타당한 판단이었지만 자신들의 터전을 내놓으며 희생한 주민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지역 피해 보상으로 제시한 건설 사업도 중단 위기다. 국토교통성과 지역 주민을 중재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투입한다. 대학생들은 먼저 마을의 부녀자들과 만나 친교를 맺는다. ‘아줌마 네트워크’를 강화해 지역의 특색을 공유하고, 지역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댐 사업과 제반 사업이 정말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현지답사와 조사한 내용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보고회를 열고,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지지를 이끌어낸다.

지역에 직접 들어가 주민들과 만나고 얘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야마자키 료는 커뮤니티 디자인에 필요한 것은 ‘발군의 미소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말한다.

4. 협력을 위한 워크숍 기술

책에 실린 사례마다 다양한 ‘워크숍’이 나온다. 지역 주민의 얘기를 듣거나 의견을 나누는 과정, 교육 과정,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 모두가 여럿이 함께하는 ‘워크숍’ 형식이다. 책상머리에서 혼자 하는 디자인이 아닌 협업이 필수인 일이라 그럴 터이다.

7개 섬으로 이루어진 가사오카 제도의 종합진흥계획을 세울 때 어떻게 워크숍을 활용했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7개 섬이 저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협력해서 종합진흥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자, 섬의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종합진흥계획을 제안하는 방식을 택한다. 섬의 인구는 점점 줄고 어린이 수도 준다. 해가 갈수록 섬의 미래가 어두운데도 어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7개 섬 5학년 이상 아이들 13명을 모아 4회에 걸쳐 워크숍을 시작한다.

1)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팀이 되도록 게임 진행 2) 섬의 미래를 생각하는 일의 의미 전달 3) 섬의 특징과 과제 함께 찾기 4) 섬을 더욱 깊이 알기 위해 현지 조사 5) 마음에 드는 장소 사진으로 남기기 6) 10년 뒤의 이상적인 섬의 모습 생각하고 이야기하기 7) 섬 어른들 인터뷰 8) 전국의 마을 만들기 사례 조사

이 과정을 거쳐 ‘어린이 가사오카 제도 진흥계획’이 나왔다. 이 계획은 가사오카 시의 낙도진흥계획을 책정할 때 중요한 자료와 행정적 지침이 된다. 7개 섬 주민을 모은 발표회에서 어린이들은 연극형식으로 제안을 발표했다. 빈틈없이 꼼꼼하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과정이다.

5.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인 지난 5월. 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주최한 야마자키 료의 강연을 우연히 들었다. 강연 내용도 인상적이었지만, 마지막에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체험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무대에서 청중 사이로 내려온 야마자키 료가 옆 사람과 둘씩 짝을 짓게 했다. 모르는 사람과 둘이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한 사람이 무엇이든 좋으니 제안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무조건 ‘아니오’라고 말하며 거듭 거절·부정하게 했다. 나중엔 상대의 제안에 자신의 제안을 덧붙여 아이디어를 만들도록 했다. 야마자키 료의 결론은 이랬다. ‘아니오’라고 말한 순간 상대는 마음을 닫고 말할 의욕을 잃게 된다. 터무니없는 얘기라도 거기에 다른 생각을 덧붙이다 보면 멋진 아이디어로 발전한다. 절대 ‘아니오.’라고 말하지 말 것!

내 옆자리 짝은 ‘이 강연 끝나고 친구와 함께 청계산에 가기로 했다. 청계산이 참 좋다는데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끝나면 ‘딴 데 갈 데가 있다’고 거절하고, ‘청계산 이미 가봤다. 굳이 또 갈 생각 없다’며 재차 거절했다. 그다음 거절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덧붙일 땐 ‘그럼 내가 볼일을 마치려면 두세 시간이 걸리는데 시간을 좀 늦추어 같이 출발할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고 상대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우리는 야마자키 료가 시키는 대로 충실히 따라 했을 뿐이다. 강연이 끝나고 ‘약속(?)’과는 다르게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만약 실습 시간이 길어서 상대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면 어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 사이의 교류는 우선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데서 출발하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서채홍

책 사진: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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