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뷰] 프란시스 하 – 청춘이 지나간 자리, 그 자리에 남은 잔상

frances

 

볼 사람은 본 것 같은 영화가 있다. 최근 호평을 받으며 잔잔하게 언급되고 있는 영화 ‘프란시스 하’ 얘기다.

영화를 본 사람에게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몇 가지 경우들이 나올 것이다.
첫째, 프란시스 하는 ‘가장 보통의 뉴욕에서 만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포스터에 그렇게 적혀 있다. 이 영화에 끌린 사람들은 아마 이 문장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고 이 메시지를 염두에 두며 시청했을 것이다.
둘째, 27세의 프란시스 핸들리가 청춘을 함께 보냈던 ‘섹스 안 하는 레즈비언 커플’같은 절친이자 하우스메이트 소피와 따로 살게 된 후 이 곳 저 곳을 전전하며 방황하다 홀로 정착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는 ‘장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에 집중하면 이 정도로 이해된다.
셋째, 어른이 되어버린 후 방황하던 청춘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이렇게도 요약할 수 있다. 본 리뷰에서는 셋째 요약에 맞춰 글을 써보고자 한다.

1. 우리 모두는 공감할 것이다.

몇몇 장면에서 프란시스는 나였다.
물론, 프란시스의 어떤 면은 현재 청춘*을 많이 닮아 있기 때문에 나 이외의 관객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청춘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청춘 시기를 넘어선 어른들도 역시 프란시스를 보면서 공감했을 것이다.
사실 <프란시스 하>는 청춘의 이야기가 아니라 청춘을 회상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청춘: 이 글에서 청춘은 아직 자리 잡지 못 한, 안정되지 않은 수많은 방황하는 사람들을 통칭함)

2. 이 영화는 청춘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왜냐고?

2-1 흑백의 기억

‘프란시스 하’는 흑백영화다. 과거시제의 영상을 표현할 때 흔히 흑백효과를 준다. 왜 그럴까 굳이 생각해봤다.
과거는 컬러풀하지 않다. 우리는 순간의 모든 스펙트럼을 기억할 수 없다.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컬러풀한 기억은 우리가 존재하는 바로 이 순간뿐이다. 몇 초 뒤부터 우리는 망각할 것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존재했던 순간의 몇몇 부분만을 기억할 것이다. 기억은 때때로 과장될 것이고 생략될 것이며 왜곡될 것이다. 대부분은 잊혀질 것이다. 물론 ‘무의식’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2-2 프란시스의 기억에는 프란시스가 있다. 반례는 없다.

영화 모든 신에 프란시스가 등장한다. 당연하다. 프란시스의 기억에 프란시스가 등장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앞서 밝혔다시피 기억은 왜곡된다. 편집되기도 한다. 전부 다 기억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상 깊은 순간만 기억날 뿐이다. 그 순간조차도 왜곡된다.

영화에 있어 프란시스의 청춘의 기억에 소피가 지배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소피는 프란시스의 절친이다. 즐거웠던 청춘의 기억을 상징하기도 한다. 프란시스는 청춘의 대부분 시절을 소피와 함께 했다. 같은 공간에 살았으며, 그들은 사이가 틀어진 후 프란시스 말마따나 “우리가 언제 문자로 이야기하는 사이였어? 날 3시간짜리 브런치 친구로 취급하지마!”라고 할 만큼의 사이다.

프란시스에게는 되고 싶은 직업도, 마련해야 할 돈도, 잘만 사귀던 남자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프란시스 삶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나 프란시스는 ‘소피’를 주요하게 기억하고 있다.
청춘의 상징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2-2-1 프란시스의 순간들 -2

영화는 얼핏 유기성이 있는 듯하지만 동시에 시간을 편리하게 뛰어넘는다. 휴일을 보내러 오는 프란시스를 맞아주는 부모님이 갑자기 등장하더니 몇 씬 지나지 않아 다시 프란시스 배웅하는 영상이 튀어 나오는 식이다. 기억의 파편이 재조립됐기 때문이다.

2-3 프란시스 HA

‘프란시스 하’(Frances Ha)는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다.
프란시스 핸들리(Frances Handley)라는 풀네임 중 ndley가 잘린 것이다.
하우스메이트이자 절친이었던 소피가 프란시스를 떠난 후 프란시스는 이 곳 저 곳을 전전하게 되는데,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몸처럼 프란시스의 자아도 방황하는 시기다.

여기에 견주어 보자. 프란시스가 살 곳을 정했다는 의미는 프란시스의 방황이, 즉 청춘이 종결됐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날 즈음 프란시스는 어느 누구와도 함께 살지 않고 독립해 자신의 집을 갖는다. 우편함에 자신의 이름을 꽂는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름을 꽂을 때, 이름이 다 들어가지 않아 ‘ndley’부분을 접고 ‘프란시스 하’만 보이게 된다.

말하자면 프란시스는 방황을 멈추고 어른이 된 후 ‘프란시스 하’라는 이름을 얻은 셈이다.

3. P.S. 프란시스 핸들리에 대하여.

프란시스의 청춘은 행복해 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그 시기를 넘기고 어른이 된 프란시스 하는 청춘을 회상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프란시스를 보며 자신의 청춘을 되돌아봤을 많은 어른들의 감정도 궁금하다.

혹자는 청춘을 회상하는 것이 괴롭다고 한다. 흔들린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찬란하게 남은 것은 다음의 대사였다.

“Sometimes it’s good to do what you are supposed to do when you are supposed to do.”
(가끔은 확 그냥 막 그냥 해보는 것도 좋아.)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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